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소재로 다룬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너나할 것 없이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가운데 ‘스칼렛 핌퍼넬’이 초연 무대를 가졌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에 맞춰 적극적인 현지화 모색으로 재미를 더한 이 작품은 대한민국 라이선스 뮤지컬이 단순한 ‘카피’의 수준을 벗어나 ‘리메이크’의 과정으로 진화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9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CJ E&M
활극이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다. 액션이나 모험, 결투가 펼쳐지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사람들에게 쾌감이나 대리만족을 주기 쉬운 탓이다. 현실은 복잡하게 엮여 선과 악을 구분하기 힘들지만 굳이 활극을 보며 철학적 가치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심심풀이 땅콩은 고소하면 그만이다.
‘스칼렛 핌퍼넬’의 시대적 배경은 바로 유럽 격변기인 프랑스 대혁명 시기이다. 서슬 퍼런 ‘공포 정치’로 유명했던 로베스피에르는 후대 역사가나 예술가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로 자주 활용됐는데, 뮤지컬로 만들어진 ‘스칼렛 핌퍼넬’ 역시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뤄 시민재판을 주도하던 파리 코뮌과 단두대의 공포가 서늘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요탱 박사가 고통 없이 빠른 사형 집행을 위해 발명했다고 전해지는 단두대(박사의 이름을 따서 기요틴이라고도 불린다)는 공포 정치 1년여 만에 파리에서 2만여 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갔으며, 화마처럼 번져나가 공산주의 인민재판처럼 각 지역에서 제대로 된 변론이나 판결도 없이 형을 집행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인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기요틴 박사나 로베스피에르 스스로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 운명으로 몰아넣었고, ‘공포 정치’도 막을 내리게 됐다. ‘공포 정치’란 말 그대로 사람들을 공포로 통치하려는 당시의 정치상을 풍자해 붙여진 이름이다. ‘공포 정치’는 유럽 사극 뮤지컬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단골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찰스 디킨스의 원작을 극화한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그렇고, 간접적으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야기를 그린 ‘엘리자벳’과 ‘황태자 루돌프’가 그렇다. ‘스칼렛 핌퍼넬’은 그런 의미에선 요즘 유행을 충실히 따르는 흥행 공식을 잘 적용하고 있다.
1997년 초연되어 미국과 영국에서 여러 차례 프로덕션이 꾸며졌고, 일본에서는 우리의 여성 국극처럼 여성만으로 극을 진행하는 다카라즈카 버전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껏 이 작품은 흥행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게 정확하다. 초연 당시에는 화려한 무대와 볼거리로 화제가 됐지만, 제작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저조한 흥행은 결국 작품의 규모를 줄이는 소규모 버전의 등장을 불러왔고,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선셋대로’와 함께 1990년대 대형 뮤지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 됐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13년 대한민국의 유럽 사극 뮤지컬 붐에 맞춰 화려한 부활이 이뤄졌다. 가장 큰 장점은 음악이다. ‘지킬 앤 하이드’로 CF 음악까지 거머쥔 프랭크 와일드혼은 우리나라 대중의 감성을 가장 잘 읽어내는 서양 뮤지컬 음악가 중 하나다. 현재 국내에서 그의 인기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절정기에 버금간다. 로이드 웨버는 브로드웨이에서 동시에 네 작품의 막을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는데, 와일드혼은 한국에서 이번 시즌에 ‘스칼렛 핌퍼넬’ ‘몬테크리스토’ ‘엘리자벳’을 무대에 올렸다. 비슷한 분위기와 선율 탓에 자기 복제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업예술 장르인 뮤지컬 분야에서 대중의 기대치를 십분 반영하는 특유의 감수성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죽은 아들을 살려낸’ 우리말 버전만의 힘도 있다. 바로 적극적인 현지화의 모색이다. “블링 블링”이라고 외치며 방정을 떠는 주인공의 익살이 친근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한민국 라이선스 뮤지컬이 단순한 ‘카피’의 수준을 벗어나 ‘리메이크’의 과정으로 진화되는 것 같아 흥미롭다. 이 작품 못지않게 앞으로 라이선스 뮤지컬의 변화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