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영화가 국내 1천 만 관객 고지를 앞두고 있다. 전대미문의 신기록이다. 바로 올겨울,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는 디즈니의 ‘겨울왕국’이 몰고 온 매서운 위력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왕국’이 모티프라지만 스크린에 재연된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기보다 차라리 현대적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늘 등장하는 당찬 신세대 아가씨의 이미지도 여전하고, 세련된 컴퓨터 그래픽과 흥미로운 극 전개 등 흥행 요인은 한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 하나만 꼽으라면 대부분의 대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애니메이션으로 재연된 ‘뮤지컬’이라는 흥미로운 정체성이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가장 흔한 평가도 ‘잘 만든 뮤지컬 한 편을 감상한 느낌’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겨울왕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극으로서의 요소들은 사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만들던 예술가들에 의해 구현된 것이다. 먼저 요즘 라디오에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노래 ‘Let It Go’부터가 그렇다. 극중 신비한 초능력을 지닌 여왕 엘사의 노래인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뮤지컬계의 블루칩 여배우 이디나 멘젤이다. 우리에게는 뮤지컬 ‘렌트’에서 4차원의 레즈비언 행위예술가 모린으로, 뮤지컬 ‘위키드’의 서쪽 초록 마녀 엘파바로 등장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미드’를 좋아한다면 고등학교 합창단의 이야기로 인기를 누린 ‘글리’에서 여주인공의 출생 비밀과 연관된 미스터리한 모녀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는 레이철 베리로 익숙할 수도 있다.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이디나 멘젤은 이제 명실상부 전방위 엔터테이너로서의 영역을 확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치는 콘서트 공연이 세간에 화제가 되며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당분간 ‘이디나 멘젤 앓이’는 글로벌한 수준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작사·작곡도 마찬가지다. ‘겨울왕국’의 노래들은 브로드웨이의 인기 작곡가인 로버트 로페스가 부인인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스와 함께 완성한 음악적 성과물이다. 로버트 로페스는 우리나라에서도 막을 올린 바 있는 귀여운 인형들의 19금 뮤지컬 ‘애비뉴 큐’와 엉터리 몰몬교도가 아프리카에서 포교 활동을 펼친다는 촌철살인의 익살과 해학으로 유명한 코미디 뮤지컬 ‘북 오브 모르몬(Book of Mormon)’의 작곡가다.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스는 원래 아동용 콘텐츠 제작에 주로 관여해왔는데, ‘겨울왕국’을 통해 각각의 영역에서 쌓았던 부부의 풍부한 경험이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내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뮤지컬 스타일이나 인력을 활용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에서 음악과 노래들을 만들었던 앨런 멩켄과 하워드 애슈먼 역시 원래는 뮤지컬계 인사들이다. 말하는 식인 식물이 등장하는 엽기적인 내용의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리틀 숍 오브 호러스(Little Shop of Horrors)’가 바로 이들의 작품이다. 뮤지컬이 지닌 대중성에 가족 콘텐츠인 애니메이션이 버무려져 새롭고 매력적인 ‘맛’을 완성시킨 셈이다. 대부분의 디즈니 작품들이 그랬듯 ‘겨울왕국’도 조만간 무대용 콘텐츠로 환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벌써부터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문화산업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 공식은 대부분 엇비슷하다. 흥행이 검증된 원 소스를 다른 장르나 형식과 버무려 새로운 매력을 잉태해낸다. 관건은 이런 원 소스를 얼마나 그리고 다양하게 확보했는가의 여부다. 뮤지컬이 독자적인 생명력 못지않게 다양한 대중문화와 충돌하고 뒤섞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겨울왕국’의 흥행이 일깨워주는 진짜 교훈이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2013 D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