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사 페카 살로넨/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6월 1일 12:00 오전


▲ 에사 페카 살로넨/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Signum Classics SIGBRD 001 (16:9/DTS-HD Master Audio 5.1/PCM Stereo, DD5.1/112분)

첨단 영상과 음향이 결합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홀스트의 행성이 아닐까. 세계적인 영국 런던 과학박물관이 2012년 여름 ‘행성’으로 색다른 실험을 했다.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과 그가 이끄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가운데, 작곡가이자 연출가인 조비 탤벗은 다중 카메라를 사용해 음악을 악기 섹션별로 분해했다. 분해된 화면과 음향은 전시회 그림처럼 나열된 개별 스크린으로 뿌려진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복잡다단한 오케스트라 음향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는 재미를 느낀다. 화면 앞에 놓인 악기를 사용해 화면을 참조하며 직접 연주도 해볼 수 있다. 이 같은 런던 과학박물관의 ‘행성’이 블루레이에 담겼다. 살로넨과 135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은 왓포드 콜로세움에 모여 무려 35대의 HD카메라 앞에서 전곡을 연주했다. 화면 분할(PIP)을 통해 각 파트별 움직임과 음악ㆍ악보를 ‘분해’해볼 수 있어 음악 학도나 호기심 많은 애호가들에게 쾌감을 일으킨다. 더 나아가 살로넨의 설명을 들으며 지휘 동작을 배워볼 수 있는 인터액티브 기능이 악장마다 있다. 살로넨은 이를 위해 아바타처럼 자신의 팔에 센서를 부착하고 꼼꼼히 지휘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능이나 부가 영상이 지나치게 학구적이거나 마니아 취향이라고 생각된다면 남는 건 음악이다. 세 가지 음향 옵션 가운데 DTS-HD 마스터 오디오는 압도적이다. 두터운 현과 눈부신 금관의 사운드가 기름진 음향 안에서 공감각적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다소 인공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디지털 매체로 듣는 ‘행성’과 큰 차이는 없어보인다. 한때 20세기 음악의 총아로 불린 살로넨이 이 작품을 처음 녹음한다는 점은 의아스럽다. 예상대로 살로넨의 스타일은 직선적이면서 매우 현대적이다. 박진감 넘치는 ‘화성’, 감동적인 찬가의 ‘목성’, 감각적인 ‘금성’ 등 시종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중용의 해석이 전편을 지배하며 군더더기 같은 감상은 없다. 언뜻 자기주장이 약해보이지만 작품 특성에 맞고 음질이 훌륭해 악곡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단점은 앞서 말한 옵션을 즐기지 않을 경우 일반 영상이 단조롭다는 점이다. 수많은 카메라가 그대로 노출돼 눈이 거슬리기도 한다. 신보에는 이 밖에 영상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지휘자, 단원의 음악 해설이 보너스로 담겨 있다. 살로넨과 악단, 제작진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으로 프로젝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