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누펜의 다큐멘터리 ‘송어’ ‘가장 위대한 사랑과 슬픔’

기쁜 우리 젊은 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6월 1일 12:00 오전

1969년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는 24세였다. 그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은 26세, 이츠하크 펄먼은 23세, 핀커스 주커만은 21세였고, 할리우드 스타 낸시 코박과 결혼한 지 3주째에 접어든 주빈 메타가 제일 연장자로 33세였다.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클래식 스타들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인 셈이다. 그해 8월 31일 이들은 런던에 새롭게 개관한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열린 제2회 사우스뱅크 여름음악제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를 연주했다. 이 공연은 이미 영상물로 나와 있지만 이번에 연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되짚은 다큐멘터리 제작물이 충실한 한글 자막으로 재정비한 채 라이선스로 발매되었다. 당시 클래식 콘서트를 고화질 영화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정숙한 연주 도중 장비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치명적이었다. 연출자인 크리스토퍼 누펜은 때마침 개발된 조용하기 그지없는 16밀리미터 카메라 5대를 사용해 월등히 향상된 영상을 포착할 수 있었다. 먼저 누펜의 소개가 끝나면 약관의 싱그러운 주커만이 비올라로 ‘송어’의 주제를 유쾌하게 그어댄다. 이어 10년 동안 더블베이스를 손에 잡지 않았던 메타가 미모의 부인과 함께 공항에 나타난다. 드디어 ‘Always & Ever, Smiles’라는 자막과 함께 뒤 프레가 등장해 연주와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이유는 상관없다며 낙천적이고 시원시원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때 어느 누가 끔찍한 병마로 비극적인 삶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을까. 마침내 공연 15분 전의 대기실을 비춘다. 펄먼이 이토록 유머가 있었던가. 뒤 프레의 첼로로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며 “어렵군”이라고 말할 때 분장실은 ‘개그콘서트’와도 같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 선율을 펄먼이 연주하자 뒤 프레가 재즈 풍으로 피치카토를 퉁긴다. 메타는 “재즈 연주하는 카살스”라며 장난친다. 지휘자 로런스 포스터가 페이지터너로 나설 때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무대에서 퇴장하며 펄먼이 “신사숙녀 여러분, 주빈 메타의 더블베이스 데뷔 연주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빵’ 터진다. 바렌보임은 메타가 처음이라 해놓고 크게 연주했다며 비아냥거린다. 재미있다. 클래식 다큐물이 따분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진 이에게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찾기 힘들 것 같다. 이어지는 ‘가장 위대한 사랑과 슬픔’은 누펜이 수년에 걸쳐 취재한 노작이다. 슈베르트가 25세에 꿈 꾼 스토리를 따라 여행하는 만년의 삶, 그리고 처절한 고통을 담담하게 녹여내고 있다. 슈베르트의 편지·음악·작품에 사용된 시를 적절히 섞어 한 편의 수채화 같은 명작으로 완성했다. 미사, D950의 ‘키리에’를 배경으로 움직이는 횃불로 시작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처연하다. 화자는 생애 마지막에 슈베르트에게 구원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버지에게 쫓겨나면서 시작된 방랑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어머니 시신을 묻으며 흘리는 눈물, 꿈 이야기는 이보다 더 슬플 수 없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고자 할 때 노래는 오히려 슬픔이 되었다”라는 대목에서는 눈물마저 마른다. ‘아버지, 구름 속에 빛나는 저 노을이 내 조용한 창문으로 가라앉을 때 당신의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로테 레만이 부르는 ‘저녁놀에’로 마무리되는 대서사시는 며칠 동안 슈베르트의 절망과 동화돼 허한 가슴을 부여잡게 만든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 바렌보임(피아노)/펄먼ㆍ주커만(바이올린)/뒤 프레(첼로)/메타(더블베이스)
Aulos Media ADVD 048 (4:3/PCM Stereo/DB2.0/17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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