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한국판 초록마녀가 등장했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2월 1일 12:00 오전

2014년 1월 26일까지 샤롯데씨어터

해마다 연말 뮤지컬계는 전쟁터다. 올해도 예외는 없다. 수많은 장르와 형태를 지닌 대작들이 한판 승부를 벼르는 모양새가 사뭇 비장하게까지 보인다. ‘위키드’는 그중에서도 특히 시선을 모으는 작품이다. 스토리나 음악 등 외형적 볼거리가 풍성한 탓도 있지만, 불과 얼마 전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의 최고 매출을 가뿐히 상쇄시킨 전력 탓이다. 해외 투어 팀이 방한한 지난 2011년 4개월 남짓한 공연에서 ‘위키드’는 190억 원의 제작비에 260억 원 매출이라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 라이선스 제작 소식에 사람들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고, 메인 롤 캐스트가 알려지자 기대 심리는 더욱 고조됐다. 그리고 마침내 연말 대목 뮤지컬 시장의 빅 카드로 막을 올렸다.
소문난 잔치에 먹거리가 많았을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합격이다. 이제 우리나라 라이선스 뮤지컬 수준은 가히 월드클래스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무대는 화려하고 의상은 아름답다. 원작에서 고스란히 가져온 무대이니 당연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세심한 배려와 노력, 정성이 기울여져야 한다. 꼼꼼하지 못하면 ‘짝퉁’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샤롯데씨어터의 물리적 환경도 작품몰입을 한층 격상시켜준 느낌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접혀진 종이 조형물들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팝업북처럼, 형형색색의 무대가 보여주는 현란한 이미지는 왜 이 작품에 우리 관객들이 열광하는지 미루어 짐작케 한다. 다만 옥에 티 같이 답답한 음향 디자인은 여타 작품들처럼 여전하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초반 무대에서 느끼는 문제점일 수도 있는데, 우리말을 ‘언어’가 아닌 ‘소리’로만 인식하는 외국 스태프들의 한계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어와 한국어의 소리 구조와 문법이 다른 만큼 음향은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원작자들이 언제쯤 이해하게 될지 무척 아쉽다.
배우들의 역량이나 연기는 기대 이상이다. 더블·트리플로 진행되는 우리나라 뮤지컬 무대에서 배우들은 그야말로 열정을 불사르는 연기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역량이나 수준에 따라 하루하루 작품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단점도 있지만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뮤지컬이 지니고 있는 강점이다.
주연을 맡은 김보경(글린다 역)·박혜나(엘파바 역)는 물론 네서로즈 역의 이예은이나 교장 역의 김영주, 마법사 역의 이상준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캐스팅 만족도가 꽤 높다. 또 다른 주역인 정선아·옥주현 등 다른 캐스트의 공연까지 섭렵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수반돼야겠지만, 기꺼이 무대를 다시 찾고 싶을 정도다.
다만 원작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관객들이 작품의 유머나 위트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네서로즈의 옷장 거울에 등장한 초록 마녀 엘파바가 “역시 이 세상에 우리집만 한 곳은 없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본래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는 마법의 주문이다.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오는 영미권과 달리 우리 관객들은 아무 반응이 없다. 원작의 디테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영미권의 ‘뮤지컬 영화 100선’ 같은 TV 특집 프로그램에서 단골로 1~2위를 차지하는 뮤지컬 영화의 아우라를 배제하고 이 작품을 즐긴다는 것은 사실 무리다. 심장 없는 양철인간, 허수아비의 과거, 두려움에 늘 숨어사는 사자의 비밀은 물론, 하필 왜 그 때 돌풍이 불어 도로시가 오즈로 왔는지의 이유 등은 뮤지컬을 감상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이다. 엘파바가 지하에 가둔 도로시에게 죽은 여자의 신발에나 집착한다며 내뱉은 시니컬한 표현은 그래서 더 재미있는 이 뮤지컬의 묘미다. 비싼 입장권의 효용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원작을 미리 접해보라는 조언을 할 수밖에 없다. 진짜 만끽하길 원한다면 원작을 곱씹어 새겨두길 부탁하고 싶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설앤컴퍼니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