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지난 13년간 뮤지컬 산업의 흐름과 함께 살아온 배우의 이야기다.
빛과 그림자를 통과해온 한 사람이 되돌아본 시간이자, 그의 진심 어린 고백이다.
희극과 비극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인생의 그림이 짜이듯, 조승우와 주고받은 이야기도 그러했다. 곁에서 몇 시간 남짓 지켜본 조승우는 결코 빠른 사람이 아니었다. 느린 걸음에, 기지개를 펴는 것 같은 느슨한 몸의 움직임까지… 하지만 결코 무겁거나 질질 끌지 않는, 마치 고양이 같다고 할까. 게다가 그 속도는 한 마디 말을 내놓는 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가볍거나 마냥 유쾌할 수도 없었다. 인터뷰 도중 때때로 그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깃털 같은 웃음이기보단 마치 답답한 가슴에 숨통을 틔우기 위한 것에 가까워보였다.
조승우와의 대화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돈키호테로부터 시작됐다.
‘이룰 수 없는 꿈’을 부르며 이뤄낸 꿈
조승우가 ‘맨 오브 라만차’를 처음 본 것은 중학생 시절이었다. 당시 계원예고에 다니던 친누나가 알돈사 역으로 출연한 청소년 버전 공연을 보러 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그는 “꿈 없는 소년”이었다. 내성적이다 못해 해야 할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답답한 성격이었다. 그때 “꿈과 이상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는 극중 세르반테스의 대사가 어린 가슴에 들어와 콕 박혔다. “꼭 저한테 하는 얘기처럼 들렸어요. 단순하지만 운명적이었죠. 공연을 보는 내내 울고 웃으면서 모든 감정을 쏟아냈어요. 공연이 다 끝났는데도 차마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기도했어요. 뮤지컬배우가 돼서 저 배역으로 무대에 서게 해달라고.”
이듬해 조승우는 계원예고에 입학했고, 오래지 않아 그 공연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간 배역은 산초. 어린 마음에 펑펑 울며 속상해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그는 어느 오디션에 가든 ‘맨 오브 라만차’의 뮤지컬 넘버인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을 불렀다. 83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임권택 감독에게 발탁된 영화 ’춘향뎐‘ 오디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봤어요.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제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게 ‘맨 오브 라만차’니까요. 작품이 갖고 있는 힘이 정말 크고, 그걸 제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더 소중하죠.”
‘맨 오브 라만차’의 막이 오르면, 브라스가 먼저 작품의 서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여러 캐릭터를 대변하는 선율이 흐르고 인생의 희로애락과 각기 다른 사연이 하나의 세상으로 응축되어 가장 짙게 드러나는 순간은 조승우의 가슴을 언제나 울컥하게 만든다. 20년간 듣고 또 들어왔지만, 이번 무대에서 서곡을 다시 들었을 때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대, 꿈꾸고 있는가?”
‘맨 오브 라만차’가 그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언제나 변함없다. 하지만 세르반테스이자 돈키호테가 되어 입었던 갑옷의 무게만큼은 6년 전보단 지금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세르반테스가 자신의 지난 인생을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친구여, 난 사는 동안 언제나 생을 직시해왔소. 고통·불행·배고픔! 상상도 못할 잔인함….’ 이젠 이 대사가 좀 덜 어색해졌어요. 지난 6년 동안 세상의 때 묻은 것들을 보고 나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조금은 정당화된 느낌이랄까.”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머릿속에는 돈키호테가 부른 ‘이룰 수 없는 꿈’이 떠올랐다. 무엇이든 불가능한 상황을 나열하며 시작되는, 바로 그 가사 말이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싸움 이길 수 없어도/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길은 험하고 멀어도/정의를 위해 싸우리라/사랑을 믿고 따르리라/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힘껏 팔을 뻗으리라/이것이 나의 가는 길이요/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그 가사가 지금껏 조승우가 걸어온 길과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와의 대화가 ‘맨 오브 라만차’에서 다음 화제로 넘어가고도 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뮤지컬과 영화 연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뮤지컬배우라는 꿈을 안고 달음질을 시작한 10대 소년은 20대 초반 세간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30대 즈음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에 당당히 올랐다. 세상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그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놨지만 조승우라는 배우는 천천히 가능한 한 깊숙이 들어가는 것에 익숙한 타입인 듯했다. 뮤지컬 무대에서 영화, 드라마로 연기의 지평을 넓혀가는 가운데 그는 스스로를 파도 위에 과감하게 던지기도 했고, 오히려 급류와도 같은 순간에 내몰리기도 했다. 조승우와의 대화는 대중문화 산업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크고 작은 파도를 타고 넘어온 몇몇 지점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물결 사이사이 건져 올린 것은 조승우의 진심 한 조각이었다.
10년 넘게 뮤지컬과 영화만을 해왔다. 그러다 지난해부터는 드라마 작업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장르에 나선 이유가 궁금하다.
나의 고향은 무대다. 어릴 적 꿈꾼 곳도 무대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하는 건 호기심·도전·모험이라는 단어에 가깝다. 캐릭터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 모든 장르가 소재의 한계에 부딪혔고, 비슷한 캐릭터들만 계속 나오고 있다. 예전엔 연기를 하는 데 있어 장르를 많이 따졌지만, 이젠 방송국 카메라든, 영화 카메라든 그 앞을 무대로 여기고 연기하기로 생각했다.
어느 제작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자신과 가장 잘 맞는가.
연습 환경은 당연히 뮤지컬 무대가 편하다. 무대는 6주 동안 정해진 시간대로 연습하고 따로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하나에만 집중할 환경이 마련되니까 좋다. 드라마는 환경적인 부분만 두고 봤을 땐 엉망이다. 배우 입장에서,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다. 한 번의 촬영이 바로 돈과 직결되기에 감정선과 상관없이 최대한 한 장소에서 묶어서 촬영을 한다. 모두가 시간·돈·대본에 쫓긴다. 하지만 그걸 즐기는 배우들도 있더라. 반면 같은 영상이어도 드라마에 비해 영화는 여유가 좀 있다. 감정선 잡기가 힘들지만 대본은 미리 나와 있으니까. 드라마는 준비만 되면 서둘러 가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일정이 겹치는 작품엔 잘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예외도 생긴 것 같다. ‘맨 오브 라만차’ 연습 중 촬영했던 단막극 ‘이상 그 이상’이 최근에 방영됐는데.
‘마의’ 때 반년 넘게 함께 촬영한 동갑내기 감독님의 데뷔작이다. 서로 같은 세대라 대화도 잘 통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분이 연출한다는 얘기에 주저 없이 결정했다. 뮤지컬의 1·2막 런스루까지 다 마친 상태에서 연출가에게 허락을 받고 드라마 촬영을 했다. 단막극 전체 촬영은 2~3주 정도였는데, 나는 6회 차 안에 촬영을 끝냈다.
의리 때문에 참여한 건가?
대본이 안 좋고 작품적 메시지가 와 닿지 않았으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다음에 하자고 했을 것이다. 작품도 좋고 협업하는 사람들도 좋아서 한 거다.
‘이상 그 이상’은 오랜만에 본 단막극이기도 했지만, 내용 전개가 식상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게 단막극의 매력인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너무 휘둘리고 있다. 최근에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소재도 다양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질 것 같은 내용을 가지고 한 회를 영화보다 더 근사하게 찍더라. 물론 미국은 자본이나 시스템이 굉장히 잘 돌아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작품에 깊이가 있고 단순히 흥행만을 노리고 하는 것 같아보이진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극적인 것과 시청률을 너무 의식한다. 시청자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고 있기도 하고. 시청자를 배려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어낸다는 관점에서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이번 단막극을 두고 어느 한쪽에선 너무 어렵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70분 안에 어떻게 모든 걸 다 넣을 수 있겠나. 오히려 새로운 시도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응답하라 시리즈’가 흥행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추억이 됐을 법한 걸 가져와 새롭게 풀어서가 아닐까.
▲ “어린 시절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봤어요.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제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게 ‘맨 오브 라만차’니까요.
작품이 갖고 있는 힘이
정말 크고, 그걸 제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더 소중하죠.”
여러 장르에서 러브콜을 받을 텐데, 1년이면 어느 정도인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택하나.
빤한 대답 같지만 좋은 작품을 택한다. 대본은 보통 1년에 50~60편 이상이 들어온다. 누아르나 코미디 같이 유행을 타는 장르는 잘 택하지 않고 시대가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작품을 좋아한다. 또 후회할 것 같은 작품은 잘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망했든, 작품평이 좋지 않았든 지금껏 후회한 작품은 없었다.
시대적인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는데.
기본적으로 과거 이야기를 좋아한다. 감성이 좀 아날로그적이다. 장르에 상관없이 현대극을 다뤄서 식상할 바엔 차라리 과거로 돌아가 뻔한 것도 근사하게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보는 사람에겐 캐릭터뿐 아니라 장르, 즉 프레임 속 연기와 무대 위 연기의 차이도 상당하다.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에서 드러나는 조승우의 무대 장악력을 선호하는 편이다.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봤다. 무대에서는 막 휘어잡는데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약해보일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무대화된 극본이 굉장히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지킬 앤 하이드’는 말할 것도 없고 조로라는 개구쟁이 영웅이든, 돈키호테며 헤드윅이라는 존재까지…. 무대 대본은 어떤 형식을 빌려서 주인공에게 모든 감정이 쏠리도록, 가장 극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올려놓게끔 만들어졌다. 그러니 뮤지컬 무대 위 캐릭터는 더 강해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화 대본은 일상을 탁 잘라 그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떤 배역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에너지가 무대와는 비교가 안 된다. 영화에서 뮤지컬 무대같이 에너지를 쓰면 굉장히 과해보이고 억지스럽게 보일 수 있다. ‘말아톤’의 초원이 같은 캐릭터가 아닌 이상 말이다. ‘말아톤’ 이후 ‘도마뱀’이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사람들이 “저거 연기 한 거야?” 하는 반응을 보이더라.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센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대중 가운데 장르적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면서 작품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생기는 오해는 불가피하다.
내가 생각하는 대중의 오해는 좀 다르다. 괜찮은 배우에 대한 평가인데, 극단적인 예로 연말 시상식을 들 수 있다. 시상식은 후보 여러 명 가운데 한 명이 뽑히는 구조다. 여기서 모든 후보를 두고 점수나 순위를 매길 수는 없다. 트로피는 단순히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설득력 있고 명확하게 보여줬느냐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연기에는 경쟁이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연기에 경쟁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제일 싫어하는 표현 중 하나가 ‘연기 대결’이다. 연기를 왜 대결한다고 생각할까? 서로가 앙상블이 되어 조화를 이루고 액션과 리액션으로 이어지는 게 연기다.
조승우 신드롬, 10년의 빛과 그림자
뮤지컬에 관한 영역으로 이야기를 좁혀보겠다. 뮤지컬계에서 특정 배우에 대한 팬덤 현상이 폭발한 시점을 ‘지킬 앤 하이드’ 그리고 ‘조승우’라는 키워드가 등장한 때로 볼 수 있다. 거기에서 비롯된 빛과 그림자가 있었을 텐데.
배우에 대한 팬덤의 시작은 남경주·최정원 선배였다. 나 역시 그 배우들을 보러 다녔고. 그러다 내가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 된 뒤엔 빛과 그림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솔직히 ‘지킬 앤 하이드’가 그렇게 잘될 줄 몰랐다. 언론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신드롬처럼. 티켓 파워·객석점유율 98퍼센트·조승우 신드롬… 이런 것들 말이다.
실제로 작품마다 매진 사례가 계속 이어졌다.
내가 뮤지컬계를 잡고 뒤흔들어놓은 것마냥, 거의 영웅처럼 과대 포장된 기사가 그 무렵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지킬 앤 하이드’가 끝나자마자 영화 ‘말아톤’이 나왔고, 5백만 관객이 들면서 뮤지컬과 동시에 영화 쪽에서도 이름을 알리게 됐다. 운이 좋았다. 그러고 나서 뮤지컬마다 다 흥행이 되고.
기분이 어땠나.
처음엔 얼떨떨했다. 그러더니 시간이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더라. 많은 시선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블로 캐스팅된 배우들이 내 안티가 되기도 했다. 제작사는 홍보를 위해 내 이름을 먼저 내세우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들의 이름은 뒤로 가게 됐다. 기사도 나와 관련된 내용이 먼저 노출되면서 상대적으로 피해 보는 배우들도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선 “조승우가 뭐기에” 하는 말도 나왔고. 하지만 그건 내가 감당할 몫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건 다음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을 하기로 결정이 되면 제작사는 티켓을 먼저 푼다. 대본도 아직 못 받아봤고 연습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는데, 티켓은 몇 분 만에 매진이 됐다.
이름만으로 그렇게 됐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일들이 몇 년간 반복되니 중압감이 말도 못하게 커졌다. 운좋게도 잘 버텨오다가 군대 갈 시점에, ‘2년 동안 다 잊어버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 놔버렸다. 그런데 제대한 뒤에 또 난리가 났다. ‘지킬 앤 하이드’ 때문에. 개런티 얘기가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고… 정말 연기할 맛이 안 났다. 그냥 연기만 하면서 살 순 없을까. 내가 왜 세간의 집중을 받아야 하나 싶은 생각만 들었다.
(2010년 당시 한 일간지에는 배우 조승우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하면서 회당 1,800만 원, 총 14억 4천만 원을 받는다는 기사가 실렸다. 해당 제작사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조승우의 출연료가 과한 게 아니다. 그 정도 가치는 충분히 있다”라는 말을 내놓았다. 이후 관련 기사를 쓴 기자는 조승우의 티켓 파워를 몇 년 연속 MVP를 받은 스포츠 선수의 연봉 상승에 비유하면서 공정사회란 ‘용을 용답게 대우해야’ 이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의 기대 심리가 배우에게 끼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겠다.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배우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를 대비해 커버할 사람을 세운다. 아니면 더블 캐스팅인 배우가 대신 해주거나. 물론 이건 티켓을 팔 때부터 ‘배우의 사정에 따라 캐스팅 스케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미리 공지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열이 끓어오르고 지금 당장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도 공연을 못하겠다고 말을 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해본 적도 없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 공연을 대신 해준 적은 있지만 내 회차를 다른 배우에게 부탁한 적은 없다. 만약 못 한다고 한다면 먼저 환불 사태가 생길 테고, “배우가 관리도 못해서 공연도 못 하냐”라는 말이 나올 테니까. 예전에 일본 공연도 성대결절인 상태에서 했다. 어떻게든 막은 오른다는, 그 말만 믿고 갔다. 그런 것들이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하고. 나를 원하는 관객들이 많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역설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반면 ‘지킬 앤 하이드’를 계기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기본적으로 배우는 선택 받는 쪽이지만, 이젠 선택하는 입장이 되지 않았나.
맞다.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하고, 공평하지 않지만 오디션을 보지 않는 일들이 많이 생겼다. 말 그대로 선택을 하는 것이고… 축복받은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입장임에도 섣불리 나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따져보면 난 작품수가 많은 배우는 아니다. 또다시 그림자 같은 이야기인데… (웃음) 두려운 것도 있다. 좀 위험한 말이지만… 식상한 것과 그렇지 않은 작품, 뻔한 것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구분 짓는 게 있다. 난 항상 산이 있어야 한다. 넘어야 할 산 말이다. 배우 스스로 혹사시키는 게 아니라 도전할 만한 가치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고민하고 빠져들고, 내 모든 걸 다 던질 가치가 있는 작품인지,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고 요동치게 할 작품인지가 중요하다. 드라마든 영화든 뮤지컬이든 그런 작품이 많지가 않았다.
몇 년 전 시상식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때 한 말은 진심이었다. 나 역시 창작뮤지컬을 정말 열심히 했다. 지금도 창작극을 하고 싶다. 그런데 뮤지컬 제작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해 제작 환경이 악순환을 겪고 있다. 제작자들은 배우들이 개런티를 너무 많이 부르고, 그래서 배우 때문에 건강하게 제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냉정히 말해, 배우에게 그 정도의 돈을 안 쓰면 된다. 그런데 제작자들은 이름 있는 사람을 쓰길 원하고, 나중엔 투덜투덜한다. 말이 안 되는 일들이다.
현재 뮤지컬 산업에선 제작뿐 아니라 극작에도 한계가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창작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극작을 너무 쉽게 보는 데 있다. 산고의 과정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기보다 트렌드에 따라 사람들이 이런 거 좋아하니까 이렇게 하자는 식이다. 한때 뮤비컬이 유행한 적이 있다. 잘된 영화들 가지고 후루룩 뚝딱 만들어서 해놓고, 잘 안 된다고 이야기하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명성황후’를 보면 20년 동안 끊임없이 바뀌면서 보완되고 있다. ‘레미제라블’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고, ‘미스 사이공’도 계속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다. 이런저런 안 되는 이유들 속에서 작품성 있는 창작 뮤지컬들은 살아남았다. ‘빨래’나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같은 작품들처럼. 혹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수작들이 분명 있다. 아쉽게도 지금껏 창작 뮤지컬계의 혁명으로 나서겠다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에 목적을 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뮤지컬은 태생적으로 대중지향적이고 상업적인 장르가 아닌가.
맞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마당놀이의 경우 관객들이 정말 좋아했고, 지금 텔레비전으로 봐도 재밌는 요소가 많다. 그런 면에서 관객을 잡고 휘두르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을 울리는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외국 것을 흉내 내는 식이 많다. 비록 외국 것이어도 그 형식을 제대로 우리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직 부족하다. 큰 규모나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도 버려야 할 것 같고. 영화의 경우, 우리나라만큼 외화가 잘 안 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인도와 우리나라는 자국 영화를 엄청 사랑하는 민족이다. 창작물의 연장선에서 영화에는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힘이 있다고 본다. 뮤지컬 역시 우리나라 관객들이 가슴으로 확 느낄 수 있는, 또 외국에서 봐도 놀랍고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아직 못 찾은 것 같다.
오늘날 뮤지컬 무대에는 아이돌 가수 출신으로 실력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이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뮤지컬배우로 시작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제한된 자리 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처럼 외국 스태프들이 들어와 공연을 만들고 가는 라이선스 작품은 오히려 공평한 것 같다. 그들이 여는 오디션엔 아이돌도 필요 없고 티켓파워도 무의미하다. 오로지 실력과 자신들이 생각한 이미지의 싱크로율, 그리고 성실함을 본다. 그로 인해 신인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현재 그들이 무대에 서고 있다. 뮤지컬은 절대적으로 상업적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볼수록 좋다는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배우 위주, 흥행을 위한 캐스팅에만 매달리는 방식은 잘못됐다. 제작자의 입장에선 지금의 제작 환경에서 요구되는 퍼포먼스가 가능한,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고 관객에게 그만큼 감동을 줄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이돌 가수들이 배우를 꿈꾸면서 무대에 서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연습에 안 나올 거면 아예 뮤지컬하면 안 된다. 연습에 빠지면 소속사뿐 아니라 제작사도 잘못하는 거고, 관객에게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책임 못 질 것 같으면 하면 안 된다.
연출이나 제작엔 관심 없나.
전혀.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제작하면 망할 거고, 연출하면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볼 것 같다.
만약 어느 작곡가가 조승우를 위한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제안한다면 어떨까.
글쎄… 막연하게라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다. 뮤지컬에서 당연히 음악이 중요하지만, 나는 노래를 다른 사람들처럼 기술적으로 잘 부르고, 성량이 풍부하다거나 발성이 좋다거나 음역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하는 노래는 연기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부른다. 그래서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나중에라도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은.
하나 있다. 학전에서 미국의 ‘블러드 브라더스(Blood Brothers)’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춰 각색·번안해 올린 ‘의형제’인데 나의 뮤지컬 데뷔작이다. 사실 지금껏 라이선스 작품을 할 때마다 정서적으로 부딪히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늘 나의 감성 자체를 그 작품의 정서에 맞춰가는 작업에 신경썼다. 거기에는 충돌도 있고 절충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창작극은 정서가 딱 맞으니까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의형제’에서 걸인이자 내레이터로 나왔는데, 이십대 초반 이 작품을 하면서 가슴에 남은 것들이 정말 많아서 언젠가 뮤지컬 무대 은퇴작으로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승우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배우 지망생들이 상당하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나 자신을 돌이켜봤을 때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운이 좋아서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역할을 하면서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데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감사할 일이 있기까지는 스스로를 많이 못살게 굴었다. 완벽주의자 혹은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뮤지컬 하나만 보면서 살았을 때 사람들한테 “쟤는 저거 아니면 진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나 봐”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정도로 앞뒤 없이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때로는 밟기도 하고,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남들이 잘한다고 말해도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 귀를 막은 적도 많았다. 그 어떤 기준에도 나를 채울 수가 없었다. 만약 그때 나를 허용했다면 자만하고 오만해졌을 거다. 물론 자만하고 오만했던 적도 있다. 바로 깨지긴 했지만. 왜 나 같은 배우를 꿈꾼다고 하는 걸까, 꿈을 더 크게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다면 자신이 왜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배우가 된 이유가 뭘까… 나는 종교가 있으니,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살라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내 이름 뜻이 이을 승, 도울 우. 도움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는 의미다. NGO 활동이라도 할 것 같은 이름이지만, 어디서든 내가 있는 곳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도움의 모양이 꼭 한 가지는 아니니까. 배우는 이야기꾼이지 않나. 결국 작품을 통해 스스로 인생을 돌아보고 사람들에게도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뮤지컬배우 조승우는 이렇게 자신의 말을 모두 마쳤다. 만약 신이 가진 ‘정직의 저울’에 오늘의 대화를 달아본다면 그 접시는 어느 쪽으로 기울었을까.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확답할 수 없을지언정, 마음으로 들은 그의 이야기는 솔직했고 당당했으며 또한 겸손했다. 그래서 작은 믿음이 생겼다. 다가올 새로운 물결 앞에, 조승우가 내놓을 진심 한 조각에 대한 믿음 말이다. ‘맨 오브 라만차’는 2월 9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조선희(ZOAZOA Studio)
뮤지컬배우 조승우의 무대 위 발자취
2000 의형제
조승우의 데뷔작. 그의 할아버지 연기는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내레이터이자 걸인 역을 맡은 그는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일치감치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1 명성황후
국가대표 뮤지컬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캐스팅됐던 작품에 스물한 살의 조승우는 유희성과 함께 고종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당시 그를 곁에서 지켜봤던 유희성은 “어린 나이임에도 집중력과 열정이 뛰어난 배우”라고 회상했다.
2001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의 제비, 그의 마른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학전그린 소극장을 가득 채웠다. 조승우가 부른 ‘지하철을 타세요’는 투박하지만 시원하게 내지르는 목소리가 인상적인 넘버.
200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극단 갖가지 대표 심상태는 베르테르를 거쳐간 배우 중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조승우를 꼽았다. “너무 어려서 처음엔 별 기대를 안 했어요. 그런데 무대에 서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군요.”
2003 카르멘
조승우는 돈 호세로 나섰다. 카르멘을 죽이고 나서도 그녀를 붙든 채 슬픔 어린 미소를 지었던 그는, 소리 그 이상의 노래를 선보이며 매력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2007 렌트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렌트’의 음악을 듣고 팬이 됐던 그에게 ‘렌트’는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음악가 로저 역을 맡은 그는 자신의 오랜 우상이자 친누나인 배우 조서연과 함께 한 무대에 올랐다.
2004·2006·2010·2011 지킬 앤 하이드
제10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 그가 부른 ‘지금 이 순간’은 젊은 남성들의 노래방 애창곡 1번이다, ‘조지킬’이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그 열기는 2006년 일본 투어로 이어졌다. 조승우가 입대 전 마지막으로 출
연한 작품이자 군 전역 후 첫 복귀작으로 택한 작품도 ‘지킬 앤 하이드’였다.
2005·2007·2013 헤드윅
초연 무대엔 록 음악에 대한 이해 없이 섰다. 두 번째 무대가 되니 여자 분장이 어색하지 않았다. 세 번째 무대에선 굳이 연습이나 연구를 하지 않았다. 예전에 보이지 않고 찾지 못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가 곧 헤드윅이었다.
2011 조로
조로에 대한 조승우의 가능성을 일치감치 발견했던 사람은 음악감독 박칼린이었다. 그녀는 ‘명성황후’ 작업 당시 만난 조승우에게 “나중에 ‘조로’ 같은 역할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넸다고. 그에게 ‘조로’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모험이었다.
2012 닥터 지바고
개막을 2주 앞두고 긴급 캐스팅된 유리 지바고 역. 당시 그의 심정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구원 투수도 아니고 땜방 배우도 아닙니다. ‘닥터 지바고’는 제 작품입니다.”
2007·2013 맨 오브 라만차
“제가 이 작품을 통해 꿈을 꾸고 인생이 바뀐 것처럼, 관객들에게도 작품의 메시지가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