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언제나 신성한 것을 대신하고, 이러한 신성한 것과의 인간적인 관계가 신앙이다. 이 신앙을 우리는 예술을 통해 얻으므로 예술은 신이 내린, 인간이 도달한 어느 목표에 대한 암시이다.” 베토벤이 밝히고 있는 예술론의 종착역은 언제나 음악을 매개로 한 신과의 소통이었다.
나는 꼭 10년 전 예원학교 수업 시간에 김선욱을 처음 만났다. 일 년 내내 그는 수업 시간이면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아 클래식이든 팝이든 가요든 어떤 음악을 듣던 간에 베토벤을 감상하듯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말이 없었지만 가끔 내뱉는 말은 이팔청춘 또래들과는 달리 진중하고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가 신을 믿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김선욱에게 음악은, 음악이란 늘 거룩한 것이었고 베토벤이 당당하게 신을 지목한 것처럼 절대적인 존재와의 소통을 위한 도구였다.
이렇듯 조숙한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작곡가는 베토벤 외에 브람스도 있었다. 지금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빈 필하모닉과 협연한(번스타인 지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ㆍ2번 영상물을 보고 있다. 2004년 여름 김선욱은 필자의 집에 이 비디오테이프를 놓고 갔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라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하던 그의 확신에 찬 어조가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김선욱은 2006년 리즈 콩쿠르 결선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2007년 여름 고양아람누리에서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과 같은 곡을 연주하며 꿈을 이뤘다. 당시 객석에서 19세의 김선욱이 그려내는, 무겁기 그지없는 브람스의 삶의 무게에 짓눌렸던 경험은 충격과도 같았다.
자, 이쯤 되면 김선욱의 음악관은 어릴 때부터 결정된 셈이다. 모든 음악을 베토벤처럼 단호하고 활활 타오르게, 더 나아가 낭만주의조차도 브람스처럼 안으로 삭이는 사랑을 추구하며 냉정함을 잃지 않는… 2004년으로 기억된다. 한 살롱음악회에서 김선욱이 연주하던 리스트의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조차도 테크닉의 과시로만 끝나지 않고 베토벤과 같은 굳건한 형식미를 구축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결국 어떤 장르의 음악도 그의 손을 거치면 사색하고 고뇌하는 ‘베토벤 같은 음악’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2006년 12월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김선욱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 헤매던 낭만주의자들의 환상을 그는 ‘지금 이 자리의 현실’ 속으로 가져와 어느덧 사유하고 고뇌하는 앨버트로스의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김선욱의 베토벤을 무대에서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11월 KBS교향악단과 함께 한 협주곡 3번이었다. 무려 63마디의 카덴차가 이어지는 동안 소년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베토벤은 때로 인간미까지 느껴지는 감정의 파고를 맛보았다. 특히 3악장은 장황한 나열이 아닌, 설정된 질서 안에서만 가능한 절제미를 보여주었다. 이 곡과 함께 김선욱이 가장 자주 연주한 4번은 2012년 3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실연으로 접할 수 있었다. 8년의 시간은 돌처럼 단단해진 그의 타건만큼이나 오래도록 퇴적된 음악성으로 가라앉았으되 기본은 그대로였다. 다소 거칠었던 소릿결이 옥구슬처럼 다듬어져 완벽한 음색으로 피어올라 오히려 인간미는 예전에 비해 덜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마침내 지난해 3월 29일 김선욱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삶의 연륜이 좀더 쌓인 다음 시작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한 빌헬름 켐프가 서른이 넘어 베토벤 소나타 녹음의 첫 삽을 떴고, 러시아의 전설 타티야나 니콜라예바는 무려 40회의 전곡 사이클을 감행했으니 빠를 것도 없다. 베토벤 초기 소나타에서조차 김선욱은 후기 소나타와 같은 꽉 짜인 성을 쌓고 있었다. “베토벤은 연애도 못하고 돈도 없었고 성격도 좋지 않고 밝은 면이라곤 거의 없었어요. 다만 열정만은 엄청나죠.” 어느 인터뷰에서 김선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과연 그랬을까? 혹 베토벤의 부성(父性)으로 인한 아픔만 생각한 나머지 모성애의 따뜻함은 간과한 것은 아닌지. 프랑스 혁명 이후에 찾아온 자유와 인간미의 발현으로 인해 웃고 떠들고 천진한 베토벤의 모습을 조금은 그릴 수 없었던 것일까. 앨버트로스는 솟구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하기도 한다는 것을….
1월 18일 김선욱을 ‘황제 협주곡’으로 다시 만났다. 그가 평소에 존경한다는 라두 루푸가 내한 공연에서 택했던 결 곱고 부드러운 피아노를 김선욱도 점 찍었다. 불과 일 년 만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레가토의 연속으로 음색 다듬기에 매진했던 그에게 때로 논레가토의 여유가 살짝 비추어졌을 뿐 아니라, 빛의 화려함에서 엘리엇이 논했던 정적의 아름다움까지 체득하고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굳게 다문 입술로 형상화된, 열정과 강렬한 이미지의 악성(樂聖)에서 낮아지고 자유를 만끽하는 인간 베토벤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그리고 이 실황은 그의 첫 앨범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연주홀의 어쿠스틱으로 인한 녹음상의 한계는 접어두더라도 음반으로 듣는 김선욱의 베토벤은 결코 자극적이지 않고 어느덧 노래한다.
“음악이 노래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렇게 평생을 외쳤던 니콜라예바의 고백이 이제 김선욱의 베토벤에서 발견된다. 고작 25세의 젊은이에게서 말이다. 올해 말까지 남아 있는 베토벤 소나타 시리즈의 후반부에서 그는 또 어떻게 노래할까? 그리고 20년, 30년 뒤에 김선욱이 논하는 베토벤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이건 그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이자 삶의 이정표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에게 김선욱이 있기에 행복하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