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피아니스트들의 굵직한 공연이 겹겹이 쌓인 2013년 6월. 여러 번의 편집회의를 거쳐 결국엔 이 뜨거운 젊은이들을 하나의 용광로에 모으기로 했다. 나는 ‘21세기 피아니스트론’이라는 쉽지 않은 글을 청탁하기 위해 그 스스로 피아니스트이자 ‘객석’의 오랜 필자인 김주영에게 전화를 걸어 특집 기사의 구성을 설명했다. 그중 한 대목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유자 왕과 다닐 트리포노프가 첫 내한을 하고, 첫 내한과 진배없는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도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해요. 모두가 6월이라니까요. 이들 세 명을 ‘내한 빅 스리’로 정리하려고요. 각각 오늘날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면면을 굵직하게 대변하는 것 같아서요. 선생님, 보세요, 유자 왕은 ‘유튜브 스타’. 랑랑에 이어, 중국시장을 겨냥해 DG가 선택했죠. 스스로도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며 주목받고요. 반면 트리포노프는 ‘정통파’랄까요.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고, 여전히 검은 제비꼬리 턱시도를 입어요. 그를 보고 있으면 지나온 ‘거장의 세기’를 자연히 추억하게 돼요. 이 사람도 작곡을 한다는군요. 그리고 트리스타노, 이름도 생소하시죠? 그는 어느 밤엔 클럽 디제이가 되고, 바흐와 케이지의 음악을 전자음향에 섞어 재창작하고, 말 그대로 21세기니까 나올 수 있는 새로운 ‘현재’인 것 같아요. 선생님은 이 모두를 아우르는 특집의 서문을 써주셔야 해요.” 나는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고, 김주영은 짧게 숨을 고른다. 그러곤 답이 돌아왔다. “그들이 어떤 피아니스트인지는 공연장에서 직접 연주를 들어봐야 알 수 있겠죠.” 그렇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이들의 연주를 객석에 앉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21세기 피아니스트’를 구구절절 얘기하고자 한다. 이것은 ‘글’이고 ‘사진’이며, 그래서 공기를 타고 전달되는 소리를 옮길 수 없다. 음악을 굳이 왜 ‘말하려’ 하느냐라는 오랜 질문, 혹은 젊은 피아니스트의 주변을 파헤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의 부질없음과 위험에 대한 비판은 나 스스로에게 일찍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부터 당당히 음악과 음악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수다를 떨 수 있는 건, 그로써 우리의 발걸음을 콘서트홀로 향하게 하려는 ‘진정하고 순수한 의도’ 덕이다. 유자 왕은 중국에서 태어나 베이징중앙음악원을 거쳐 10대에 캐나다로 이주했고, 이후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게리 그라프만과 공부했다. 오래전부터 유튜브 스타였으며 2009년 도이치 그라모폰 데뷔 음반을 발매했고, 같은 해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쿠르트 마주어와 멘델스존을 협연했다. 후문으로는 당시 마주어에게 따끔한 훈수를 받았다고 한다. 한편 베르비에 독주회에서는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으며, 본지 리포트에 따르면 “자지러지는 청중의 환호 저편에서 언론들은 한결같은 악평으로 그날의 기사를 마감 중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다. 요즘의 그녀는 어느 날은 초미니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 올라 찬반논란을 일으킨다. 어느 날은 슬프도록 아름답고 정제된 연주를, 어느 날은 각각의 아이디어는 찬란하지만 매듭과 수렴이 아쉬운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매체를 통해 보고 듣고 느낀’ 바이니… 부질없을까? 그녀의 첫 내한을 앞두고 이러한 별스러운 고민과 자문을 하게 만드는 걸 보면, 유자 왕이 21세기의 클래식 음악계의 ‘강력한 표상’임은 분명하다. 단답형 서면 인터뷰 또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기다리는 이 마음이 두근두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하 유자 왕과의 일문일답.
21세기 피아니스트는 어떤 사람들인가?
21세기 사람인지 18세기 사람인지, 아니면 그 중간 어디에서 왔든 중요하지 않다. 요점은 이것이다. 삶은 길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삶을 무대 위에서든 밖에서든 맘껏 즐기고, 사람들의 우려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그냥, 연주를 즐기면 된다.
‘랑랑의 출현’은 당신에게 영향을 끼쳤나?
개인으로서의 성공을 염두에 두고 피아노를 바라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피아노를 연주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유튜브가 없었다면 당신의 삶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 음악가든 아니든, (유튜브의 등장으로) 모두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나?
도이치 그라모폰과 같은 ‘메이저 레이블’은 어떤 의미인가?
DG는 가장 강력한 코어 클래식 레이블이다. 내가 함께 협업할 만큼 가치가 있는 존재이고. 그러나 타 레이블에서도 훌륭한 녹음은 많이 나온다. 나는 어떤 레이블에서 나온 어떤 음반이든 존중한다. 진정한 퀄리티가 있다면.
어떻게 레퍼토리를 선택하고, 어떻게 완성해가는가?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어떤 작품이 나에게 진심으로 말을 걸어오는가. 스케줄은. 새 작품을 공부할 시간이 있는가.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곡인가. 공연기획자가 찬성하는가(아마도 그들은, 내가 지난달에 연주했기에 지금 반복하고 싶지 않은 협주곡 레퍼토리를 가져오겠지만). 그런 여러 가지. 그렇게 곡이 정해지면, 음악을 공부하고 완성하는 과정은 나만의 작업이다.
많은 이들이 당신 연주의 ‘열정적인 면’에 주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슬픔’의 감정을 정말 잘 표현한다는 생각을 한다. 당신은 ‘슬픔’을 아는 사람인가? ‘슬픔’을 많이 겪어본 사람인가?
미안하지만, 답하고 싶지 않다.
(실은 매우 구구절절한 질문이었지만, 답변이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어 간략히 정리하자면) 무대 위에서 즐겨 입는 미니 드레스가 연주를 방해한 적은 없나?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나는 내 옷이 정말 편하다!
어려서는 어떤 아이였나?
정말, 정말, 정말이지 평범한 아이. 부모님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저 늘 응원해주셨다. 피아노 치는 게 부담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당신을 ‘유튜브 스타’ ‘중국시장을 겨냥해 메인스트림이 선택한 피아니스트’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사람들은 수천 가지 제각각의 방식으로 예술가를 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유튜브에서만 봤을 거고, 뭐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들이 진짜 콘서트홀에 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음악가들을 위해서도. 또한 도이치 그라모폰은 ‘중국시장’을 겨냥해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월드와이드 마켓’을 위해 나를 택했다!
글 박용완 기자(spir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