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나 해학이 주는 재미는 공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서민들이 좋아하던 우리의 고전 공연 양식 중 역할극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양반을 흉내내고 왕을 희화해서 하고픈 이야기를 은근슬쩍 꺼내는 보통 사람들의 오락은, 웃음 뒤에 남게 되는 쌉싸름한 현실 감각의 절묘한 재미를 담아낸다. ‘애비뉴 큐’의 즐거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8월 23일~10월 6일, 샤롯데씨어터.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설앤컴퍼니
뮤지컬에서 풍자와 해학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소재다. 특히 브로드웨이 산 상업 뮤지컬 무대 중에는 코미디가 많다. 물론 넘어지고 쓰러지는 슬랩스틱 부류도 있지만, 대부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작품들은 풍자와 해학의 재미가 담겨 있는 무대다. 1900년대 초반 등장했던 콜 포터의 ‘애니싱 고스(Anything Goes)’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뮤지컬 형성기부터 이런 부류의 작품들은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애비뉴 큐’의 즐거움도 여기서 출발한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보고 자랐을 텔레비전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빌려와 성인이 된 인형들과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뉴욕 달동네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건너와 석사를 두 개나 취득한 후 상담사가 됐지만 아직 손님이 없는 일본계 이민자 크리스마스이브와 그녀의 약혼자인 30대 실업자 브라이언, 귀엽고 똑똑하지만 애인이 없는 케이트 몬스터와 입사 첫날 직장이 사라진 프린스턴, 커밍아웃하지 않은 동성애자 로드와 그의 친구이자 빈대 인생인 니키, 인터넷 성인물 마니아인 트레키 몬스터와 막나가는 섹시녀 루시 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밑바닥 인생들이다. 심지어 누구 인생이 가장 형편없는지를 서로 겨루며 노래도 부른다. 믿기지 않는 삶의 모순이 인형극의 형식을 빌려 코미디로 재연된다. 그래서 웃고 즐기면서도 우리 삶 속의 말 못한 비밀들 같아 솔깃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흥행을 기록한 대작 뮤지컬 ‘위키드’가 어떻게 토니상 수상식에서 이 작은 작품에 주요 수상 부문을 헌납하게 됐는지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적나라한 노랫말의 ‘돌직구’가 주는 재미에 위력을 더한 것은 바로 우리말 자막이다. 직설적인 표현의 원어로 이해해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농담과 익살을 적당한 수준의 의역을 덧입혀 맛깔스레 전한다. 덕분에 원작의 노랫말 ‘조지 부시’는 배우들이 합창하는 ‘김정은’으로 대체됐고, 방탕하다는 의미의 ‘슬럿(slut)’은 ‘대걸래’라는 은어로 바뀌었다. 때론 그림이나 사진을 활용해 언어보다 이미지로 뜻을 전달하는 기발한 방법도 등장한다. 메시지로 대화하고 그림으로 공감하는 요즘 인터넷 세대의 커뮤니케이션을 적용시킨 셈이다. 일일이 노랫말을 읽고 무대를 봐야 하는 투어 공연들의 맹점을 효과적으로 덮어주는 기발함이 미소 짓게 만든다. 이번 내한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의 수준도 비교적 만족할 만하다. 특히 여러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며 때로는 목소리 톤을 바꾸고 시선과 얼굴의 각도를 달리해 무대를 자연스레 이끌어내는 두 주연 배우 – 케이트·루시 역의 케리 앤더슨과 프린스턴·로드 역의 니컬러스 덩컨은 연기자가 왜 천의 얼굴을 필요로 하는 직업인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니컬러스 덩컨은 영국 순회 공연에서 같은 배역으로 참여했고, 칼리 앤더슨은 이번 국내 무대가 첫 경험이지만 다른 작품에서 주연으로 등장한 바 있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내한 뮤지컬도 장기 상연이 이뤄지면서 실력파 배우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 같아 반갑다. 퍼펫이 등장해 아동용 뮤지컬로 오인할 것을 걱정했던 제작사의 우려는 ‘19금 뮤지컬’을 표방한 효과적인 홍보 문구로 기우에 그칠 전망이다. 다만 역효과로 객석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열기가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아쉽다. 비행기값 안 들이고 브로드웨이 공연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니 공연장을 꼭 찾아보라 권하고픈 마음이다. 이러저러한 이야기에 웃고 즐기다 보면 우리네 세상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절로 미소 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