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앙상블 ‘런던 바로크’의 일원이었던 리처드 이가를 독주자로 처음 알린 건 1996년과 1997년 연달아 발매된 두 장의 바흐 앨범(EMIㆍGlobe)으로 기억한다. ‘이탈리아 협주곡’, 파르티타 1번과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토카타 등의 소곡을 수록한 음반은 지금 다시 들어보아도 다른 연주자와 대별되는 차이점이 선명하다.
첫째는 장식음의 다용이다. 바흐의 건반 음악은 적재적소의 장식음만으로 악상이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따라서 그 존재만으로도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1980년대 언드라시 시프에 의해 널리 알려졌지만, 톤 코프만과 그를 사사한 일본인 스즈키 마사아키를 제외하면 그의 견해에 동조하는 이는 시대악기 연주계에서도 많지 않다. 이가는 처음부터 장식음을 중시했다. ‘이탈리아 협주곡’의 낯익은 멜로디는 빛나는 장식음 덕분에 고명을 얹은 듯 화려함과 풍미를 더했다. 그는 2004년 프랑스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같은 곡을 다시 녹음했는데 기품과 위엄을 얹어 좀더 완벽한 연주의 명연으로 꼽을 만하다. 2006년 ‘골드베르크 변주곡’(HMF)에서도 바로크 장식의 매력을 한껏 과시했다. 두 번째는 사색과 통찰이다. 빠른 악장에서도 음을 충분히 음미하며 미시적인 강약의 대비를 강조한다. 느린 템포는 선율의 노래뿐 아니라 악기가 지닌 계단식 다이내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즐겨 차용한다. ‘골드베르크’에선 너무 지나친 바람에 자아도취적이라는 비판도 들었지만 적절히 사용한다면 무미건조한 느낌을 더는 데 제격이다. 세 번째는 1638년산 루커스 모델의 울림. 중저역과 고역의 밸런스가 뛰어나고 울림이 윤택하다. 잔향이 적지 않고 특징적인 색깔은 없지만 무난하고 중용적인 사운드로써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이가는 이후 바흐를 연주할 때면 항상 이 악기를 사용했다. 음고는 초기엔 a’=415에 맞췄으나 2000년대 이후 409로 조금 낮춰 화려함을 줄인 대신 청감을 편안하게 했다.
이제 이가는 위에 열거한 특징을 집약해 그의 네 번째 바흐 앨범인 ‘영국 모음곡’을 내놨다. 그의 연주는 어떤 다른 음반과 비교해도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일단 널리 알려진 ‘영국 모음곡’ 음반 가운데 이처럼 장식음을 많이 쓴 연주는 찾기 힘들다. 크리스토프 루세(Ambroisie)가 떠오르지만 너무 빠른 속도에 그 매력이 묻혔다. 블랑딘란누(Zig-Zag) 역시 빈도가 이가보다 훨씬 적다. 이가는 ‘골드베르크’의 패착으로 지적됐던 무거운 분위기와 자의적인 해석을 이번엔 완전히 지양했다. 음의 시가를 충분히 음미하는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극단적으로 느린 악장은 찾아볼 수 없다. 1번 전주곡의 아르페지오 조형이나 느긋한 알망드, 6번 프렐류드의 판타지 악상 등 즉흥적 요소가 많은 악장에서는 케네스 길버트(HMF)나 레온하르트(EMI), 앨런 커티스(Teldec)로 대표되는 중용의 미덕이 그대로 느껴진다. 2번의 부레 두 곡은 차분한 음의 아라베스크와 3성 코랄을 이처럼 극명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대비시킨 시대악기 연주를 또 찾아볼 수 있을까 싶다. 6번에서 첫 가보트와 상단 건반을 이용한 두 번째 가보트의 대비 또 한 같은 평가를 적용할 수 있다.
반복에 대해서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절충형을 택했다. 1번 프렐류드나 2번의 쿠랑트 등에선 반복을 아예 하지 않는가 하면, 2번 전주곡과 6번 전주곡은 부분 반복을 실행한다. 각 넘버 두 개씩의 갈란테리 악장(부레ㆍ가보트ㆍ미뉴에트ㆍ파스피에)에는 전 구간 반복과 부분 반복을 섞어 사용했다.
이가의 ‘영국 모음곡’은 일단 이가 자신의 바흐 앨범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다. 앞서 언급했듯 ‘골드베르크’보다 한 걸음 대중적인 눈높이에 맞춘 해석이 돋보이며, 평균율에 비해서는 춤곡 악장이 주는 감각적인 재미가 한층 더 호감을 준다. 다른 연주와 비교해도 현대적인 레퍼런스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길버트나 레온하르트, 커티스, 아니면 훨씬 이전의 랠프 커크패트릭(Archiv)의 견실한 조형미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이가의 해석이 크게 급진적이거나 감각적이라고 느끼진 않을 것이다. 장식음에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2000년대 나온 연주 중엔 블랑딘 란누, 혹은 카롤레 체라시(Metronome)가 만족스럽다. 이가는 이들의 연주에 안정감ㆍ중후함ㆍ화려함을 더했다. 반면 루세는 앞서 언급했듯 모두가 수긍할 만한 빠르기가 아니다.
보수적인 취향을 지닌 독자는 길버트와 레온하르트의 고전을 쉽게 멀리할 수 없을 터이다. 하지만 ‘영국 모음곡’이 지닌 다채로운 재미를 단 몇 가지 연주가 모두 커버할 수 없다. 서너 가지 옵션을 고려한다면 이가의 신보가 매우 매력적인 아이템이 될 것이다.
아르모니아 문디의 간판 아티스트답게 ‘프랑스 모음곡’과 파르티타, 토카타 등 나머지 바흐의 주요 건반음악을 녹음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영국 모음곡’이 좋았다면 나머지 작품도 나쁠 리 없다. 그에게서 2000년대 처음으로 하프시코드에 의한 수준 높은 바흐 사이클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