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두들기는 경쾌한 탭댄스 소리. 올해 11월 한국 초연되는 웨스트엔드 뮤지컬 ‘톱 햇’의 특별한 오디션을 다녀왔다
1930년대 미국 뮤지컬의 아이콘 프레드 애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탭댄스가 압권이던 흑백영화 ‘톱 햇(Top Hat)’을 기억하는가. 명작의 감동과 복고풍 탭댄스의 향수를 웨스트엔드 무대로 옮긴 동명의 뮤지컬 작품 ‘톱 햇’이 77년 만에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로 재탄생한 데 이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올해 11월 한국에서 우리말 공연을 갖는다.
미국의 스타 탭댄서 제리 트래버스와 영국 아가씨 데일 트레몬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Cheek To Cheek’ ‘Top Hat, White Tie And Tails’를 비롯한 어빙 벌린의 감미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노래·연기뿐 아니라 왈츠·스윙·탭댄스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가득한 무대를 선사한다. 특히 빌 디머의 세련되고 활기 넘치는 안무로 인한 시각적인 즐거움이 여타 뮤지컬과는 차별되는 부분이다. 이것을 무대에 서는 배우에게 적용시키자면, 단순히 무대 경험이 많거나 어느 한 가지 재능만으로는 ‘톱 햇’을 소화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는 11월 27일 개막하는 ‘톱 햇’ 한국 초연을 앞두고 지난 4월에 열린 오디션 현장은 지원자뿐 아니라 심사위원들에게도 쉽지않은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연기·노래 전형을 거쳐 3차 안무 전형까지 오른 사람은 100명 가량. 마지막 안무 전형 진출자가 추려지는 가운데 현장에서 만난 지원자들의 상당수는 짧은 시간 동안 배운 탭댄스 실력을 확인하는 3차 안무 전형을 가장 큰 고비(?)로 꼽았다.
4월 8일에 열린 안무 오디션 현장. 오디션이 있던 연습실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탭 슈즈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바닥을 치고, 두들기며 뜨거운 땀을 흘리는 지원자 중에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5년 정도 탭댄스를 배운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디션 현장에서 탭댄스를 처음 배운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날 오디션 심사위원으로는 ‘톱 햇’의 공동제작자 5인 중 한 명이자 한국 초연 연출을 맡은 윤석화를 비롯해 프로듀서 박용호·음악감독 최재광·안무가 김경엽·탭댄스 안무가 권오환이 참석했다. 연극배우 박정자·배우 송일국은 특별 심사위원으로 함께 자리했다.
한 사람씩 이름이 호명되고 오디션장으로 줄지어 입장하는 지원자들. 모두들 긴장한 눈빛이 역력하다. 이때 들려오는 연출가 윤석화의 상기된 목소리.
“오늘 기분이 어떤가요? 모두 즐겁게 춤추고, 신 나게 즐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 한마디에 지원자들의 굳어 있는 표정이며 몸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톱 햇’ 흥겨운 넘버 한 대목이 흐르고, 지정된 안무에 맞춰 지원자들의 탭댄스가 시작됐다. 남들보다 딱 반 박자 느린 사람부터 전문 탭댄서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까지, 이글거리는 눈빛은 똑같아도 스텝을 밟는 풍경만큼은 가지각색이었다. 또 화려한 탭댄스 개인기를 자랑하던 몇몇 사람도 턴이나 점프 같은 발레 기본 동작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난처해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톱 햇’에 걸 맞는 ‘전천후 엔터테이너’를 발굴하기란 쉽지 않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뤄진 안무 오디션에 이어, 오후 7시까지는 3차 합격자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가 이뤄졌다.
모든 오디션 일정이 끝난 후 현장에서 만난 연출가 윤석화는 기존에 한국에서 보던 뮤지컬과는 매우 색다른 뮤지컬이 될 것이라며 “한국 초연인 ‘톱 햇’을 준비하는 모든 시간이 우리 공연계의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번 오디션의 우수 합격자를 대상으로 런던 현지에서 한 달간 탭과 스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웨스트엔드 무대 위 배우들의 일사불란한 탭댄스가 전하는 경쾌한 소리와 열정적인 리듬, 그리고 공연 내내 리듬에 맞춰 손과 발을 까닥거리던 관객들의 모습까지… 이 진풍경을 한국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11월 27일부터 BBC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톱 햇’ 한국 초연을 놓치지 말자.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사진 심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