마리아 주앙 피르스

자유는 음악이 되고 음악은 유산이 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2월 1일 12:00 오전


▲ ⓒHarald Hoffmann / DG

올해 놓치지 말아야 할 명연으로 많은 음악 팬들이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의 협연을 꼽는다. 2월 28일과 3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런던 심포니의 내한 공연 무대다. 런던 심포니는 영국 최고의 교향악단이고 마에스트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 36년 만의 서울 무대다. 피르스는 1996년 리카르도 샤이가 이끄는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이후 17년 만의 내한 연주다. 자주 접할 수 없는 연주자일수록 감동의 여운은 더욱 오래가는 법. 이번 내한 공연에서 피르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7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이틀에 걸쳐 들려준다. 1989년 이후 도이치 그라모폰 전속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낸 그녀는 눈부신 기교를 자랑하는 비르투오소와는 거리가 멀다. 피르스는 손끝의 기교에서 끝나지 않고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 작품에 숨겨진 정신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청중으로 하여금 성찰과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있는 마리아 주앙 피르스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서울 공연은 오랜만이다. 외국 연주를 가리는 편인가. 혹 의식적으로 피하는 나라가 있는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 내내 미국 공연을 가기 싫어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미국에 대해 매우 나쁜 감정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2012년 당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있던 샤를 뒤투아가 협연을 제의해왔을 때 바로 수락했다. 과거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뒤투아와 여러 차례 연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피르스는 지난해 5월 18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뒤투아 지휘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9.11 테러 직후 또 다른 테러의 위험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이 미국행을 꺼렸지만 피르스가 꼽은 이유는 달랐다.

17년 만의 서울 공연이다. 그 사이 음악관 혹은 인생관에서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을 꼽는다면?
그동안 카사 데 벨가이스를 운영하면서 자주 무대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2000년 이후 내 연주 스타일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당시에 나는 문화예술센터를 운영하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모든 신경을 쏟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 연주 스타일에 결정적인 변화가 온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항상 정신적인 성장을 경험한다. 카사 데 벨가이스의 활동을 통해 내가 추구한 것은 분명하다. 예술관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연주자로서 어렵게 쌓아온 경력과 경험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 개인주의, 물질적·파괴적 글로벌화, 가정과 환경의 파괴 등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음악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바로 이러한 물음이 앞으로도 모차르트 음악이 살아남을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카사 데 벨가이스는 투숙객들이 전원 풍경과 명상·독서를 즐기면서 세계적인 거장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음악학교와 아트센터 겸 숙소이다. 1999년 피르스가 자신의 농장에서, 마약에 빠져 있는 불우한 어린이들을 예술을 통해 돕기 위해 만든 벤처 사업이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엘 시스테마와 약간 다르지만 근본적인 취지는 같다. 포르투갈 정부에서는 지원금을 주었으나 여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방송에서는 카사 데 벨가이스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피르스는 성적 학대에 시달리는 아동을 위한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반대의 벽에 부딪혔다.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그녀는 입원 후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연주할 당시 컨디션이 나빠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수술실로 곧바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머뭇거렸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피르스는 2006년 끝내 정든 고국을 버리고 브라질로 떠났지만 카사 데 벨가이스는 피르스의 친구가 계속 운영하고 있다. 포르투갈 언론에선 피르스가 브라질에 애인이 있어서 그곳을 떠났다고 떠들어댔다. 피르스는 현재 브라질 사우바도르 데 바이아에 살고 있다.

불교에 심취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동안 사찰에 방문할 계획이 있나.
할아버지가 불교 승려 출신이다. 불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마흔 살 때부터다. 하지만 내가 불교 신자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어떤 한계와 제약을 설정하기 때문이다. 서울 연주 때 짬이 난다면 가까운 절에 다녀오고 싶다.

독주회보다 협연 무대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무대에 자주 서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편이다. 마치 출근하기 싫은데도 일터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처럼 일종의 의무감으로 무대에 선다. 하지만 일단 무대에 서면 모든 게 바뀐다.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독주는 정말 싫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맡아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만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내가 다른 연주자에 비해 특별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나 무대 공포증이 심해서 그런 게 아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건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무대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룹·커뮤니티 등 모든 것으로부터 혼자 떨어진 느낌이다. 매우 이상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면 외로워진다. 나에게 삶이란 가족이나 팀 같은 그룹의 이미지다.
*그렇다고 피르스가 독주회 대신 협연만 고집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듀오 연주 때에는 한두 곡을 솔로로 연주한다. 하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혼자 도맡아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의 독주회의 경우는 피아니스트가 함께 해서 실내악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지만 피아노 독주회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다.

독주회의 매력은 개성 있는 연주 아닌가.
음악에서 연주자가 자기 고집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내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음악이 스스로 말하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연주자는 음악이 스스로 말해주고 있는 것을 먼저 들어야 한다.

협연 무대에 자주 서왔는데, 눈빛만 봐도 정말 잘 통하고 마음이 맞는 지휘자 세 명만 꼽는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샤를 뒤투아·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피르스가 가장 많은 협주곡 음반을 녹음한 지휘자는 아바도다. 1990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에서 아바도의 지휘로 데뷔했으며 볼로냐 모차르트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 협주곡 14·17·20·21·27번을 녹음했다. 2000년에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슈만 협주곡도 녹음했다.

 


▲ ⓒHarald Hoffmann / DG

피아노, 미지의 세계를 연결하는 도구

피아노의 매력은 무엇인가.
나에게 피아노란 나 자신과 같은 존재다. 우리는 하나다. 생의 대부분을 피아노와 함께 보냈다. 피아노의 매력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표현을 성찰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연결하는 도구라는 점이다.

스페인 신문 ‘엘 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칠순을 맞는 2014년에 은퇴하겠다고 했다는데 은퇴 계획은 지금도 유효한가.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한두 해 동안 새로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는?
2014년에 나는 일흔이 된다. 인터뷰 때마다 2010년 ‘엘 파이스’ 은퇴 기사를 물어봐서 지겹다. 은퇴를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은퇴를 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뜻에서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60년 이상 연주 생활을 해왔지만 은퇴를 공식화하고 싶지는 않다. 남은 생애 동안 학대받는 아동을 위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기존의 스타일을 깨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정신적 유산을 물려줘야 한다. 내가 레퍼토리에 매달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식지 않았다.
*피르스가 은퇴하지 못하는 데에는 카사 데 벨가이스 프로젝트에 따른 재정적 어려움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친구에게 운영을 맡겼지만 그때 진 빚을 갚으려면 당분간 연주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절대 연주를 남발하진 않는다.

혹시라도 2014년에 은퇴를 한다면, 고별 연주회 프로그램은 어떻게 꾸밀 계획인가.
가능하다면 모차르트·쇼팽·슈베르트로 꾸미고 싶다.

스승 카를 엥겔에 대해 소개해달라.
그분은 원래 반주자였다. 고전주의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다. 기본적인 테크닉과 더불어 예술작품을 보는 시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음악을 배우는 것은 삶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통해 음악을 발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악기를 연주할 수 없다. 바깥 세계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포르투갈에 이어 브라질에서 음악학교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운영되나. 다른 음악원들과의 차이점은?
미안하지만 아직 공개하지 않는 게 좋겠다.
*피르스는 공개하길 꺼렸지만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처럼 브라질에서 합창을 통한 불우 청소년 교육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귀스탱 뒤메와도 가끔 연주하나.
같이 연주한 지 꽤 되었다.
*피르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오귀스탱 뒤메·첼리스트 지엔 왕과 함께 트리오 활동을 한 적도 있다. 뒤메와는 2년 동안 동거했으나 결혼은 하지 않았다.

재즈 싱어 마리아 주앙(Maria Joao)과 이름이 같다. 만난 적이 있나?
잘 아는 사이다. 직접 노래 반주한 적도 있다.
*마리아 주앙은 피르스보다 열두 살 아래로 같은 리스본 태생이다.

모차르트 협주곡은 젊은 연주자들이 쉽게 도전하는 경향이 있지만, 유리처럼 너무 투명해서 제대로 연주하려면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특정한 작곡가나 시대의 작품을 연주해야 하거나 연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에 접근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연주자가 싫어하는데도 심리적 중압감을 이겨내면서까지 억지로 연주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누구든지 쉽게 작곡가의 의도를 명쾌하게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집중해서 작품을 깊이 이해할수록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더 오랜 연습 기간을 거쳐 뭔가 자신의 강점을 찾은 다음 나중에 도전해도 늦지 않다.

모차르트의 음악세계와 가장 잘 통하는 작곡가를 꼽는다면?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으로 말한다면 하이든을 꼽겠다. 오페라에서 사용하는 동기 발전 기법과 아이디어가 피아노 협주곡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목관악기와 피아노, 목관악기와 현악기·피아노가 펼치는 3중주도 비슷하다. 특히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피아노 음향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또 음악에서 지성과 감성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한다.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 피아니스트가 취하는 몸동작은 연주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당신은 청중의 음악 이해를 돕기 위한 몸동작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편인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절제하려고 하는가.
나는 손이 작고 손가락이 짧아서 연주할 때 의식적으로 불필요한 동작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보다는 좋은 피아노와 친숙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콘서트홀 음향이 좋으면 야마하를 연주하고, 그렇지 않으면 스타인웨이를 연주한다.

새 음반 녹음 계획은?
첼리스트 안토니우 메네제스와 다시 새 앨범을 녹음하고 싶다. 그와 연주할 때 한 번도 음악적으로 다툰 적이 없다. 그냥 연주하면 하면 된다. 연습할 때도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아바도와도 계속 협주곡을 녹음하려고 한다.
*최근 피르스는 보자르 트리오 출신의 메네제스와 자주 듀오 연주를 하고 있는데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3개의 인테르메조, 멘델스존의 ‘무언가’ 등으로 꾸민 2012년 런던 위그모어 홀 연주는 실황 음반으로 나왔다. 올해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청 연주도 잡혀 있다.

글 이장직 객원전문기자(lully@)

‘피아니스트 NOW’ 저자 김주영이 말하는 마리아 주앙 피르스

요즘 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선생이 더 많이 배운다”라는 예전 스승님들의 말씀을 참으로 실감하게 된다. 하루하루 겪는 일들이 모두 새롭고 신기하게 다가오는 학생 시절은 누구나 꿈과 의욕이 넘치게 마련인데, 음악학도들도 예외가 아니다. 종종 자신의 능력과 위치에 대해 모른 채 허황된 목표를 잡기도 하고, 확신 없는 계획에 대해 호언장담하는 모습들도 재미있다. 다소 철없는 행동이나 버릇없는 말로 실수를 하는 학생들을 다듬어주며 쓴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저 나이 때는 나도…’ 하는 후회나 쑥스러움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시절 내가 조금 ‘건방을 떨었던’ 분야는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를 내가 제일 잘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의 해석과 일치하는 연주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누구는 너무 무거워서 싫고, 누구는 루바토를 너무 많이 해서 싫고, 이런 식이었다. 당시 학교 음반실의 자료는 도서관 식 정리 방법을 따르고 있었는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의 목록을 뒤지다 눈에 띈 이름이 피르스였다. 피르스? 피리스? 삐레? 발음도 애매한 그 이름의 소유자는 여성 피아니스트로, 오래된 레코드 가이드북에서 언젠가 본 기억이 났다. 반쯤 기대하고 들어본 그녀의 연주 중 최초의 작품은 모차르트의 소나타 K333이었다. 웬걸, 피르스라는 피아니스트는 내 속마음 모두를 꿰뚫고 있음이 분명했다. 중용의 템포, 프레이즈의 끝마무리, 과장 없는 다이내믹, 조금은 드라이한 맛을 풍기는 뉘앙스에 이르기까지 내 무릎을 치게 만드는 연주자였다. 그날로 음반실에 있는 피르스의 모든 녹음을 카세트테이프에 복사하고, 학생 신분으로서는 상당한 거금을 들여 피르스의 모차르트 소나타집(덴온 레이블)을 장만한 나는, 당시 한국에서는 거의 무명이었던 피르스의 열혈 팬이 되었다.
대학 4년 내내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던 피르스의 또 다른 연주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1970년대 중반, 그러니까 그녀의 모차르트 음반 녹음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쇼팽의 프렐류드와 협주곡 등은 그 섬세함과 나긋나긋한 음상, 과도하지 않은 비장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명품’에 속하는 연주였는데, 현재는 구하기 힘든 녹음이라 아쉽다. 아무튼 마리아 주앙 피르스라는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작곡가에 대한 훌륭한 기준점이 되고 있다.
피르스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는 피아니스트다. 1944년 포르투갈 리스본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떨쳐 굴벤키안 재단의 장학금으로 뮌헨으로 유학, 그곳에서 카를 엥겔 등에게 배웠다. 브뤼셀에서 열린 1970년 베토벤 탄생 200주년 기념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무대에 소개된 그녀는 소위 콩쿠르 피아니스트도 아니며 레퍼토리의 폭도 그다지 넓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건드리는 작품은 어느 것이나 높은 완성도와 매혹적인 설득력으로 피아노 음악 애호가들을 사로잡고 있는 독특한 존재다.


▲ ⓒAskonas Holt

20대부터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며 각광받아온 여성 피아니스트. 그 이미지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지닌 음색과 차분함 등으로 쉬이 상상할 수 있는데, 그녀의 실제 연주는 이와 사뭇 다른 감상을 남겼다. 1996년 가을 리카르도 샤이와 내한하여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7번을 연주한 피르스는 녹음에서보다 훨씬 강하고 단단한 터치로 작곡가의 비르투오시티를 표현해냈다. 음반에서 들려준 음의 모양이 곱게 화장한 여인의 얼굴이었다면, 실연에서의 소리는 소위 ‘생얼 미인’의 모습에 비견된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의 피아노가 오래된 모델의 스타인웨이였다. 대형 오케스트라와 맞서야 하는 연주자가 그 음량을 노련하게 고려했겠지만, 어떠한 마디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고 모차르트의 서정성을 올곧게 그려냈던 피르스의 해석은 완숙하면서도 새침한 매력을 띠고 있었다. 거듭되는 커튼콜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인사하던 피르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결코 흐트러짐 없는 명쾌한 음색과 빈틈을 보이지 않는 정확한 리듬감각. 독일에서 공부하고 성장한 피르스가 새삼 라틴 민족이라는 것을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그녀의 남국적인 감각은 조금 이색적으로 쇼팽에서 드러난다. 발표된 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이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많은 애호가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쇼팽의 녹턴 음반은 피아노 음에 대한 그녀의 미학이 가장 적절하게 드러난 예이다. 노래 부르는 오른손의 또렷한 톤 컬러는 쇼팽이 결코 연약한 감상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훌륭히 항변하는 주역이고, 미세한 루바토로 절묘하게 움직이는 왼손에서는 그녀의 타고난 탄력이 발휘되고 있다. 특히 쇼팽의 반주부는 지나친 표현으로 왜곡돼서는 안 될 부분인데, 피르스의 균형감각은 자칫 분방해질 수 있는 리듬의 움직임 속에서 건강한 서정성을 도와주는 유효적절한 부분만을 뽑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리듬의 다양한 표현에 능한 연주자는 무엇보다 자유로움을 얻는다. 그 완숙미가 온전히 자리를 잡은 후 출시된 슈베르트 즉흥곡집에서 피르스는 단정한 루바토를 구사하는 동시에 쉼표와 휴식의 절묘한 맞물림으로 편안한 느낌의 시간적 자유를 작품에 제공한다. 그녀의 해석에서 기존 슈베르트 연주자의 자세와는 다른 농밀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그녀의 절묘한 음색 조절과 극히 세분화된 뉘앙스 연출이 그 이유다.
고백하자면, 최근까지 피르스의 모차르트 연주를 일부 협주곡 영상물을 제외하고는 조금 멀리한 경향이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한 사람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모차르트는 덴온 레이블 시절의 해석이 더 순도 높았다는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소중한 추억을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만나듯, 오랜만에 접한 그녀의 도이치 그라모폰 녹음들은 예상대로 피르스만이 그려낼 수 있는 오롯한 음색과 풋풋한 감성이 싱싱하게 숨 쉬고 있었다. 변한 부분이 있다면 약간의 중후함이 가미되었다는 점이었다. 반면 결코 변할 수 없는 그녀의 특징은 바로 ‘연약함’이다. 또 한 명의 여성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인 우치다 미쓰코와 비교해보면, 자유분방한 기교와 외향적인 감정 표현이 전면에 나타나는 우치다와 달리 피르스의 연주는 어딘지 약하고 부서질 듯 민감한 표현들이 두드러진다. 근래 녹음된 쇼팽의 연주들에서도 이런 부분이 엿보이는데, 테크닉적으로 좀 더 ‘움켜잡아야’ 할 대목에서 살짝 그 정곡을 피해가는 듯한 ‘약함’이 표출되곤 한다.
이런 경향이 기량의 부족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또 그녀의 팬들이 단순히 연약한 느낌의 해석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피르스의 피아니즘은 공간과 시간의 ‘여백’을 누구보다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 어딘가 비어 있는 듯, 조금은 부족한 듯한 표현 속에 멈춰 섬으로써 듣는 이들의 상상력과 감상을 역으로 끌어당긴다. 그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어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경향이 의도되거나 인위적인 장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타고난 감성과 연주하는 레퍼토리에 대한 나름의 원칙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독보적인 스타일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레퍼토리로 놓고 볼 때 대기만성형인 피르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오귀스탱 뒤메·첼리스트 지엔 왕 등과의 실내악 활동을 통해 베토벤·브람스·드뷔시 등 다양한 작품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그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모습을 보이다가 작품의 핵심이 다가올 때 정곡을 정확히 ‘찔러주는’ 특별한 조력자의 모습을 보인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앞으로 솔로 레퍼토리 확장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것이 오래된(?) 팬으로서의 바람이다. 그녀의 손끝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연약함’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매력으로 감상하고픈 욕심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팬들은 그 끊어질 듯 무너질 듯한 부드러움과 섬세함 사이에 숨어있는 뜨거운 생명력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있었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Now’저자·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