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용 뮤지컬에는 비슷한 배경의 신조어들이 존재한다.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 왕년의 인기 음악을 빌려온 ‘주크박스 뮤지컬’,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노블컬’ 등이다. 뮤지컬 자체가 새로움을 향해 도전하고 갖가지 실험정신을 중시하는 장르인 점을 감안할 때, 웃으며 흥미롭게 즐길 만한 표현들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들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뮤지컬 자체로서의 충실한 완성도, 뮤지컬만의 볼거리를 찾아내고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7월 6~3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이다엔터테인먼트
굳이 한류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TV드라마의 인기는 말 그대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대장금’ ‘겨울연가’가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시키고 한국산 상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도 동남아시아나 일본 등지에서는 우리 드라마를 통해 말을 배우고, 생활 패턴을 따라 하며 즐기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뮤지컬이 드라마를 차용해 새로운 창작의 아이디어를 더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부가가치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요즘 문화산업의 화두는 단연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다. ‘해리포터’라는 소설이 흥행을 거뒀을 당시, 이를 어떻게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공식에 넣어 다양한 형태로 대중이 소비하게끔 할 것인가는 문화산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종이책뿐 아니라 영화도 만들고, 게임도 등장하고, 기념품도 소비할 수 있도록 시장을 개척해낸 것이다.
영상문화의 무대화는 그런 면에서 보면 궁합이 잘 맞는 커플이다, 2차원의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이 입체적인 무대 공간 위로 옮겨져 재연되면서 본래의 콘텐츠가 전하지 못한 재미와 볼거리를 만들어내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무비컬이나 드라마컬이 요즘 관객들에게 어필되는 이유다. 그러나 장르만 바뀌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장르에 맞게 얼마나 완성도 있는 변화가 이뤄졌는가는 OSMU의 성공적인 적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잣대다. 드라마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기 드라마의 단순한 무대화로는 뮤지컬로서의 완성도를 보장할 수 없다. 수십 편에 걸쳐 전개된 이야기를 두 시간 남짓의 2막 구조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따라 잉태되는 산물은 천차만별로 변한다. 흥행 원작 드라마의 확보는 그저 드라마컬의 출발점에 불구하다. 원작과의 효과적인 거리 두기와 차별화, 무대만의 재미를 잉태해내야 비로소 뮤지컬은 빛을 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우리 무대에서 보여진 드라마컬들은 이런 면에서 낙제점에 가깝다. 스위치만 누르면 볼 수 있던 콘텐츠를 십여 만 원의 티켓 값을 지불하고 다시 보게끔 하기 위해서는 치밀함과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단순 재연은 드라마를 추억하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고, 드라마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선 느낌만을 줄 뿐이다.
‘해를 품은 달’도 마찬가지다. 엄격히 말하면 절반의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먼저 긍정적인 부분은 비주얼적인 완성도다. 스토리보다 이미지, 등장인물의 이야기보다 캐릭터를 강조한 부분은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미술을 좋아하거나 순정만화를 즐겨 보는 혹은 즐겨 봤던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 반면 나머지 아쉬운 절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울 것이 별반 없는 무대 위 이야기다. 한 주에 두 편씩 마음 졸이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관객들에게는 케이블 재방송만도 못할 수 있다. 드라마 속 이야기의 재미가 추리물의 성격을 띤 탓이다. 그래서 극적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뤄질 듯 이뤄지지 않는 애틋함도 무대보다 안방극장이 적합한 구도다.
뮤지컬에는 그것만의 문법과 특성이 있다. 원작이 무엇인지보다 뮤지컬로서의 충실한 완성도, 뮤지컬로서의 볼거리를 찾아내고 추가해야 한다. 초연을 마친 ‘해를 품은 달’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잘 된다면 드라마컬의 새로운 가치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드라마컬의 좋은 사례로 오래 남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