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창설 10주년을 맞이한 통영국제음악제가 올해는 ‘Free & Lonley’(자유… 고독)를 주제로 3월 22일부터 28일까지 통영시 일대에서 펼쳐진다. 개막 공연 ‘세멜레 워크’가 어떻게 통영에 이식될지를 알아보고, 자칫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화려함에 가려질지 모를 운명에 처한 ‘진주’ 같은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봄이 오는 중이다. 3월호 마감이 끝나면 슬슬 옷장 정리를 시작할 생각이다. 통영에 갈 때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스커트 몇 장을 챙길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을 넘어, 여성들이 실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내 옷’을 만들어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좋아한다. 그의 옷은 뜻하지 않는 재미를 발생시킨다. 특유의 엉뚱한 주름 혹은 ‘끌려 올림 기법’(?) 때문에 백화점 엘리베이터나 버스 정류장에서 중년 아주머니들의 살가운 손길을 받게 만든다. “아가씨, 치마 올라갔어”라며 치맛단을 힘껏 내려주시면, 나는 “헤헤, 원래 그런 거예요”라고 답하고, 그럼 아주머니는 “그 옷 참 이상하네” 하시고, 모두가 멋쩍게 웃는다.
앞선 기사(본지 48쪽)가 말해주듯,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 ‘세멜레 워크’ 역시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호기심을 낳는 뒤틀림을 담고 있다. 패션쇼장에 스피커로 듣는 배경음악 대신 실제 밴드 혹은 실내악단의 ‘실연’이 등장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무대를 런웨이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역발상’은 황당하고 새롭다. 지난 1월 시드니 공연 때는 런웨이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좌우에 앉았고, 칼레이도스코프 앙상블은 런웨이와 관객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합창단의 등장은 어떠했나. 마치 관객인 양 평상복 차림을 하고 관람석에 듬성듬성 앉아 쇼를 지켜보다가 합창이 나오는 대목에 예고도 없이 노래를 불러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시아 초연인 이번 통영 공연(22일 오후 7시 30분, 23일 오후 5시 재공연)을 앞두고 음악제 사무국이 고민한 것은 역시 장소다. 6월 준공검사만을 남긴 통영국제음악당(가칭) 로비, 영화 ‘하하하’에 주요하게 등장했던 세병관 등이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기존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강당이 최종 낙점됐다.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무대를 가진 극장이므로 길고 긴 패션쇼 런웨이를 깔 수 없기에, 무대의 일부를 확장하여 무대로부터 객석까지 런웨이를 만들고 일부 청중만 무대에 올라 ‘패션쇼 관람객’처럼 쇼를 감상할 예정이다. 물론 대다수의 관객은 객석에 자리한다.
지난 1월 시드니 페스티벌에 섰던 올로프 보만ㆍ칼레이도스코프 앙상블,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자모이스카ㆍ카운터테너 아르맹 그라메가 통영 무대에 오르고, 창원시립합창단이 함께 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을 입을 열 명의 모델은 국내에서 선발할 예정이다. 3월 중순에 의상과 함께 내한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팀이 30명의 모델 중 열 명을 직접 뽑는다.
개막 공연일인 22일 밤 9시 30분,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윤이상콩쿠르 입상자 시리즈 리사이틀을 펼친다. 윤이상이 손녀 리나를 위해 작곡한 ‘리나가 정원에서’를 비롯해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2번 D장조 Op.94, 류재준의 바이올린 카프리치오, 왁스먼의 ‘카르멘 판타지’를 연주한다.
‘세멜레 워크’는 23일 오후 5시 한 번 더 공연되고, 같은 장소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루토스와프스키 현악 4중주단의 공연이 펼쳐진다. 루토스와프스키 현악 4중주와 시마노프스키 현악 4중주 2번, 마르코비츠 현악 4중주 3번 등 근현대 작곡가들의 숨결을 가장 ‘치열한’ 음악 형식으로 만날 수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알렉산더 리브라이히는 취임 후부터 줄곧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참여형 프로그램의 강화를 역설해왔다. 올해는 상주 작곡가 파스칼 뒤사팽의 ‘모모’ 아시아 초연 무대가 통영을 찾은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다. 24일 오후 2시, 25일 오후 5시 통영시민문회화관 대극장.
뒤사팽과 천치강, 카퓌송과 클라라 주미 강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는 두 명의 상주 작곡가가 참여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음악감독을 맡았던 중국 출신 작곡가 천치강과 2011년 서울시향의 위촉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렸던 프랑스 작곡가 파스칼 뒤사팽이 그 주인공들이다. 뒤사팽과의 길고 긴 대화는 본지 52쪽 참조. 상하이 태생의 천치강은 1980년대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그곳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이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은 24일 오후 5시 통영시민문화회관 소극장에서 펼쳐진다. TIMF앙상블의 연주로 뒤사팽의 현악 4중주 3번(1993), ’롬바흐 트리오’(1997), 천치강의 ‘경극의 순간’(2002/2004) ’꿈의 여행’(1987)을 감상할 수 있다.
상주 작곡가들의 연주를 감상하고 난 후, 현관 하나만 건너 대극장으로 이동하면 오후 7시 30분부터 펼쳐지는 대전시립합창단의 ‘오 빛이여’가 청중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최근 프랑크 마르틴ㆍ브루크너ㆍ말러 등을 녹음한 신보(본지 172쪽 참조)를 발매한 빈프리트 톨과 대전시립합창단은 윤이상의 ‘오 빛이여’(1981)을 비롯해 바흐 ‘예수, 나의 기쁨’, 부헨베르크의 ‘쉰다섯 천사가 보호하니’(2008), 도브의 ‘회상’(2000)을 노래한다.
25일 오후 7시 30분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최수열이 지휘하는 TIMF앙상블의 연주로 김택수ㆍ신동훈ㆍ쓰카모토 에이코ㆍ청휘 등 젊은 아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중국 현대음악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26일 오후 5시 윤이상기념공연 메모리홀에서 펼쳐진다. 앙상블 컨템포 베이징의 연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의 작품들과 윤이상의 ‘환상적 단편’(1988)을 감상할 수 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이다. ‘세멜레 워크’가 강하게 훑고 지나간 자리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휑함을 이들 젊은 스타들이 든든히 채워주기를 기대해본다. 두 사람은 우선 26일 오후 7시 30분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조우한다. 드뷔시 바이올린 소나타와 라벨 치간, 브람스 첼로 소나타가 연주되며, 코다이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 Op.7을 통해 두 사람의 호흡을 확인할 수 있다.
27일 오후 7시 30분과 28일 오후 5시에는 통영시민문화회관 소극장에서 파스칼 뒤사팽의 체임버 오페라 ‘투 비 성’이 공연된다. 1993년 작으로, 올리비에 데부르가 TIMF앙상블을 지휘하고 티에리 코디의 전자음악, 제프리 캐리의 내레이션이 더해진다.
통영국제음악제 봄 시즌의 대미는 두 명의 상주 연주자와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책임진다. 첫 프로그램은 27일 오후 5시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지며, 쇼스타코비치 8중주와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고티에 카퓌송 협연), 김한기의 바이올린 솔로와 현악 합주를 위한 ‘고향의 봄’(2011), 임지선 화음프로젝트 ‘섀도우 오브 섀도우’(2008)가 연주된다. 같은 장소에서 28일 오후 7시 30분에 펼쳐지는 공연은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이끈다. 윤이상의 현악 합주를 위한 ‘융단’(1987), 피아솔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시벨리우스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즉흥곡, 그리그 ‘홀베르 모음곡’이 연주되며, 클라라 주미 강이 솔리스트로 참여한다. 한편, 음악제 개막에 앞서 3월 17일 윤이상 동요제가 음악의 봄, 그 서막을 알리고 음악제 기간 중에는 프린지와 아카데미, 심포지엄 등이 공식 공연과 병행된다.
봄 시즌 축제의 대미를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장식한다는 소식에, 지난해 통영국제음악제가 의욕적으로 창단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행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음악제 사무국 측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내년 봄, 새로운 음악당의 개관에 맞춰 기획 연주를 가질 예정이며 이후 매년 연주를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2012년 음악제 창설 1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오케스트라가 2014년 새 음악당 개관을 알리며 재등장하고, 2013년은 한해 쉰다는 얘기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기념’ 혹은’ ‘축하’ 오케스트라는 아님을, 알렉산더 리브라이히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글 박용완 기자(spirate@) 사진 통영국제음악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