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스로가 더블베이스 주자인 만프레트 아이허는 1969년 ECM(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을 창립하고 자신이 직접 엔지니어를 맡은 첫 음반 ‘Free At Last’(ECM 1001)를 발표했다. 이후 독일의 음반 레이블 ECM은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명상적 재킷, 미국의 정통 재즈와는 차별화된 신선한 유럽 재즈의 사운드로 두터운 마니아 층을 확보했다. 이렇듯 ‘아름다운 아트워크의 재즈 레이블’로 대변됐던 ECM은 1984년 아르보 패르트의 ‘타불라 라사’를 발매하며 20·21세기 현대음악 영역에 진입한다. ECM 45년의 역사에서 30년을 차지하는 ECM 뉴 시리즈는 오늘날 현대음악을 넘어 클래식 음악 영역에서도 가장 강한 설득력을 지닌 레이블로서 음악 애호가들의 아낌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 ECM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만프레트 아이허를 만나 뉴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30년 긴 역사는 어느 어두운 밤, 아우토반 위에서의 작은 사건으로 시작된다.
글 박용완 기자(spirate@) 사진 박진호(studio BoB)
인터뷰의 초점을 ECM 뉴 시리즈에 맞추겠다. 괜찮겠나?
아주 좋다. 많은 사람들이 ECM을 재즈 레이블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뉴 시리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좋다.
ECM 뉴 시리즈의 시작, 즉 1970년대 말 당신이 라디오에서 우연히 ‘그 음악’을 들었던 순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얘기해달라.
당시 나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취리히로 가기 위해 운전을 하고 있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라디오를 틀었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음악이 나왔다. 그 음악이 마음에 확 와 닿았다. 라디오 전파를 더 잘 잡기 위해서 아우토반에서 벗어나 산으로 올라갔다. 미칠 듯이 좋은 그 음악의 정체를 모르는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나는 취리히로 돌아와 이 음악이 무엇이며, 누구의 작품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정체를 밝히는 데 1년이 걸렸다. 그 곡은 아르보 패르트의 ‘타불라 라사’였다. 1977년 녹음으로, 기돈 크레머와 타티야나 그린덴코의 연주였다. 나는 곧 패르트의 거취를 알아내 연락을 취했다. 그는 탈린을 떠나 빈으로 망명한 상태였다. 우리는 곧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바젤에서 ‘프라트레스’를 녹음했다(1983년). 키스 재럿과 기돈 크레머가 이 작업에 참여했다. 나는, 타고난 감각과 인상적인 리듬감을 지닌 키스 재럿이야말로 이 곡을 녹음할 적임자라고 확신했다. 두 사람은 이전에 함께 연주해본 적이 없었고, 바젤의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나 하룻밤 만에 ‘프라트레스’를 녹음한 것이 첫 협주였다. 처음이었지만 정말이지 성공적인 녹음이었다.
당신이 호텔 방이나 차 안에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어디선가 읽은 듯한데. 1970년대에는 운전하며 음악을 들었단 얘기인가?
심심할 때는 나도 운전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다만 차 안에서 CD를 틀진 않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뿐이다. 전문적인 음반 프로듀서로서 음악을 들을 때는 철저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1984년 발매된 ECM 뉴 시리즈의 첫 타이틀인 이 음반에는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스’와 ‘벤저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칸투스’, 그리고 당신이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었던 바로 그 ‘타불라 라사’가 수록됐다. 이 녹음은 서독일방송의 것인데, 뉴 시리즈의 첫 타이틀에 다른 단체의 기존 녹음을 수록하는 데 주저함은 없었나?
전혀. 이례적으로 잘된 녹음이었기 때문이다. 원본 테이프를 구해서 다시 믹싱을 했다. 녹음도 녹음이지만, 연주 자체가 정말이지 좋았다. (수록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뉴 시리즈를 통해 1988년, 재즈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키스 재럿의 바흐 평균율 1권을 발매했다. 누가 먼저 제안했나?
키스 재럿과 나는 각자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다. 재럿은 재즈 음악가이지만 클래식 음악을 항상 즐겨 들었으며, 바흐를 좋아했다. 우리의 초기 앨범 ‘Facing You’, 혹은 ‘Bremen&Lausanne’ ‘The Koln Concert’, 그리고 일본에서 녹음한 ‘Sun Bear Concerts’ 등은 즉흥연주곡집이었다. 어느 날 재럿과 나는 이제 바흐 음악을 녹음할 때가 됐다는 걸 느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의견이 일치됐고, 1987년 미국 뉴저지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서 그의 피아노로 녹음했다. 독일에 있던 ECM 사운드 엔지니어 마르틴 빌란트와 작업에 함께했고, 이 음반은 재럿이 발매한 첫 악보음악(written music)이 되었다.
그 이전에도 재즈 피아니스트가 바흐나 모차르트를 출반한 적이 있나?
내가 알기론 없다. 굳이 꼽자면 앙드레 프레빈 정도랄까. 그는 훌륭한 즉흥연주 실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이며 키스 재럿 역시 그를 좋아했다.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프레빈은 바흐를 비롯한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연주했지만, 그걸 앨범으로 발매했는지는 모르겠다.
재즈 음악가가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를 녹음할 때, 어떤 특이점이 있나?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키스 재럿 말고는 재즈 음악가가 바흐를 연주하는 것을 접한 적이 없기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키스 재럿은 바흐의 악보를 있는 그대로 연주했다는 것이다. 그는 바흐를 정말 좋아해서, 순수하고 음악적으로, 즉 즉흥적인 군더더기 없이 바흐 음악을 연주했다. 이후 모차르트 협주곡을 녹음할 때도, 모든 카덴차를 악보에 적힌 그대로 연주했다. 물론 훌륭한 작곡가들의 음악은 무척 다양하게 연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드라시 시프가 연주하는 바흐는 (재럿과는) 또 다르다. 듣는 이가 할 일은 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구별하는 것이다. 사람은 한 단계 더 나아가기를 원한다. 일례로 시프의 초기 음반에 실린 바흐 평균율과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이후에 발매된 같은 곡들을 비교해 들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는 연주자가 음악적 표현 방법을 더 많이 연구했거나, 보다 깊이 있는 음악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녹음 퀄리티의 향상을 들 수 있다.
지휘자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키스 재럿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지휘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둘은 미국에서부터 오랜 친구였다. 이미 현대음악 연주회를 여러 차례 함께 올렸다. 또한 데이비스는 슈투트가르트 오페라와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키스 재럿과 나는 독일에서 작업을 자주 했기에, 슈투트가르트 근처에서 데이비스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재럿과 데이비스는 서로를 잘 알고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ECM의 카탈로그 번호를 보면, 시프의 바흐 파르티타가 2001(ECM New Series 2001/2002), 스테파노 바탈리아의 음반이 1999(‘Re: Pasolini’ ECM 1998/1999)이다. 2000은 어디 숨겨두었나?
모르겠다. 그 번호가 비어 있는지 나도 몰랐다. 카탈로그 번호에 신경을 쓰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번호 확인은 아마도 100번째 음반 정도까지만 했던 것 같다. 어느덧 1천5백 개 가까운 타이틀을 내다보니 숫자에 신경 쓰기도 쉽지 않다.
어떤 비밀이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알기로 그런 건 없다. 언젠가 탄생할 사상 최고의 음반에 붙이려고 비워두었던가? 하하하. 2000번이 이미 만들어졌는데 발매되지 않았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앞으로 만들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허의 말과 달리 ECM 카탈로그 중 녹음을 했지만 발매되지 않은 음반에는 카탈로그 번호가 부여되며, ‘미발매’라 명시해두고 있다.)
뉴 시리즈의 클래식 실내악곡 중 유독 바흐가 많은 이유는?
ECM에서 바흐 음악을 자주 녹음한 건 사실이지만 특히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음악이 대부분이다. 물론 바흐가 항상 많은 음악가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는 건 사실이다. 토마스 데멩가의 경우 ‘바흐와 엘리엇 카터’와 ‘쿠르타그와 바흐’ 등을 발매했다. 우리는 이처럼 바흐와 현대음악을 조합하는 시도를 1970~1980년대에 시작했고, 이후 여기 저기서 이 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바흐는 베토벤ㆍ슈베르트와 함께 나의 개인적인 기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클래식 음악에서의 기준일 뿐이다. 나는 현대음악에 더 큰 관심이 있으며, 컨템퍼러리와 클래식 음악 양쪽을 모두 잘 아는 음악가들의 표현 방식으로 작업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컨템퍼러리나 클래식 음악을 크게 구분 짓지 않고 조화롭게 잘 표현해내는 음악가가 좋다. 음악의 ‘장르’는 단 하나밖에 없다. 좋은 음악, 그다지 좋지 않은 음악으로 나뉠 뿐이다. 내게 감동을 주는 음악이 클래식일 수도 있고 컨템퍼러리일 수도 있다. 클래식 음악 역시 현대적인 방식으로 연주될 수 있다. 그러니 클래식인가, 컨템퍼러리인가라는 이분법적 구분 방식은 내겐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어떤 음악이든 내 마음을 울리면 그것으로 됐다. 한국 전통음악도 내게 큰 영감을 주기에 많이 듣고 있으며, 아르메니아ㆍ알바니아의 음악도 내게 늘 감동을 준다. 나는 어쿠스틱 음악을 연구하기 위해 여기 저기 많이 다녔다. 가나와 아르메니아에서 목자들의 노래를 녹음했고, 중국에서는 중국의 전통음악을 녹음해 프랑스 현대음악을 만드는 데 섞어넣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항상 음악을 연구ㆍ조사하고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스스로 결정한다. 그 덕분에 재즈와 즉흥연주, 컨템퍼러리와 클래식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번 음반 작업을 위해 음악을 선정하면, 최대한 깊이 파고든다. 하나의 음반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다른 장르 또는 영역으로 옮겨갈 준비를 한다. 사실 컨템퍼러리와 클래식이라는 양쪽 영역 모두를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영감으로 가득한 일이다. 한 쪽에서 배운 것을 다른 쪽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는 각각의 음악가들에게서 그들 자신이 몰랐던 부분 혹은 능력을 이끌어내 새롭게 발전시키도록 도와줄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숙련의 과정, 혹은 현대음악의 악보를 읽고 이해하는 일은 연주자들을 매우 집중하게 만든다. 그들은 악보 음악에 진실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긴장감과 색채, 몸으로부터 오는 리듬감 등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다. 즉흥연주를 통해 이들을 익힐 수 있다. 악보에 없는 음악에는 미리 예고되지 않은 박동이 있다. 악보를 보고 표현하는 데 익숙한 음악가들에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법, 즉 특별한 리듬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듯 클래식 음악과 현대음악, 즉흥연주 음악과 재즈를 오가는 것은 아주 멋진 상호작용이며 주고받음이다.
프로듀서로서의 내 작업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프로듀서는 헌신적인 청자(listener)가 되어야 한다. 나는 여러 방법으로 음악을 들으며, 음악을 듣는 방법을 여전히 익혀가는 중이다. 잘 듣기 위한 여러 중요 요소들이 있다. 우선 집중력이 필요하고, 전념하는 자세, 그리고 공감(empathy)이 필요하다. 사람과 음악에 대한 공감 말이다.
“아르보 패르트의 경우처럼, 침묵에 가까운 음악도 대중적일 수 있다. 패르트는 청자의 즐거움을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물론 그는 자신의 음악이 청자에게 도달한 것을 행복해 했다.”
“우린 서로를 들어야 한다.”
‘공감’이라는 말에 무척 공감한다. 세상에는 듣기 어려운 현대음악도 많다. 그러나 ECM이 선택한 현대음악에는 언제나 ‘아련함’이 있었다.
나는 빛남, 평온함, 투명함(luminescence, tranquility and transparency)을 좋아한다. 꽤나 어려운 음악, 예를 들어 시닛케(슈니트케)ㆍ쿠르타그ㆍ지머만의 작품들도 악보로 깊숙이 들어가면, 그 작품들을 보다 귀중하게 만들 수 있다. 뉘앙스를 갖게 하고, 음악에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마치 숨을 쉬듯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음악에 공기를 넣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존재가 숨 쉬어야 한다는 걸 음악가들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숨 쉬고, 공기의 투명함을 어떻게 음악에 담는지는 정말이지 중요하다. 실내악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실내악에서 우린 서로를 들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역시 서로를 들어야 한다. 삶에서도 서로를 들어야 하고, 이해해야 하며, 다른 이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듣는 방법’을 재건해야 한다. 작곡가의 뉘앙스와 그가 왜 이렇게 곡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때, 음악은 이륙하여 날기 시작한다. 연주자는 그제서야 작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정명훈은 음악에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대가이다. 그의 메시앙을 들으면 느낄 수 있다. 그는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현대음악도 훌륭히 지휘한다. 그는 평온함과 투명함에 관한 대단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정명훈을 예로 든 이유는, 그와의 새로운 작업을 위해 최근에 그의 작품들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명훈의 파리 오페라 시절부터 그의 음악을 들었고, 그가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을 지휘하는 것도 들었다. 정명훈의 산타체칠리아 시절, 라디오 녹음이었다(지난 7월 녹음한 정명훈의 피아노 독주 음반은 올해 말 ECM을 통해 발매될 예정이다).
뉴 시리즈의 타이틀을 차지하는 많은 작곡가들, 아르보 패르트나 기아 칸첼리ㆍ죄르지 쿠르타그 등이 동구권 출신이다. 구소련 출신 작곡가들의 음악을 특히 좋아하는가?
나는 슬라브 음악에 끌리는 듯하다. 그것은 ‘구소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유럽의 중심인 독일에서 나고 자란 나는 말 그대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나는 베베른ㆍ베르크 같은 신빈악파와 함께 성장했다. 또한 내 성장기에 독일에서는 다름슈타트 여름음악제라는 현대음악의 선언이 있었다.
나는 서유럽 사람들이 비유럽권을 조금은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문화적 과소평가랄까. 유럽의 중심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동구권 출신의) 작곡가들이 너무 조성적이고, 너무 서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소년 시절에 아르메니아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완전히 다른 음악을 들었다. 신빈악파든 뭐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음악이었다. 그러한 개인적인 기억에 기대어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는 작업을 해왔다. 나 자신을 위해 아르보 패르트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발렌틴 실베스트로프를 발굴했다. 만수리안을 내게 처음 소개해준 사람은 그와 같은 아르메니아 출신인 킴 카시카시안이다. 기아 칸첼리는, 그리스에 갔을 때 어느 그리스 음악가의 소개로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쿠르타그는 조금 다르다. 그는 부다페스트 출신이고, 부다페스트는 거리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빈에 가깝다. 그는 다름슈타트 출신의 작곡가 중 한 명이며, 거의 신빈악파에 속한다.
기돈 크레머와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말러 10번을 녹음했지만, 이는 현악 4중주와 현악 오케스트라 편성이었다. 언젠가 ECM 뉴 시리즈를 통해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말러ㆍ브루크너 교향곡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브루크너 현악 4중주가 곧 발매되지만(체트마이어 현악 4중주단의 브루크너 현악 4중주 C단조 WAB111, 10월 발매 예정) 말러ㆍ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녹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음반사들이 녹음했으니 내가 또 할 필요는 없다.
오페라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다. 오페라를 정말 좋아하지만 내 영역은 아니다.
팝 음악도 듣는가?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꽤 자주 듣는다. 라디오헤드를 좋아하고 그들과 연락하고 지낸다. 팝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부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좋아한다. 매시브 어택도 좋아하는데… 라디오헤드를 특히 좋아한다. 종종, 이 음악가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6년 후인 2019년, ECM 창립 5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그런 종류의 행사를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만약 50주년을 기념하여 모두가 모일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너무 먼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싶다. 나는 절대로 계획하지 않는다. ECM을 시작할 때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단지 녹음을 하고 싶었고, 기존의 녹음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만을 염두에 두었다. 오랜 시간,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50주년을 위해 다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난 아무 계획이 없다.
며칠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인가? 책임져야 할 직원들도 있는데.
그 발언은 어떤 음악을 녹음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나의 결정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난 음악가로서 그 여부를 결정한다. 그 결정에 있어, 얼마나 더 팔 수 있을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음반’을 제작할 때는 어떻게 팔지를 생각한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가라앉는 배 위에 있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사실… 시장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과거의 음반 회사 경영자들을 많이 만나봤다. 함부르크에서의 위대한 음악적 경험이 있는, 그러나 더 이상 프로듀서로서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뉴욕에서 많이 만났다. ‘음악’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이제는 훨씬 어려워졌다. (과거 그들이 일했던) 동일한 회사라도 과거에 비해 마케팅, 마케팅, 마케팅에 신경을 쓴다. 그 회사들의 신조는 ‘마케팅’이다. 반면 내 신조는 최고의 음악을 찾는 것이다. 녹음할 때 나의 목적은 작곡가 혹은 연주자의 입장이 되어 최선의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음악을 위해, 그 음악이 많이 팔릴 수 있을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해야 우리가 제작한 음악을 가장 효과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아르보 패르트의 경우처럼, 침묵에 가까운 음악도 대중적일 수 있다. 패르트는 청자의 즐거움을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물론 그는 자신의 음악이 청자에게 도달한 것을 행복해 했다. 그 점은 우리 모두 행복하다. 그러나 그 행복을 위해 음악적 아이디어를 상품화하지 않는다. ECM에는 유명세를 타지 않는 음악가들이 많다. 특히 우리의 현대음악 분야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들과 시작했다. 우리가 아르보 패르트와 작업할 때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 나는 아르보 패르트를 소개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인터뷰에서 ECM이 자신을 세상에 처음 소개했다고 밝힌다. 키스 재럿이 우리와 처음 작업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ㆍ찰스 로이드의 사이드맨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전엔 한 번도 솔로 피아노 녹음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 그는 오늘날의 그가 될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 영역에서 우리와 처음으로 녹음한 ‘유명 연주자’는 기돈 크레머였다. 그러나 기돈 크레머를 유명한 별로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아르보 패르트와 친한 친구였으며, 패르트의 음악을, 역시 환상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타티야나 그린덴코와 함께 초연했던 주인공이기에 그를 골랐다.
당신이 은퇴하고 난 후에도 ECM의 철학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 예상하는가?
우리의 카탈로그에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음악들이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킴 카시카시안ㆍ기돈 크레머ㆍ언드라시 시프ㆍ하인츠 홀리거ㆍ토마스 데멩가ㆍ켈레르 콰르텟과 같은 주인공들,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했던 작곡가들… 그들의 음악 제작에는 늘 대단한 순수함이 있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이 음악가들은 대부분 ‘첫 녹음’을 위해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곡가가 녹음 현장에 함께 참여했던 고유한 녹음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작곡가 자신이 녹음 안에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다른 이들은 그러한 정신을 가질 수 없다.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도 비슷하다. 음악가의 개성을 듣고, 그 고유함을 이해하라. 그리고 내면의 느낌과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무언가를 들어라. 가능하다면 그 사람의 내면에서부터 알아가도록 해라. 그리고 음악가들로 하여금 그의 방식대로 개발하도록 하고, 그가 아닌 방식으로 개발하게끔 하지 말아라. 그리고 시도해보라. 음악가에게 일정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진실이 아니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존경의 상호교환, 상호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경과 신뢰를, 프로듀서는 음악가의 내적인 소리와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물의 영혼처럼.
당신은 언제나 좋은 청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는 타고났다고 생각하나?
좋은 청자라면, 차별화된 듣기가 가능하다. 나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늘 들음으로써 이를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나 스스로가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음악이 말해야 하는 바를 ‘이해하는 일’은, 반드시 그것을 ‘좋아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좋은 프로듀서라면 좋은 청자로서 그 음악을 분석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악보를 읽지 못하는 음반 프로듀서들이 있다.
잘못된 일이다. 특히나 클래식 음악 프로듀서라면 반드시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좋은 프로듀서는 ‘음악가’가 되어야 한다.
악보를 읽지 못하는 프로듀서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물론 있다. 주로 팝이나 재즈 분야에서였다. 그들은 나름 괜찮은 프로듀서일 수는 있으나, 경영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s)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음악가를 발견하고, 스튜디오에 가서는 엔지니어들에게 일을 지시하는 사람들 말이다. 악보를 읽지 못하는 프로듀서들을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여러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음악의 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프로듀싱에 뛰어들려 한다면, 연주에 수정을 가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만약 악보를 읽지 못한다면 녹음 중에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는 프로듀서들은 얼마 없다. 그게 문제다. 사운드는 좋은 음악의 결과이다. 음악에 사운드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 항상 음악의 내용을 통해 음악을 들어야 한다. 말러ㆍ브루크너를 녹음하는 것과 패르트ㆍ시닛케를 녹음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내 말은, 모든 작곡가들에 대해서 어떻게 그들의 작품을 녹음할지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재즈나 팝에서는 사운드와 더불어 좋은 노래, 좋은 패턴, 좋은 퍼포먼스 등 모든 것이 훌륭하게 조화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사운드는 음악이 아니다. 사운드는 음악을 포착한 것이다. 녹음에서의 음악은 마이크로폰 이전에 시작된다. 이것은 당신이 음악가들에게 프레이징과 다이내믹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런저런 테이크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주어야 한다. 만약 프로듀서가 녹음 중 음악가와 대화하고 싶다면, 음악가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알아야 한다. 악보를 읽지 못하면 말할 수 없다. 그 점을 꼭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