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레베헤/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바흐 라이프치히 칸타타들

한없이 투명한 플랑드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5월 1일 12:00 오전

1970년대 이후 고음악 연주는 ‘성장’의 역사를 위해 달려온 것처럼 보인다. 이 성장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필리프 헤레베헤라는 연주자가 우뚝 서 있다. 그는 역사적인 자료에 근거한 연주를 지향하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1970년에 창단하였으며 이들과 함께 80여 개가 넘은 고음악을 녹음하였고, 이들의 연주를 통해 우리시대 청중은 고음악이 추구하는 음향ㆍ음색ㆍ연주 기법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헤레베헤는 우리로 하여금 고음악의 소박한, 그러나 동시에 정교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준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새로운 음향과 연주 기법은 청중에게 새로운 청각적 경험을,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연주 방식과 연주 양식은 젊은 음악가들에 새로운 앞날의 가능성을 제공해주었다. 또한 많은 국내 팬들은 헤레베헤의 2006년 내한 공연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헤레베헤가 들려준 바흐의 ‘B단조 미사’는 그가 구사하는 세련되고 정제된 음향, 섬세한 아티큘레이션, 깊이 있는 음악적 표현 등을 통해 새로운 음악언어로 재탄생되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국내 팬들을 감동시켰다. 헤레베헤가 걸어온 행보는 곧 고음악 연주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가 연주한 고음악이 우리시대 고음악 연주의 ‘표본’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2010년 헤레베헤는 자신의 레이블인 파이(PHI)를 설립하여 더욱더 완전한 형태의 예술적 자율성을 추구해오고 있으며, 파이를 통해 바흐의 음악뿐 아니라 브람스ㆍ빅토리아ㆍ말러 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음반 역시 파이에서 출시되었으며 바흐의 칸타타 네 작품, 칸타타 25번ㆍ138번ㆍ105번, 그리고 46번이 담겨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라이프치히 시기, 보다 구체적으로 1723년 7월부터 9월 사이에 작곡된 음악들이며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시도한 다양한 형태의 작곡상 기법들이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이 칸타타의 연주는 바흐의 어떤 칸타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음악적 완성도를 요구한다. 헤레베헤가 왜 이 네 작품들을 선택했는지 수긍이 간다. 헤레베헤의 바흐 칸타타 연주가 최상의 것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최상의 연주가와 성악가를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헤레베헤의 합창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지극히 정제된 음악적 표현을 통해 큰 감동을 선사한다. 이 음반에 포함되어 있는 합창들이 요구하는 노래하기 까다로운 음정, 무척이나 불협화적인 화성, 그리고 복잡하고 어려운 리듬 등은 그래서 오히려 헤레베헤의 합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들이다. 이 어려운 합창들은 연주가와 성악가들에게 고도의 집중력과 높은 연주 기량을 요구하며 지휘자에게는 정확한 음악적 판단력과 직관, 그리고 이것을 보다 풍성한 감동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음악적 감성을 요구한다. 헤레베헤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헤레베헤의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의 음악에서 북유럽, 특별히 플랑드르의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대위법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하지만 투명한 플랑드르의 대위법은 이미 이 지역에서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동안 면면히 계승되어온 것이고, 헤레베헤는 마치 자신이 이 전통의 연장선 상에 서 있다는 것을 그의 합창음악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글 이가영(음악사학자)


▲ 필리스 페레베헤(지휘)/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PHI LPH 006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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