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의 사회적인 흐름에서 볼 때, 이 시기는 학력 위주, 이념 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는 기반을 마련한 시기다. 이런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들은 정서적으로 솔직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내재적인 정서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진정성, 진정성은 통한다.
지금 뮤지컬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5월 20일부터 25일까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주관하는 ‘뮤지컬 비즈니스’ 관련 일본 연수가 있었다. 뮤지컬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다. 이 프로그램은 KOCCA가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한류를 찾아서’라는 주력사업 중 하나로, 한국 혹은 KOCCA의 입장에서 보면 케이 팝의 새로운 돌파구로서 케이 뮤지컬이 큰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으로 시작된 작업이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몇 해 전부터 한국 내에서도 케이 팝의 아이돌스타가 뮤지컬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들이 뮤지컬에서 하는 역할이 단순히 인기에 편승한 것은 아니다. 티켓 파워뿐만 아니라 연기력과 가창력에서 앞서가는 아이돌이 존재한다. 그들은 앞으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뮤지컬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다.
그동안 몇 차례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을 공연했다.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 측면에서는 한일 관계자 모두가 믿고 있다. 지난달 도쿄 롯폰기에 ‘어뮤즈 뮤지컬 극장’이라는 이름의 한국 뮤지컬 전용극장이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 창작뮤지컬 ‘카페인’(4월 25일~5월 19일)을 시작으로 ‘싱글즈’(5월 24일~6월 16일), ‘풍월주’(6월 21일~7월 21일)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앞으로 일 년 동안 한국 뮤지컬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고 하는데, 그 성과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콘텐츠 VS 엔터테인먼트
한국과 일본의 뮤지컬을 극단적으로 이분한다면, 한국은 ‘콘텐츠’요, 일본은 ‘엔터테인먼트’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뮤지컬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바라보면서 성장·발전해왔다. 전문적인 인력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기획과 홍보를 통해 산업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반면 현재 일본 관계자들은 콘텐츠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감지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데, 케이 팝의 성장과 편승해서 케이 뮤지컬이 가능성의 관심을 표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뮤지컬 관계자들은 케이 팝이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 진출했듯이, 이제 한국의 아이돌이 포함된 케이 뮤지컬이 해외에서 성장할 가능성을 믿고 있다. ‘콘텐츠 산업’과 ‘엔테테인먼트 산업’이 서로가 상보적으로 든든하게 받쳐준다면,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다. 이를 한국적으로 아주 단순화시킨다면, 혹은 일부 한국 뮤지컬 관계자들의 시각을 옮겨본다면 ‘한국의 뮤지컬 콘텐츠를 어떻게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편승시킬 수 있을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 공연한 한국 뮤지컬은 ‘잭터리퍼’ ‘쓰릴미’ ‘빨래’ ‘광화문연가’ ‘런투유’ 등이다.
한국 뮤지컬의 독특함?
뮤지컬 ‘런투유’는 한국의 대중가수 디제이 디오씨(DJ DOC)의 노래 22곡에 기반한 창작 뮤지컬이다. 한국에서 ‘스트릿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초연한 이 작품은 일본 진출 제목으로 ‘런튜유’를 선택했다. 디제이 디오씨의 노래 제목이 그대로 뮤지컬 제목이 되었다. ‘광화문연가’도 마찬가지다. 곡의 제목이 뮤지컬 제목이다. 이영훈이 작곡하고, 이문세가 부른 노래를 바탕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한국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작품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분명 뮤지컬 넘버로서 새롭게 만들어진 곡들은 아니지만, 뮤지컬 작품 속에서 버릴 곡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인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인들이 잘 쓰는 “살아있네!”라는 말을 적용하면서 찬사를 보내고 싶다.
반면 한국의 오리지널 창작뮤지컬은 상대적으로 노래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덜하다. 그리고 가요에 기반을 둔 곡에 비해 ‘코리언 스타일’이라는 느낌도 덜 받는다. 다소 거친 이분법적인 판단이 될 수 있으나, 이 분야의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지적한다.
일본에서 본 한국 뮤지컬은 대개 한국의 오리지널 창작뮤지컬이다. 그런데 이를 다시 둘로 나눠본다면, 하나는 한국 가요에 기반을 둔 ‘주크박스 뮤지컬’이요, 하나는 새롭게 만든 창작곡을 위주로 한 뮤지컬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 창작뮤지컬이 국내에서는 스토리와 여러 무대적인 기법과 기술적인 장치와 연계해서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을지라도, 일본 혹은 타국에서 보는 같은 작품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스토리와 무대에 있어서 다소 한계가 느껴지더라도 한국의 ‘가요’에 기반을 둔 뮤지컬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1990년대의 가요, 새롭게 보기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기반은 1990년대의 한국 가요의 성장과 무척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이야기한다면, 2000년대 케이 팝 아이돌 스타가 아시아진출이 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궁극적인 콘텐츠 측면에서 1990년대에 생산하고 유통되었던 한국의 대중음악이 꽤 가치가 높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이제 다시 ‘뮤지컬’이라는 구조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포장되어서 새로운 상품가치로 거듭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코리언 스타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뮤지컬과 관련해서, 1990년에 만들어진 두 곡을 다시금 주목해보자. 김원준의 ‘쇼’와 임상아의 ‘뮤지컬’. 이 노래는 1996년에 나온 곡이다. 이들은 하나의 ‘가요곡’이지만, 이것 자체가 그대로 ‘뮤지컬 넘버’가 되었다. 작곡과 편곡적인 면에서도, 지금의 시각에서도 주목할 것들이 있는데 무엇보다 가사 면에서다.
내 주위를 스쳐간 그 누군가 말했지/ 우리네 화려한 인생은 일 막의 쇼와 같다고/ 커튼이 내려진 텅 빈 무대 뒤켠엔/ 오늘도 또 하루를 사는 내가 있는 거야 / 날 지켜봐줘 넌 모르는 멋진 내 모습은 늘 가려졌던 거야/ 이제 너에게 보여줄게 귀 귀울여줘/ 너를 위해 부르던 노래는 늘 묻혀왔던 거야 이제 너에게 들려줄게/ show! 끝은 없는 거야! 지금 순간만 있는 거야!/ 난 주인공인 거야.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show! rule은 없는 거야! 내가 만들어가는 거야!/ 난 할 수 있을 거야.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김원준 노래 ‘쇼’)
내 삶을 그냥 내버려둬 더 이상 간섭하지 마/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세상으로/ 난 다시 태어나려 해/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아 음악과 춤이 있다면/ 난 이대로 내가 하고픈 대로 날개를 펴는 거야/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돼야만 해 / 이젠 알아 진정 나의 인생은 진한 리듬 그 속에/ 언제나 내가 있다는 그것/ 나 또다시 삶을 택한다 해도 후회 없어/ 음악과 함께 가는 곳은 어디라도 좋아 / 또 다른 길을 가고 싶어 내 속의 다른 날 찾아/ 저 세상의 끝엔 뭐가 있는지 더 멀리 오를 거야/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아 (임상아 노래 ‘뮤지컬’)
이미 가요를 중심에 둔 쥬크박스 뮤지컬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 ‘늑대의 유혹’이 있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본 뮤지컬 중에서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아름다운 것들’을 주목한다. 이는 김광석과 양희은이라는 특정인의 노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스토리 면에서, 무대 운용 면에서도 본다면 이 뮤지컬이 여타의 뮤지컬보다 월등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관객들의 만족지수, 감동은 무척 높다. 그간의 스토리적인 재미를 추구하고, 무대 기술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보다도 결국 앞선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결국 뮤지컬은 ‘노래’에 의해서 기본적인 성패가 좌우된다는 말도 된다.
김광석은 1990년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가수다. 그리고 양희은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활동하다가 이민을 갔고, 1990년대에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가수였다. 그들의 노래에 기본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시적인 서정성이다. 1990년대를 풍미한 노래 속에서는 듣는 사람에게 사유(思惟)를 유도해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에너지가 있다.
아울러 1990년대의 한국 사회적인 흐름에서 볼 때, 이 시기는 학력 위주, 이념 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는 기반을 마련한 시기다. 이런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들은 정서적으로 솔직해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요라는 유흥적인 매체를 통해서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이르는 ‘7080’의 윤시내는 댄스풍의 노래에서도 ‘공부합시다’를 외쳐대지만, 1990년대에는 이런 것에서 산뜻하게 결별을 하면서, 존재의 솔직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당시 한국 사회의 소설이나 영화 등과 함께 생각해볼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한국인의 정서
대한민국의 현재 키워드 중 하나는 ‘힐링’. 이에 가장 부합하는 뮤지컬이 ‘아름다운 것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기승전결 구조를 갖는 이야기가 없다. 대신 에피소드가 갖는 진정성에 기반을 둔다. 이 또한 대한민국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인데, ‘편지 쇼’의 형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청취자의 저마다의 사연을 읽어주면서 함께 공감하는 ‘편지 쇼’ 형식이 오래전부터 정착되어왔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방송국에서 편지를 읽어주는 방식을 스튜디오가 아닌 공개방송 형태로 진행해본 경험도 많다.
뮤지컬 ‘아름다운 것들’은 이러한 공개방송 형태의 ‘편지 쇼’를 가져와서, 실제 양희은이 출연하고, 양희은의 노래로 구성했다. 그리고 그 사연은 평범한 소시민들의 사연이고, 이러한 사연 가운데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는 한국적인 정(情)이라는 측면이다.
이런 정(情)이 서구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아시아권 사람들에게는 동질적인 반응을 보일 요소들이 무척 많아보인다.
한국의 뮤지컬이 아시아에서 크게 성장하길 바란다. 케이 팝 아이돌스타의 인기에 편승해서, 어렵지 않게 아시아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도 물론 있겠지만 한국의 창작뮤지컬의 대본·연출·작곡의 우수성을 인접 국가에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입장에서 보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정서적으로 깊이 있게 뿌리를 내리는 방법은 그동안 한국의 가요가 갖고 있던 잠재적인 저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시기는 역시 1990년대다. 이 시기는 ‘7080’의 노래에서 부족하게 느껴지는 가창과 편곡에서의 획일성과 비전문성이 극복되면서 한국 가요가 발라드에서 댄스까지 장르 역시 무척 다양해진 시기다.
1990년대의 김건모·신승훈·듀스의 노래들을 바탕으로 한 쥬크박스 뮤지컬의 콘텐츠적인 가능성은 무척 높아보인다. 더불어 이러한 노래들이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의 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2000년대의 대한민국 가요시장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비주얼 위주 혹은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노래들이 갖지 못하는 무한한 에너지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외부적으로 ‘만들어진’ 음악이 갖지 못하는, 내재적인 정서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진정성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진정성은 통한다. 더불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뮤지컬이 성장하려면 ‘노래’에 보다 더 큰 기반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아시아권에서 한국 사람이 특히 잘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1990년대의 가요가 한국의 뮤지컬 시장을 살리고, 더불어 아시아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제 이런 측면에 대해서, 보다 더 넓고 깊은 접근이 필요할 때다.
글 윤중강(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