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시간이 지나도 그때 그 감동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2월 1일 12:00 오전

연말 학예회 음악으로 시작해 글로벌 흥행작으로 떠오른 뮤지컬의 특별한 흥행공식


▲ 주인공 요셉이 중심이 된
스타 마케팅의 원조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제목이 긴 뮤지컬들이 있다. 197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던 흑인 재즈 아티스트 루이스 조던(Louis Jordan)의 음악들로 만든 뮤지컬 ‘모라는 이름의 다섯 사나이(Five guys named MOE)’나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마누엘 푸이그의 원작을 각색한 뮤지컬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woman)’ 등이 그렇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인 ‘태풍(The Tempest)’을 각색한 SF영화를 다시 무대용 버전으로 탈바꿈시킨 ‘금단의 별로의 귀환(Return to the Forbidden Planet)’은 스물여섯 개나 되는 영어 스펠링으로 이뤄진 긴 제목을 자랑한다. 우리 창작 뮤지컬 중에는 시인 원태연의 제목을 따서 만든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도 있다. 긴 표현을 일일이 말하지 않는 요즘 세대들에겐 ‘넌 가끔 난 가끔’이라는 축약 버전으로도 회자되던 작품이다.
뮤지컬 넘버 중에서도 간혹 긴 노래 제목이 있다. 뮤지컬 ‘메리 포핀스(Mary Poppins)’에 나오는 ‘슈퍼칼리프래질리스틱익스피알리도셔스(Supercalifrazilisticexpialidocious)’도 그렇다. 입에 달고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기는 마법의 단어라는 설명도 흥미롭지만, 무대 버전이 만들어지며 하나하나의 영어 스펠링에 따라 안무를 더하는 재미가 흥겹고 인상적이다.
그러나 긴 제목 뮤지컬의 원조 격이라면 단연 ‘조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자그마치 40개의 영어 스펠링이 더해진 어마어마한 길이의 제목이다. 너무 긴 탓인지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으로 올리면서 축약본이 등장하기도 했다. 바로 ‘요셉 어메이징’이다. ‘조셉’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 ‘요셉’의 영어식 표현이라 우리말 제목에는 익숙한 이름 ‘요셉’이 등장하게 됐다.

가족 관객에게 특히 사랑받는 뮤지컬
긴 제목과 익숙하지 않은 이미지 탓에 낯선 작품쯤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국내와 달리 글로벌 뮤지컬계에서는 흥행 뮤지컬로 당당히 손꼽힌다. 영미권에서는 특히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즐겨 찾는 작품으로 유명한데, 심지어 뮤지컬 영화의 하단에 노랫말을 자막으로 붙여 상영하는 ‘싱얼롱(Sing Along)’ 콘텐츠로도 유명했던 경우다. 조용히 앉아서 정숙히 봐야 하는 일반 영화와 달리 ‘싱얼롱’ 영화란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특별 상영을 말한다.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이하 ‘요셉 어메이징’)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과 더불어 싱얼롱 뮤지컬로는 가장 인기 높은 작품이다. 서구 사람들, 특히 영미권 가족 관객들에게 얼마나 친숙하고 정겨운 멜로디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뮤지컬을 만든 사람부터가 흥미거리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에비타(Evita)’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등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세 살 연상인 천재 작사가 티모시 라이스를 만나 처음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줄여서 팀 라이스라고 불리는 그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함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등을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막이 올랐던 ‘라이언 킹(The Lion King)’이나 오페라를 가족극으로 변형시킨 뮤지컬 ‘아이다(Aida)’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로이드 웨버가 ‘요셉 어메이징’을 세상에 발표한 것은 그의 나이 19세, 팀 라이스 22세 때의 일이다. 젊고 패기에 가득 찬 두 천재 예술가는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더해 작품을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런던 소재의 사립학교인 콜렛 코트 스쿨의 연말 학예회용 음악이었던 탓에 15분 길이의 칸타타 형식이었다. 이 결과물을 듣게 된 로이드 웨버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게 됐고, 결국 자신이 지휘자로 있던 성당에서 다시 공연을 올리는 기회를 주선한다. 그리고 이것이 성공으로 이어지게 돼 결국 두 콤비는 성서에 바탕을 둔 보다 큰 작품을 기획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이다. ‘요셉 어메이징’은 그런 의미에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시발점이자 기폭제가 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첫 시작에서부터 남다른 연유가 있던 탓인지,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은 수많은 학교들의 학생 공연 형태로 인기를 누리며 성장해왔다. 정식 공연을 올리기 전 콘셉트 앨범이 등장한 것은 1969년의 일이고, 1972년에는 영 빅 시어터 컴퍼니에 의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선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게 된 이면에는 수많은 학예회 버전의 학교 프로덕션들이 존재하고 있다. 성서 속 이야기와 인물을 재미있게 꾸며 재연하는 형식은 중세시대 글을 읽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종교 속 이야기를 흥미롭게 꾸며 들려주던 유랑극단의 미스터리 연극(성서 속의 이야기가 신기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교황청에서는 포교에 대한 이들의 공로를 인정해 상을 내리기도 했다)과 비슷하다고 해서 ‘요셉 어메이징’의 제작 초기에는 미스터리 뮤지컬이라 불리기도 했다.

아이돌 마케팅으로 성공한 원조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스타 마케팅을 일찌감치 적용했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1991년 런던 팰러디엄 극장에서 대극장용 뮤지컬로 올린 버전이 대표적이다. 이 공연에선 당시 영국에서 인기를 누리던 호주 TV 드라마 ‘이웃들(Neighbors)’의 남자 주인공인 금발 미소년 배우 겸 가수였던 제이슨 도노번이 주인공 요셉 역을 맡아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뮤지컬의 메이킹 영상을 보면 런던의 교통 사정 때문인지 자전거를 타고 극장으로 향하는 제이슨 도노번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그럴 때면 극장의 배우 출입구 옆에 선물이나 꽃다발을 들고 줄을 서 있는 소녀 팬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제이슨 도노번의 폭발적인 인기는 이 작품에 아이돌 가수나 인기 스타가 등장하는 전통을 만들어냈다. 199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막을 올린 공연에서는 도니 오스먼드가 나와 화제가 됐고, 2003년에 올린 런던 리바이벌 공연에선 아이리시 보이 밴드 보이존의 멤버로 인기를 누렸던 스티븐 게이틀리가 나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요즘 우리나라의 인기스타가 등장하는 뮤지컬들처럼 당시 이 공연들에서는 주인공인 요셉이 중심이 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이들을 돋보이게 하려는 여러 노력들이 수반되기도 했다. 노래를 여러 형태로 변주해가며 주인공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파격(?)적인 변신도 시도됐다. 물론 요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평단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타임아웃 지’에 기고된 평론에서는 “스티븐 게이틀리가 처음 코트를 달라 노래할 때 나는 박수를 쳤고, 두 번째 같은 가사를 노래할 때 손목시계를 봤으며, 또 한 번 그 노래를 부르자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젠장! 누가 저 녀석에게 코트 좀 가져다줘’라고 외치며!”라는 언급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평단의 반응과 관객의 호응은 별개의 문제였고, 결국 이 작품엔 아이돌 스타가 주인공이라는 흥행 공식을 오히려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취향에 따라 골라 듣는 다양한 음원
사연도 많고 배경도 많은 ‘요셉 어메이징’은 감상할 수 있는 음원도 여러 가지다. 초창기 음원 중에는 앞서 설명한 1969년 제작 콘셉트 앨범이 단연 흥미롭다. 음악의 배열이나 구조가 조금 엉성하고 빛바랜 듯한 느낌도 있지만, 10대의 천재 작곡가·천재 작사가가 자유롭게 상상하며 위트를 담아 표현한 음악적 실험들이 정겹게까지 느껴진다. 실제 성서에서도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은 아들이 많아 훗날 이스라엘이라 불리며 모든 국가의 아버지 같은 인물인데,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이 점에 착안한 역발상으로 뮤지컬 안에 세계 각국의 인기 대중음악 장르를 선보이는 실험을 더했다. 덕분에 뮤지컬 음반 안에는 칼립소·발라드·샹송·컨트리 등 여러 문화권의 다양한 음악적 템포와 장르가 담기는 재미가 시도됐다. 무대 아닌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흥겹고 즐거운 오락물의 역할을 한다.
스타 마케팅의 시작을 알린 1991년도 오리지널 런던 캐스트의 음원도 흥미롭다. 뮤지컬의 긴 제목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외투 같은 이미지로 구현됐는데, 네임택처럼 걸린 자그마한 삼각형 쪽지 속에는 음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배우 이름이 새겨 있다. 특히 제이슨 도노번의 음성이 담긴 앨범은 감미로운 아이돌 가수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호주 출신 금발의 미녀가수 카일리 미노그와 함께 불렀던 ‘당신께만 특별히(Especially For You)’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얼마나 달콤하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스타, 리 미드의 음반도 있다. 전체 뮤지컬수록 음반은 없지만 자신의 개인 앨범 속에 자신의 꿈을 이뤄준 ‘요셉 어메이징’의 최고 히트곡 ‘어떤 꿈이라도 좋아’를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을 모두 보고 들어야 제 맛을 만끽할 수 있지만 전후 사정을 감안하며 감상해보면 달달한 목소리에 미소 짓게 된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12월 12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도 정동하(부활)·양요섭(비스트) 등을 내세운 스타 마케팅이 활발하다. 하지만 우리말 음반 제작 소식은 아직 없다. 아쉽지만 영어 음반들만이라도 뒷이야기에 곁들이며 귀 기울여보면 감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뮤지컬의 신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초겨울 정취와 더없이 어울리는 멋진 체험을 안겨줄 것이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요셉 어메이징’,
무명 배우를 스타로 만들다!

최근 해외 뮤지컬계는 단순히 스타를 기용하기보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예 스타를 발굴하는 것으로 탈바꿈하는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 영국 텔레비전에서 방송됐던 ‘어떤 꿈이라도 좋아(Any Dream Will Do)’가 그렇다. 우리나라의 ‘슈퍼스타 K’나 ‘K팝 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 경쟁의 승자는 가수가 아닌 무대 위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기용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제목 역시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에 나오는 노래를 그대로 차용했다. 물론 극 안에서는 꿈을 해몽하고 쫓고 꿈을 통해 금의환향을 이루는 요셉의 사연이 담긴 의미로 쓰이지만, TV 프로그램에서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어떤 꿈을 꾸라는 중의법적 의미의 재치가 발휘됐다. 당시 엄청난 경쟁 끝에 마침내 무명 배우였던 리 미드가 최종 승자가 됐고, 그가 나오는 뮤지컬 공연의 티켓은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됐다. 관객 입장에서는 단순히 새로운 스타를 만나는 재미뿐 아니라, 그 배우가 저 무대에 서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목격한 관찰자의 입장도 되기에 큰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공연계에서도 벤치마킹을 고려해볼 만한 흥미로운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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