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페라 데뷔 20주년이나 30주년 기념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꾸며야 할까. 소프라노 홍혜경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30주년 기념 리사이틀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글자 그대로 기념할 만한 무대이기 때문에 곡목 하나하나에 남다른 의미를 담아야 타이틀에 어울리는 법이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2006년 데뷔 20주년 기념 리사이틀을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을 적절히 배합한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2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레퍼토리에 주목했다. 과거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구보 사토시는 오는 9월 남성 성악가들을 초청해 푸치니의 ‘토스카’를 피아노 반주의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한다.
홍혜경은 1984년 11월 17일 메트 데뷔작인 모차르트의 ‘티토 왕의 자비’ 중 세르빌리아의 아리아 ‘그를 위한 당신의 눈물은’을 시작으로 그동안 메트에서 출연해온 작품 위주로 꾸몄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부인·헨델 ‘줄리오 체사레’의 클레오파트라·구노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벨리니 ‘카풀레티와 몬테키’의 마농·푸치니 ‘투란도트’의 류·푸치니 ‘라 보엠’의 미미·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의 아리아를 불렀다. 피아노 반주가 있는 리사이틀이었지만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페라 아리아만 부르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무대 위에 마이크를 갖다 놓고 아리아와 아리아 사이에 다음에 부를 곡에 얽힌 일화나 추억을 들려주었는지도 모른다.
노래하는 것보다 성대에 부담이 덜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주자의 이야기는 다음 노래의 발성에 무리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2,500석의 콘서트홀 음향 시스템으로는, 객석 뒤쪽에서는 연주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곡으로 부른 푸치니의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유일하게 오페라 출연작과 거리가 먼 곡이었다. 토스카의 이 아리아는 고별 무대나 은퇴 리사이틀 때 소프라노가 자주 부르는 노래인데, 이날 공연은 고별이나 은퇴와는 전혀 무관하다. 이것은 홍혜경이 무대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개인사와 관계 있다. 2008년 남편과 사별한 뒤 2년 가까이 활동을 접다시피 하면서 특별히 와 닿은 가사 내용 때문이다.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며, 사람들에게 상처 준 일도 없고… 그런데 왜 이 참혹한 시간에 주님은 어째서 제게 이런 보답을 하십니까.”
‘라 트라비아타’ 중 비올레타의 아리아에서도 음악팬들은 ‘아, 그이인가’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홍혜경은 ‘지난날이여, 안녕’을 불렀다.
첫 곡으로 부른 모차르트의 아리아에서는 음정 불안의 기미가 보였으나 워밍업이 끝난 후반부에서는 콘서트가 아닌 오페라 무대를 방불케 하는 꽉 찬 발성과 연기력을 과시했다. 앙코르로 푸치니 ‘라 보엠’ 중 ‘무제타의 왈츠’를 선보였다. 홍혜경 하면 떠오르는 미미 역뿐만 아니라 최근에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무제타 역의 아리아에서는 오페라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주었다. 최고음에서는 약간 어두운 면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고음역이 가장 빛났다. 하지만 고음역에 비해 중저음역에서는 풍부한 질감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사진 크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