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Eliot Gardiner 표기하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5월 1일 12:00 오전

John Eliot Gardiner 표기하기

창간부터 쭉 존 엘리엇 ‘가디너’라 표기하다가 지난해부터 ‘가드너’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사연이 있습니다. 신입기자가 들어오면 국립국어원 사이트 활용법을 가르칩니다. 특히 외국의 인명·지명을 표기할 때 국립국어원 용례와 표기법을 따르라고 엄하게 당부합니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무섭게 혼을 내는데… 어느 날 한 기자가 ‘가드너’라 써왔습니다. 혼을 냈죠. “여기 ‘i’ 안 보여요?” 그런데 후배 기자는 지지 않고 “가드너 맞습니다”라며 국립국어원 권장 용례를 보여줬습니다. 물론 ‘존 엘리엇 가디너’가 아닌 영국의 수필가 앨프리드 조지 가드너(Alfred George Gardiner)의 용례였지만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 각지 주요 인명의 ‘토종 발음’을 모아놓은 포르보(forvo.com)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가드너’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용단을 내려 지난해부터 ‘가드너’라 표기하는데, 존경하는 가디… 아니 가드너 님의 이름 석 자를 쓸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됐습니다. 쓸 때마다 포르보에서 듣고 또 듣고, 가드너라고 표기하는 언론사는 우리 말고 또 없나 찾아보고.
국립국어원 권장 표기를 따를지, 일반적인 정서를 따를지 고민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언론사는 국립국어원 표기를 따라야 한다, 무슨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이 언제나 정답일 수 없습니다. ‘객석’이 국립국어원 권장을 따르지 않았던 대표적인 예로, 미하일 플레트뇨프를 들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국립국어원 용례에 ‘플레트네프’라 권장되어 있었는데, 이는 키릴 문자 ё를 e로 잘못 표기해서 생긴 오류였기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최근 국립국어원은 ‘플레트뇨프’로 용례를 바로잡았습니다.
차라리 이처럼 명백한 오류면 괜찮습니다. 오류도 뭐도 아닌,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똑같은 이탈리아 태생인 루차노 베리오와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음에도 국립국어원이 권장하는 표기는 서로 다릅니다. 이탈리아어 표기법에 따르면 ‘cia’는 ‘차’가 맞지만,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경우 오랫동안 널리 불려왔기에 국민정서에 맞춰 ‘루치아노’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루차노’가 ‘루치아노’보다 더 앳된 이름인 셈인데, 참고로 베리오가 파바로티보다 10년 먼저 태어났습니다.
진짜 복잡한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국민정서를 어떻게 ‘계량’해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과연 우리 국민의 몇 퍼센트 이상이, 몇 년도부터 알아왔던 인물이어야 국민정서에 맞는 표기를 따르는지 모르겠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게자 안다’를 ‘게저 언더’로 표기했더니 “못 참겠다”라는 독자 의견이 있었습니다. ‘가드너’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사실 바르토크가 ‘버르토크’로 등장했을 때, 너무 당황한 독자들은 이의조차 제기하지 않으셨지요. 게자 안다와 존 엘리엇 가디너, 우리 국민의 몇 퍼센트가 이들을 알고 있다 예측할 수조차 없지만 ‘국민정서’가 아닌 ‘애호가 정서’에 ‘게저 언더’와 ‘가드너’가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종이 위의 활자가 디지털화됩니다. 이제 데이터베이스는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검색어는 지식으로 나가는 거대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검색어로서의 통일된 표기법이 필요합니다.
국립국어원의 명쾌하고 적극적인 권장을 간절히 요청합니다.

박용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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