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천사의 언어라고 했던가. 어릴 때부터 나에게 음악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친구였다. 판소리·클래식·가요·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가족 덕에 우리집 전축에서는 항상 여러 음악들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 다양함에 매료되어 ‘음악앓이’를 시작하게 됐다.
중·고등학생 시절, 음악 선생님이 틀어주던 노란 딱지 클래식 카세트테이프에 푹 빠져서 ‘음악 시간이 빨리 왔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선생님이 가져오신 테이프를 유심히 보고 곡명과 지휘자·상표를 노트에 적어놓고는 모아둔 용돈으로 한 장 한 장 구입해 혹시나 필름이 늘어질까 조바심 내며 음악을 듣기도 했다.
1990년대 초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병은 더해갔다. 수중에 용돈 들어올 때면 바로 음반 가게로 달려갔고, 종일 먼지를 먹으며 심사숙고해서 한 장을 택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풍부한 음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학생의 용돈은 항상 음악을 더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때 구원의 천사처럼 나타난 곳이 동아리와 학교 도서관의 시청각실이었다. 동아리는 학교에서 방송을 하던 곳이라 다양한 LP와 테이프들이 있었고, 모니터용 청음 시스템까지 갖춰져 나에게는 정말 꿈같은 곳이었다. 몇 천 장쯤 되는 음반들은 마치 내 것인 양 뿌듯함을 안겨주었고, 매달 새롭게 들어온 음반들은 나의 감상 목록에 늘 포함되어 즐거움이 되었다. 게다가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LP 정리를 핑계로 음악 듣기에 열중했다.
그렇게 음악의 목마름을 해소하던 중 도서관에서 매주 영화와 음악을 영상물로 상영하는 행사가있었다. 시청각실을 새로 꾸미면서 기획한 행사였는데, 그곳에 다다른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없었다. LP처럼 큰 원반인데 영상과 음악이 같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거기에 큰 대형 텔레비전까지. 레이저 디스크와 프로젝션 TV를 그때 처음 보았다. 그 뒤부터 도서관에서 일하는 선배를 졸라가며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 소장된 영상물들을 모두 보았다. 몰래몰래 보느라 때론죄 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어디서 볼 수 있겠냐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독이며 늘 감상했다. 그래서인지 몰입도는 어느 때보다도 강했던 것 같다. 영상자료들은 영화보다 교육적이란 이유로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이 많았었는데 그 덕분에 ‘아이다’ ‘투란도트’ ‘라보엠’ 그리고 백발을 휘날리던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이 레너드 번스타인이 여러 성악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을 녹화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제작기(The Making of West Side Story)’였다. 어라, ‘웨스트 사이드스토리’는 뮤지컬 영화로 주말에 TV에서 봤었는데 이게 번스타인 작곡이라고? 여기에 호세 카레라스와 키리 테 카나와 등 명가수들이 참여했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번스타인을 지휘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작곡도 하고, 그것이 심지어 클래식 음악이 아닌 뮤지컬 음악이라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가장 컸다. 뮤지컬 장르를 팝의 영역으로만 알고 있던 중, 성악가들이 부르는 뮤지컬 넘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혹시 음반으로 발매되었을까 싶어 바로 음반점으로 달려갔지만 구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어렵사리 레이저 디스크에서 음악만 따로 테이프에 녹음했다. 스피커에 카세트 마이크를 대고 녹음한지라 잡음이 섞이고 좋지 않은 음질이었지만 휴대해서 계속 들을 수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거기에 번스타인의 부드러운 육성까지 들을 수 있어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몇 년 후 정식 발매된 앨범을 구할 수 있었고, 이 음반은 지금까지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음반이 되었다. 지금 이 시간도 내 귀에는 토니와 마리아의 이중창이 흐르고 있다. 작은 동그라미 속에 내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동그라미를 꺼내다’에서는 ‘내 생애 잊지 못할 음반’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이번 호에는 CU미디어 코미디TV에서 편성 PD로 근무 중인 강봉국 씨의 동그라미를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