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히어로

이성준과 박은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1981년생 동갑내기 친구인 배우 박은태와 작곡가 이성준. 만났다 하면 여자보다 더 진득한 수다에,
친구와 동료 사이를 오가며 겹겹이 쌓아온 우정이 빛난 그들의 대화

충무아트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며 자체 제작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지난 3월 18일 개막하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세기 영국의 여성작가 메리 셸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삼총사’ ‘잭더리퍼’ 등을 흥행으로 이끈 왕용범이 극본과 연출을, 왕 연출가와 함께한 작업 외에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모차르트’에서 음악감독을 맡아온 작곡가 이성준의 만남으로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아왔다.
지난 100여 년간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온 ‘프랑켄슈타인’은 이번 무대에서 100퍼센트 국내 스태프의 손을 거쳐 새로운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프랑켄슈타인’이 단순히 괴물의 복수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작품은 인간의 한계와 고독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무게를 두고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갈등과 고독을 신선하게 풀어냈다.
공연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극중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조력자인 앙리 뒤프레와 괴물로 1인 2역을 소화하고 있는 배우 박은태, 작곡가·음악감독 이성준을 만났다. 절친한 친구 사이임에도 함께하는 인터뷰 자리는 처음이라며, 두 사람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딱 10초뿐, 사진 촬영이며 인터뷰 중간중간 틈틈이 둘만의 수다 삼매경에 빠지기도 하고, 때때로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속마음을 내비치며 신뢰로 다져온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곤 했다. 박은태·이성준과의 이야기는 서로 첫 인연을 맺은 뮤지컬 ‘햄릿’부터 시작됐다.

어떤 계기로 서로 친구가 됐나요.
박은태 2008년 ‘햄릿’ 월드 버전을 할 때예요. 그때 성준이는 음악감독을 하고 있었죠.
이성준 ‘햄릿’ 오디션장에서 은태를 처음 봤는데, 레어티스로 지원을 했어요. 그때 제가 스태프한테 “저 배우는 햄릿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박은태 하지만 전 레어티스 역으로 무대에 섰죠. 집이 같은 방향이라 연습이 끝나면 매일 같이 차 타고 다니면서 작품 얘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런데 둘 다 낯선 사람과 잘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라 좀 천천히 친해졌어요. 저희가 “성격 참 좋다”라는 얘기 들을 만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웃음).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들이 10년 지기 같은 동네 친구셨어요.
이성준 그때가 좋게 말하면 서로의 성향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서로 호감을 갖고 보게 됐죠. 그때 함께 했던 배우들도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고요.

이번에 박은태 씨가 ‘프랑켄슈타인’을 택한 이유엔 이성준 씨의 영향이 크다고 들었어요.
박은태 저희가 친구지만 일은 일이니까요. 서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이런 부탁들은 잘 안하는 편이죠. 왕용범 연출가에게 작품에 관해 들은 부분도 컸고, 결정적으로 성준이가 있어서 저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사실 친구와 일하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녜요. 친하다 보니 오히려 일적인 부분에선 서로 서운할 수도 있고, 편하게 대하다가 상처받기도 하고요. 이번 작품 하면서도 많이 티격태격했지만, 서로 믿고 의지해서 결과물은 정말 잘 나온 것 같아요.
이성준 정말 이번 작품하면서 은태랑 다툴 만한 건 다 다퉜어요. 앞으로 작품 같이하더라도 이번처럼 서운할 건 없을 것 같아요(웃음).

지금 모습만 보면 상상이 잘 안 가네요. 작품 준비 기간 동안 어떤 일로 다퉜나요.
박은태 대부분 작품에 관한 것이죠. 예를 들면 저는 작품이 좀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을 때, 성준이한테 바로 제 생각을 얘기하죠. 성준이는 친구이기 전에 음악감독이니까 저한테 좀 믿고 기다리라 말하는데, 저는 계속 조급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배우 입장에서 넋 놓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요. 서로 조급해 하는 부분에서 잘 안 맞는 것들이 있었죠. 배우로 의견 내는 것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든지. 그냥 음악감독과 배우 사이였으면 깔끔할 수 있는 건데, 친구 사이라 일하는 게 더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눴죠.
이성준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배우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이 친구가 다른 음악감독들한테도 이럴까? 하는 섭섭함도 있었죠. 그래도 저는 같이 작업해서 정말 좋았어요. 은태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를 다 볼 수 있었거든요. 마음이 가장 잘 맞는 친구이니 항상 어려운 작품을 할 땐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 늘 있었던지라 이번 작품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연습실에서 가끔 은태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감상에 빠지기도 하고… 저 자신이 보기에도 참 웃긴 적이 여러 번 있었죠.


▲ 박은태

그동안 ‘프랑켄슈타인’을 소재로 하는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이번 뮤지컬은 인간의 한계와 고독에 관해 생각하게 만드는데요.
이성준 은태가 맡은 괴물 역을 보면서 인간이 만드는 것은 다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자연을 이기겠다고 시도하는 그런 것들 말이죠.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신을 더 존중하게 되고, 신에게 더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제 마음 한 편엔 겸손한 마음이 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한없이 낮아지게 되더라고요.
박은태 저는 이 작품이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느꼈어요. 인간 그 자체로서의 고독이요. 그러니 무거워지려면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어쩌면 작품을 한 번 보고 나면 너무 무거워서 다시는 안 보겠다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요. ‘인간은 왜 그럴까’ 하는 주제들이죠. 그건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더 깊이 들어가서 내 안의 치부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작품 전체적으로 고독에 대한 주제가 강하게 깔려 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관객들이 모두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성준 분명 어두운 부분들이 있지만 즐거운 부분들은 한없이 즐거워요. 잔인할 때는 너무 잔인하고. 여러 감정들이 정말 극대화되어 나타나죠. 어떤 면에선 제 성향이 어느 정도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무거운 주제에다가, 1인 2역(앙리 뒤프레·괴물)을 맡은 박은태 씨는 배역을 소화하기 쉽지 않았겠네요.
박은태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괴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머리에 핀 박은 몬스터 느낌은 아니에요. 원작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창조물이라는 점 빼고는 완전히 다른 괴물이 만들어졌어요. 오히려 더 슬픈 괴물이랄까요. 처음 배역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 괴물에 대한 접근과 시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또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1인 2역을 맡았어요. 1인 2역하면 흔히 ‘지킬 앤 하이드’를 떠올리죠. 행동 양식도 변하고 목소리도 다르고. 그런데 전 앙리 뒤프레와 괴물을 완벽하게 다른 존재로 표현하면 오히려 괴물의 슬픈 감정을 못 보여줄 것 같았어요. 굳이 목소리나 양식적인 부분을 바꾸지 않아도, 내 안에 서로 다른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표현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발견했죠. 이번 작품은 연습만 해도 오한이 올 정도로 정말 힘들더라고요. 괴물 역을 하면서 실제로 몸 자체가 이상하게 반응하는 걸 느꼈죠. 체력적으로 정말 힘겨운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이성준 연출가와 작곡가로선 작품의 토대만 만들었을 뿐이고, 그것을 실체로 은태가 끌어내줬어요. 창작자로서도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연습 첫 회에 그 감정이 나와서 그날 연습이 다 일찍 끝났어요. 저는 그때가 그리워서 가끔 “그때 그 감정 다시 해주면 안 될까?” 하고 얘기하죠. 그런데 연습 때마다 그러면 배우가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일어서지를 못하니까.
박은태 날것에 가까운, 가장 생생한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드리기 위해선 많이 아껴둘 수밖에 없더군요.

배우가 이 정도로 힘들었다면, 작곡가로서도 여러 면에서 부담감이 컸을 텐데요.
이성준 고민 없이 곡을 쓰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좀 힘들었어요. 작품의 주제보다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요. 정말 좋은 배우들이 캐스팅되고, 관심 갖는 사람들도 늘어나다 보니 마음이 더 어려워졌죠. 그래서 원래 곡을 안 버리는데, 이번에 버린 곡도 꽤 있어요. 처음에 계약할 땐 정말 행복했는데, 막상 작업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평소에 없던 두통까지 생겼어요. 네다섯 달 동안 사라지질 않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 곡을 쓰고 나니 그 다음 날 두통이 없어졌어요(웃음).

‘프랑켄슈타인’으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두 사람 사이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요.
박은태 창작자와 배우 간의 신뢰가 더 쌓였다고 생각해요. 부부끼리 같이 장사하면 싸우게 된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친구 사이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번에 정말 멱살만 안 잡았지, 이런저런 일들을 같이 겪으면서 오히려 관계가 더 견고해진 걸 느꼈어요. 상처에 딱지가 생기고 또 아물 듯 말이죠. 나중에 다른 작품을 함께 하더라도 서운함이나 조급함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아요.
이성준 은태가 진짜 괴물처럼 생겼다는 걸 발견하게 됐어요(웃음)! 무슨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눈썹도 별로 없고, 광대도 많이 나오고… 진짜 괴물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렇게 변신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직접 보고 나니 앞으로 관객들과 만날 시간이 더 기대가 됐어요. 일단 제가 먼저 감동을 받았으니까요.

서로를 어떤 친구이자 동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박은태 저한테 성준이는 멘토예요. 물론 제가 그 멘토의 말을 다 듣지는 않죠(웃음). 제가 결정해야 할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아내 다음으로 물어보는 사람이에요. 특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눠요. 뮤지컬 배우에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줄 수 있는 멘토가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하거든요. 믿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정말 많이 의지하는 친구죠.
이성준 처음에 ‘햄릿’ 오디션장에서 은태를 봤을 때, 주인공 햄릿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지금도 동일해요. 언젠가 은태가 나이를 더 많이 먹고, 때로 주연을 맡지 못하더라도 제 마음 속에선 언제나 빛나는 주연이에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은태가 주인공인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사실 덜 주목 받는 작품이나 너무 실험적인 작품을 할 때면 나중에 다른 작품으로 같이 하자고 말할 때도 있어요.
박은태 저로서는 그런 마음이 참 고맙죠. 그래서 친구에게 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요. 이렇게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한시도 게으르고 싶지 않은 거죠. 그래서 다음에 만날 땐 이정도로 실력이 늘었다고 보여주고 싶고요. 이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걸 멘토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네가 인정해주는 만큼 나는 더 열심히 하겠다는 무언의 자극을 계속 주고받는 거죠.


▲ 이성준

한 작곡가가 오직 배우 박은태를 위한 작품을 쓴다면, 어떤 내용이 좋을까요?
박은태 지금까지 보여드린 제 모습과는 다른 면모가 있으면 좋겠죠. 좀 가벼운 역들을 너무 많이 해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어요. 장르로 따진다면 재즈나 스윙도 좋아요. 코믹 장르도 고마울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작품 영향인지 몰라도, 따뜻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저희 둘 다 ‘프랑켄슈타인’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집에 돌아갈 땐 좀 따듯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작품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성준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하고 행복한 세상이라는 것을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따뜻한 마음으로 작품을 보고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요.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런 무대를 함께 만들지 않을까요.
박은태 예전에 서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소극장에서 같이 아이디어 주고받으면서 찰리 채플린 같은 내용이라든지… 같이 만들자고 얘기한 지 벌써 3~4년이 지났는데. 언제 만들 거니?
이성준 머지 않아 곧. 다 같이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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