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셜록 홈즈2 블러디 게임’

추리는 사라지고 자극만 남은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3월 30일까지 BBC아트센터 BBC홀

‘셜록 홈즈’ 두 번째 시즌이 막을 올렸다. 창작 뮤지컬로 큰 성과를 올렸던 전작은 새 무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이번에도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존재해 반갑고 또 아쉽다.
외형적인 프로덕션은 공을 많이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영상과 세트를 적절히 뒤섞은 공간의 창출은 최근 막을 올렸던 어떤 창작 뮤지컬보다 효과적으로 진화됐다. 등장인물의 움직임에 맞춰 계단 하나하나에 움직임을 그려넣은 정성이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의 실제 범행 사진을 격렬한 멜로디의 리듬에 맞춰 투사하고, 세트와 영상을 교묘히 뒤섞어 착시를 불러일으킨 배려 등은 꽤나 만족스러운 비주얼의 완성도를 이뤄낸다. 연극의 지류라는 인식으로 뮤지컬을 노래가 나오는 스토리쯤으로만 여기며 ‘보여주는’ 재미는 간과했던 여타 창작 뮤지컬들과는 접근 자체가 달라 흥미롭다.
아쉬운 점은 외형을 따르지 못하는 극적 완성도다. 전작에서 보여줬던 재미가 이번 무대에서는 반감됐다. 대신 무대는 시종일관 분노와 자극으로 포장된 이미지로 가득하다. 제목 때문에 통쾌한 반전과 논리적 전개의 추리물을 기대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관극 후에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효과음까지 더해진 섬뜩한 칼부림들과 소녀들마저 불태워 죽인 잔혹한 이미지들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나오는 셜록의 노래조차 그가 왜, 어떤 과정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추리해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가락을 까닥이는 동작을 통해 셜록이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인물임을 관행적으로 형상화할 뿐이다.
차곡차곡 쌓인 단서들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추리물의 골격을 버리고 자극만을 좇다 보니 무대의 여러 요소들도 엇비슷한 구조적 문제를 지니게 됐다. 음악이 대표적이다. 칼부림과 선혈이 낭자한 자극에 맞춰 음악도 엇비슷한 극적 긴장을 시종일관 이어간다. 문제는 쉬지 않고 이어지는 자극들이 오히려 극을 덜 자극적이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적절히 잽을 날려야 느닷없이 들이닥친 훅이 위력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훅만 날리면 상대는 속도나 무게감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분노를 토해내고 비명을 지르는 무대 위 캐릭터들의 공포가 객석에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이유다. 호통 치며 고함을 질러대는 배우들의 고통스런 몸부림이 시간이 갈수록 안타까워보인다.
코넌 도일이 창조해낸 셜록 홈스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소비되는 매력 넘치는 소재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나 영국산 텔레비전 드라마 등도 글로벌 마니아들을 양산해내며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질적인 장르 탓에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각각의 셜록들이 지니고 있는 매력은 조금씩 상이하다.
영화 속 셜록이 만능 스파이나 액션 스타의 모습을 한 아이언맨 부류의 영웅물에 가깝다면, 드라마 속 셜록은 기발한 추리와 비범한 캐릭터, 반사회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이코 심리극의 재미를 담고 있다. 셜록 애호가라면 특히 드라마에 심취하게 마련인데, 자꾸 보다 보면 주인공인 베네틱트 컴버배치가 미남으로 보이는 착시를 경험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될 정도다. 화면 구도나 카메라 앵글 각도까지 추론을 위한 소재로 활용하는 제작진의 정성은 활자가 영상으로 재연되면서도 추리물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담아낼 수 있는 완성도를 이뤄냈다.
치밀한 논리적 전개가 생명인 추리 소설이 원작이라 뮤지컬에 대한 아쉬움은 더 크다. 추리물 대신 스릴러 서스펜스를 표방할 의도였다면, 뮤지컬 제목도 ‘셜록 홈즈’ 보다 ‘연쇄 살인마 잭’이 낫지 않았을까. 시즌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면 곱씹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알앤디웍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