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존재로부터 받는 영감
‘영감(靈感, inspiration)’은 특히 ‘예술적 착상’을 가리킬 때 쓰는 고상한 말이지만, 근대 이후 서구의 개념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주조된 한자 번역어로서 동아시아에서의 전통적 쓰임새를 찾아보기 힘든 사실상의 서구적 개념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동음이의어(‘어르신’을 낮게 부르는 호칭)를 연상시키는, 적잖이 낡고 진부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이 말을 일상언어로는 잘 안 쓰는 듯하다. ‘당신이 내게 영감을 주었어요.’ 이런 말은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들을 수 있다.
반면, 영어권에서는 ‘inspiring’ ‘inspired’ ‘inspiration’ 같은 단어를 일상에서 자주 쓴다. 영어에서 ‘to inspire’는 ‘안으로(in-) 생기를 불어넣는다(-spire)’라는 동적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하느님이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니” 흙으로 만든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는 창세기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여기서 숨을 불어넣는 존재, 즉 영감을 주는 존재와 영감을 받는 존재 사이에는 일정한 위계가 전제된다. 그래서 영어권의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당신이 내게 영감을 주었어요(You have inspired me!)”와 같은 표현에는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난다.
예술적 착상, 특히 음악적 착상과 관련하여 ‘영감’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게 된 사회적 맥락에는 위에서 말한 위계적 관계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 이전까지 동서양을 불문하고 예술가의 신분은 비천했다. 그들이 뭔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전제할 것은 그 일에 대한 착상이 그들보다 더 나은 존재에 의해 촉발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비천한 음악가의 작품이 훌륭하다면 그것은 그가 다른 존재로부터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영감
플라톤의 유명한 ‘시인(여기서 시인은 음악가이기도 하다) 추방론’도 이러한 사회적·논리적 맥락 속에 있다. 그가 자신의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하려 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그조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나 음악의 탁월한 매력 탓이었다. 고귀한 신분이 아닌 시인이 그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인 활동을 해낼 수 있다는 게 그로서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당시 시인의 지위가 미술가보다는 높았다고 하나 비천한 신분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설명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인데, 시와 노래를 부르는 시인이 무언가에 홀려 있다고 보는 것, 쉽게 말해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행사에서 사제가 접신(接神)의 상태가 되는 것을 ‘엔토우시아스모스(enthousiasmos)’라고 했는데, 이러한 종교적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그것에 수반되는 음악이나 춤, 그리고 시에 적용되면서 ‘시적 광기(furor poeticus)’로 불리게 된다. 후에 이 말이 라틴어 ‘inspirare’로 옮겨지면서 영어로는 ‘시적 영감(poetic inspiration)’으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플라톤은 시인들의 노래가 신으로부터 얻은 영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실상 시인들 자신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것은 접신과 광기의 산물일 뿐 합리적인 이성에 의한 추론의 산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기하학과 수학에 입각한 합리적 사유를 추구한 플라톤에게 ‘무언가에 홀린 채로’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위험한 활동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역으로 말하자면, 플라톤에게 시와 음악은 가까이 두고 있으면 안 될 만큼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던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플라톤의 이 같은 생각에 그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반론을 제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저서 ‘시학(詩學, Poetics)’을 통해 플라톤에 대적한 기본 논리는 단순하다. ‘시작(詩作)도 논리적일 수 있다’는 것, 곧 ‘시적 광기’나 ‘시적 영감’을 전제할 것 없이 합리적 사유에 의해 시를 지을 수 있는 시작의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시의 강력한 정서적 흡인력조차 그는 유명한 카타르시스(katharsis, 비극을 통한 감정적 배설과 정서적 순화) 이론을 통해 합리적·윤리적 설명의 구도 속으로 포용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서구 예술사와 고전주의 미학에 이론적으로 기여한 바 매우 크지만, 그의 논의는 사실상 일부 서사시나 비극에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으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나 음악에 대한 실제적 의미를 대변해온 것은 오히려 플라톤의 사유였다. 시와 음악의 착상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채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플라톤적 생각이 좀 더 일반인의 상식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시와 음악이 그와 같은 영감의 산물이 아니라 합리적 사유의 산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특히 음악이 촉발하는 정서적 매력을 적절하게 설명해주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음악가의 비천한 신분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칸트와 낭만주의적 천재
요약컨대, 음악과 결부되는 ‘영감’이라는 단어는 음악이 가진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과 음악가의 낮은 사회적 신분 사이의 불균형한 관계 속에서 배태된 미학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플라톤적 의미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기 어려웠던 음악가의 영감이 오늘날과 같은 긍정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음악가의 신분이 혁신적으로 향상되는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했다. 이러한 조건은 1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시민계급에 의해 지속적으로 추진된 계몽주의 운동과 크고 작은 시민혁명에 의해 비로소 충족되기 시작했다. 주로 시민계급에 속했던 음악가들은 이 시기에 점진적으로 사회적 지위 향상을 이루어낸 것이다.
결국 19세기 이후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한층 높아진 지위의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영감이라는 단어는 극적인 의미 변화를 갖게 된다. 여기서 영감은 18세기 말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에 의해 제시된 낭만주의적 천재(Genie, genius) 개념과 행복하게 조우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영감은 더 이상 플라톤적 의미에서 제정신을 잃은 음악가의 비합리적 광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 받은 재능(천재)을 가진 이가 이 세계의 논리적 질서를 넘어선 초월적·미적 형식을 그려내기 위해 발휘하는 합리적·윤리적 직관의 힘, 그것이 영감인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듯 칸트에 의해 계몽주의적으로 종합된다.
재해석된 영감론으로서의 칸트의 천재론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베토벤에서부터 슈베르트와 슈만, 그리고 베를리오즈·리스트·바그너·말러에 이르기까지 음악가들은 이제 저마다의 음악적 영감을 통해 세계의 심원을 통찰하며 세계 밖의 세계를 자신의 음풍경(音風景)으로 포착해내는 명실상부한 천재들로 간주되었다.
수평적 연대와 영감에 찬 음악 공동체
하지만 나에게는 칸트에 의해 천재로 등극한 음악가의 영감 또한 본질적으로 플라톤의 영감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김동인의 소설 ‘광염소나타’에 등장하는 작곡가의 광기는 낭만주의적 천재 개념과 플라톤적 영감론의 그로테스크한(그러나 필연적인) 결합이다. 한편, 오선지와 연필만을 들고 책상에 앉아서 ‘영감이 안 떠올라!’ 하며 괴로워하는 속류 드라마 속 음악가들의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영감이 떠오르기만 하면 작곡가의 손에 든 오선지가 저절로 채워진다는 듯 여전히 영매(靈媒)의 접신을 기대하는 우리의 음악적 상식은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그리 달라져 있는 것 같지 않다.
영감(inspiration)이 문자 그대로 ‘생기를 불어넣어준다’는 뜻이며, 플라톤적 의미에서 ‘타자와의 만남’이라면,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적 연대 속에서 그 영감의 생산적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음악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 들어주고 함께 연주하거나 조언해주는 이들 속에서 음악가는 실천적 영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한 관계의 확장 속에서 사회를 바라볼 때 음악가는 자기 존재의 확장과 더불어 자신의 음악적 소통이 자리할 지점을 발견하는 예술적 영감을 얻을 것이다.
그러니 음악적 영감은 제정신을 잃은 음악가들의 광기도 아니요, 낭만주의적 천재의 전유물도 아니다. 음악가의 영감에 대한 모든 신비주의적 접근에는 음악이 비천한 이들의 활동이었던 옛 시대의 플라톤적 콤플렉스가 아로새겨져 있다. 이제 음악을 둘러싼 수평적 연대를 통해 그러한 콤플렉스를 뛰어넘는 게 어떨까?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퍼뜩 그런 영감에 찬 음악 공동체를 느낀 적이 있다. ‘웹2.0 시대’에 꾸는 일장춘몽이 아니길.
글 최유준(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