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대미 ‘라데츠키 행진곡’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2월 1일 12:00 오전


▲ 라데츠키 흉상과 명예의 검. ‘라데츠키 행진곡’의 주인공인 요제프 라데츠키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독립운동을 철권으로 억압한 오스트리아 장군이다

1848년, 지나친 언론 검열로 ‘경찰국가’라는 오명을 쓰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포정치를 주도한 장본인이던 메테르니히가 드디어 실각했다. 이를 계기로 압제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롬바르디아 지방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해방을 부르짖는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베르디 또한 파리에서 밀라노로 급거 귀국했다. 하지만 적국의 군대를 완전히 몰아낸 기간은 단 5일에 불과했다. ‘밀라노의 5일’은 향후 국가통일(Risorgamento)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대가는 참혹했다. 라데츠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은 잔인한 보복을 자행하며 롬바르디아 평원을 피로 물들였다. 1848년 8월 31일 라데츠키와 휘하 병사들은 빈으로 개선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현재 시립공원으로 변한 빈 성벽 앞에서 거창하게 열린 환영행사를 위해 행진곡을 작곡해 바쳤다. 제목은 ‘라데츠키 행진곡’,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슈트라우스는 자국 평론가로부터도 정치적인 음악가라는 비난을 들으며 피신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탈리아 민중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1월 1일이면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생방송으로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시청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슈트라우스 일가의 왈츠와 폴카가 주요 레퍼토리인 ‘이벤트’는 빈이 내세우는 가장 대중적인 음악상품이다. 그 마지막에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된다. 객석의 청중은 초연할 때 군인들이 박수친 것을 그대로 따라 한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볼 때 라데츠키는 우리에게 일제의 이토 히로부미와도 같은 철천지원수다. ‘라데츠키 행진곡’은 당연히 금기시된다. 식민지였던 이탈리아 입장에서 보면 자국민의 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베토벤은 왈츠와 같은 싸구려 음악은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한다며 분노했다. 빈에서도 뜻있는 음악가들은 기회주의적인 슈트라우스 일가를 싫어했다.

올해 요엘 레비가 지휘한 KBS교향악단 신년음악회의 마지막 곡 또한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박수 치며 흥겨워하는 객석을 보며 필자는 이탈리아와 일본을 동시에 떠올렸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어설프게 빈을 따라 하느니 우리만의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예술은 정의롭고 양심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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