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의 서른살 돌잔치와 따듯한 봄 여행
혹시 저만 그렇게 느끼나요? 이번 봄은 유난히 짧아서 언제 꽃이 피고 졌는지 모르게 바깥은 벌써 초록 세상이 되었네요. 마치 초여름 같았던 3월의 마지막 주말, 객석의 모든 식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두 달 동안 정성을 쏟았던 창간 30주년 기념호를 마치자마자 26일, 3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고, 그 이틀 후에는 1박 2일 여정으로 통영국제음악제에 참석해야 했으니까요.
30주년 기념행사는 지난해 11월, 객석을 인수하면서부터 제겐 가장 큰 걱정이요 부담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앞선 이들이 지키고 다듬어온 객석의 웅숭깊은 전통에다, 그동안 객석을 아끼고 사랑해주신 관계자 및 지인들께 새 발행인으로서의 제 계획과 각오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해서요.
사실 대대적으로 크게 알리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들도 많았습니다만, 고민 끝에 이 행사는 30년 동안 지치지 않고 매진해온 것을 자축하는 조촐한 생일잔치로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하여 저희끼리는 다락방이라고 부르는, 기자들의 손때가 묻은 5층의 구 편집실을 창간 30주년 기념행사의 메인 장소로 정하고 하나하나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외부 업체의 손을 조금 빌리기는 했지만 발행인인 저부터 편집인, 기자들, 광고부 직원들까지 객석의 모든 식구들이 팔을 걷어붙인 채 무대를 직접 꾸몄습니다. 스스로 벽에 붙일 포스터 속 예술가들 사진도 고르고, 초대장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프린트해 만들었으며, 행사 당일 사회도 객석의 김선영 기자가 직접 보았습니다.
준비하는 내내 힘에 부쳤지만 요즘 말로 ‘깨알 같은’ 기쁨이 있더군요. 저도 이제 객석의 일원이 되었다는 기쁨, 객석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친구들을 맞이하는 기쁨, 그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손을 보탠다는 기쁨….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객석 커버에도 등장했던, 모차르트 콩쿠르 1위에 빛나는 ‘꽃미남 현악 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유는 그들이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통영국제음악제 상주음악가로서 공연을 앞둔 분주한 시점이었는데도 기꺼이 달려와 환상적인 화음을 선물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축하객들도 예술가, 평론가, 예술재단 대표, 기자, 이웃 매거진 편집장, 광고주, 지인들 등 120여 명 넘게 달려와주어 하마터면 울컥할 뻔했습니다. 객석의 전 발행인 윤석화 대표는 애틋한 심상을 런던에서부터 축하 영상으로 만들어 보내주었지요.
기념행사는 비좁은 공간 탓에 자유롭게 서서 하는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진행했으나 모두들 불편해하시지 않는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저나 편집인이 객석의 영원한 친구들, 후원자들을 모으는 ‘객석 멤버십’ 프로젝트와 메세나 활동 계획 등 향후의 목표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귀를 기울여주셨고요. 정말이지 훈훈한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객석 창간 30주년을 특별하게 생각해준 SBS에서 그 모습을 영상에 담아 8시 뉴스에 보도해주어 저는 본의 아닌 유명세도 치렀답니다.(혹시 그날의 모습이 궁금한 분들은 본문 81쪽의 QR코드를 확인해주세요).
2002년부터 월간객석의 공동주최로 이어져온 제13회 통영국제음악제 역시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마흔다섯 명의 예술계 종사자 및 독자들과 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떠나던 날 봄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니 다투어 핀 봄꽃들이 그 비에 얼굴이라도 씻은 듯 꽃향기가 더욱 진하게 퍼져오더군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1박 2일의 음악여행을 이어갔습니다. 바다와 이마를 마주한 언덕에 지은 새 음악당은 통영의 새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듯 산뜻한 분위기를 풍겼고, 우중인데도 입추의 여지없이 객석이 꽉 차 있었습니다. 불가리에서 온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의 명연주, 뉴욕에서 온 뱅 온 어 캔 올스타의 영상미를 곁들인 현대음악도 가슴 벅찼습니다. 맛깔스런 남도음식으로 힐링하며 윤이상 기념관도 보고 음악의 여운도 만끽한 그야말로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저는 음악이란 정말 삶을 빛나게 하는 햇빛 같은 존재구나, 빗물을 타고 전해져오는 환한 봄꽃 향기로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공연을 함께 보는 즐거움은 얼마나 큰 것인지요! 늘 생각해온 것이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를 자주 마련하겠다는 각오가 절로 굳어지더군요.
저와 ‘객석’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공연무대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저의 이런 계획이 앞으로 서까래를 올리고, 벽돌을 얹고, 지붕을 덮는 그날까지 늘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객석’의 행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발행인 김기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