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2월 1일 12:00 오전

컴퓨터에 전화를 연결, 미지의 어느 곳에 접속하는 컴퓨터 통신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의 전보를 받아볼 수 있으며 (…) 무엇보다도 컴퓨터를 통해서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사실 요즘의 사회처럼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시대가 어디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사회가 고도로 산업화된 데서 찾지만 역설적으로 산업화 사회의 하이라이트인 컴퓨터가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이른바 네오휴머니즘의 세계를 열어준다.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현재 널리 사용되는 컴퓨터 통신은 한국통신의 하이텔, 데이콤의 천리안, 나우콤의 나우누리가 있다.

1995년 2월호, ‘첫 내한하는 주세페 시노폴리’를 커버로 세운 ‘객석’은 하이텔 고전음악동호회ㆍ시네마천국ㆍ연극동, 천리안 두레마을 등 PC통신 예술동호회에 관한 정보를 전합니다. ‘네오휴머니즘 시대를 여는 기적의 동호회’, 기사 제목처럼 지난 18년간 일어나리라 기대조차 못했던 일들이 기적처럼 일어났습니다. 한편 2013년 1월 31일 ‘나우누리’ 서비스가 종료될 예정이라 합니다.
이번 호 16쪽에 예술의전당 2013년 공연 일자 및 내용을 바로잡는 정정보도가 실렸습니다. 먼저, 독자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전하며 나름의 해명을 드리자면… 편집부는 매년 12월 주요 공연장과 기획사들로부터 이듬해 올려진 공연들의 보도자료를 받아 이를 월별로 정리한 신년호 특집을 만들어왔습니다. 올해도 그렇게 모인 정보 중 200개 가까운 음악 공연을 선별해 2013년 신년호 열두 달에 빼곡히 채워넣었습니다. 그리고 1월 초, 예술의전당으로부터 일부 기획 공연의 일자 및 내용의 변경 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어찌 됐든, 잘못된 정보가 실린 ‘객석’을 낳게 되었습니다. 신년호만을 구입한 독자가 계시다면, 그 독자께 이번 정정보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정확한 정보를 전하는 것이 공신력의 제1조건임을 알기에, 세상에 뿌려진 신년호를 다 모아서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데, 누군가가 그이로서는 위로임이 분명한 말을 전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인터넷에 올리지 않아 다행이네요.”
어린 시절, 책에 있는 내용은 모두 ‘진실’이라 믿었습니다. 머리가 커져 스스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전까지, 책을 의심해본 적 없습니다. 여전히, ‘네오휴머니즘의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인 지금도 인터넷이 아닌 종이 매체만을 접하는 오랜 독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분들은 여전히 사람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눈으로 현장을 확인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가 아닌 종이 책을 펼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고, 페이스북ㆍ트위터를 통해 지인의 안부를 확인하는 딱 요즘 청년입니다. ctrl C+ctrl V의 위력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인식과 ‘눈치’의 반을 온라인 세상에 둔 요즘 청년입니다. 그럼에도 인터넷보다 책을 믿고 좋아합니다. 스스로 ‘책’을 만든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식의 원천이었고, 그래서 여전히 원천으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여, 이 모든 단정이 ‘사실’이 아닐 날이 언제가 도래할지 모릅니다. 그럼 모두가 이렇게 말하겠지요. “아직 인터넷에 올리지 않아 다행입니다.” 사실 인터넷에 올린 정보는 무한대로 퍼져나가기도 하지만, 수정도 가능합니다. 책은 다릅니다. 잉크가 마르고, 제본이 끝나면….
이번 일을 계기로 믿을 수 있는 한 문장, 한 단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야만 0과 1의 바이트로 그 형태가 바뀌어도, 존재의 이유가 됩니다. 종이 책의 향기를 그리워하는, PC통신 연결음을 추억하는, 네이버 매거진 캐스트에서 ‘객석’을 처음 본 그 모든 세대가 믿어주는 ‘객석’이 되겠습니다. 정말이지, ‘객석’이 되겠습니다.

박용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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