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보헤미안의 자유와 낭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music 블타바 강을 따라 흐르는 스메타나 ‘나의 조국’

체코 서부를 보헤미아 지방이라고 부르며, 수도 프라하는 보헤미아의 중심 도시다. 예로부터 프라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는데, 지금도 간단한 독일어가 통하는 곳이고 크네들리키처럼 독일 음식과 비슷한 요리들도 많이 남아있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식민지여서 건물 생김새는 오스트리아와 상당히 비슷하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흔적도 많이 남아있다. 빈에서는 성공과 실패를 번갈아 겪으며 부침이 심했던 모차르트가 프라하에서는 늘 최고의 찬사만을 받아왔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이 도시를 너무도 사랑했다. 그의 교향곡 38번의 부제가 ‘프라하’이며, 모차르트의 최고 걸작 오페라인 ‘돈 조반니’의 초연도 프라하 에스테이트 극장에서 이뤄졌다. 에스테이트 극장은 아직도 남아있는데, 지금은 프라하 국립오페라극장 등의 위세에 밀려 관광객용 공연을 올리는 곳으로 변모했다. “매일 밤 ‘돈 조반니’ 공연!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드림!”이 지금 이 극장의 전용 카피다.

모차르트의 아기자기하고 우아한 선율로 넘실대던 프라하는 19세기가 되어서야 ‘진짜 체코 음악’ ‘제대로 된 보헤미아의 음악’들과 만나게 된다. 이 시기부터 보헤미아에는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체코의 독립 염원을 담은 국민악파 음악가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작곡가가 바로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라하에서 음악 공부를 하던 그는 1848년 6월 프라하에서 일어난 혁명운동에 큰 감화를 받는다. 비록 오스트리아 제국의 탄압으로 독립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이 사건 이후 스메타나는 음악으로써 체코 민족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평생 체코 민족의 정서를 담은 음악을 작곡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된다.

스메타나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며 음악사에 길이 남은 명작이 바로 교향시 ‘나의 조국’이다. 모두 여섯 악장으로 이뤄진 관현악 작품 속에 스메타나는 체코의 웅대한 자연, 보헤미아의 위대한 역사와 문화·전통을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냈다. 1882년 11월 프라하에서 이뤄진 초연에서부터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지금도 매년 5월 12일에 열리는 프라하 봄 페스티벌의 개막 공연에서는 반드시 ‘나의 조국’을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이 음악에 대한 체코민족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나의 조국’ 중에서도 유독 한 음악을 사랑한다. 바로 두 번째 곡 ‘블타바(Vltava)’다. 블타바는 프라하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강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음악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몰다우’라는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몰다우’는 독일식 명칭이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겪은 체코인들에게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보헤미아 땅의 한가운데를 관통해 프라하로 흐르는 강의 이름은 오직 ‘블타바’일 수밖에 없으리라.

플루트와 클라리넷으로 작은 시냇물의 발원을 묘사한 음악은 서서히 유려한 현이 꿈틀거리는 장대한 장면으로 바뀐다. 호른의 연주가 사냥이 펼쳐지는 보헤미아의 숲을 묘사하고, 폴카 리듬의 흥취 어린 선율이 전통혼례가 펼쳐지는 시골 들판의 정겨운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강을 노래한 음악 중에 이보다 더 감동적인 작품이 있을까. 이국의 방랑자에게도 ‘블타바’는 뜨거운 감동의 소용돌이를 자아내는 음악이다.

music 보헤미아의 노스탤지어,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

스메타나의 뒤를 이은 드보르자크도 체코 고유의 소재로 음악을 썼다. 특히 ‘슬라브 춤곡’이 유명한데, 리스트나 브람스가 헝가리의 민속음악을 발굴했다면, 드보르자크는 보헤미아에 살고 있는 슬라브 민족의 향토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애절한 가락 속에 보헤미아 특유의 따뜻하고 풍부한 감성, 고향 땅에 대한 본능과도 같은 진한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해낸 것이다. 이후 드보르자크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향수’, 즉 조국 체코와 고향땅 보헤미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되었다.

music 체코의 예술적 자긍심을 보여주는 오페라들

프라하의 국립극장에서는 독일어가 아닌 체코어로 된 민족 오페라를 만날 수 있는데,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와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등 체코의 전설과 설화에서 소재를 취해 보다 토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 많다. 한편 레오시 야나체크의 오페라는 체코 민족의 깊은 무의식을 날카로운 지성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는데, ‘예누파’ ‘카타 카바노바’ ‘마크로풀로스 사건’ 등이 체코 민족의 예술적 자긍심을 대변하는 최고의 현대 오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보헤미아는 독일 동부의 작센 주와 등을 맞대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보헤미아 땅에 사는 사람의 3분의 1 정도는 독일계였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가 독일 민족주의 오페라의 효시라 불리면서도 지역적 배경은 보헤미아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도 체코의 국경 도시 치노베츠를 거쳐 프라하로 가는 길에는 울창한 수풀이 펼쳐진 삼림지대를 종종 만날 수 있다. 베버의 오페라는 이 지역 고유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냈다.

novel 역설적인 아름다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천년의 건축사를 간직한 프라하는 중심가 전체가 유네스코 역사지구로 등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프라하 곳곳을 돌아보면 고도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런 아름다운 도시에서 비극적인 역사, 인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참함을 그릴 수 있을까.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프라하의 아픈 상처를 담아내고 있다. 체코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로 300년 넘게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특히 나치 시절과 공산주의 통치라는 집요하리만치 괴로운 고통의 시절을 소설 속에서 주인공 사비나의 반복되어지는 배반의 모습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설의 비극을 통해 사랑과 존재의 영원성을 담보할 수 없는 가벼움으로 그려내는 밀란 쿤데라의 깊은 주제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아픈 역사를 가졌지만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를 방문해봐야 한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프라하는 개나리 빛이다.


play 시대와 개인 상처를 고스란히 담아낸, 하벨 ‘리빙’

‘리빙(Leaving)’은 체코의 극작가이자 초대 체코 대통령을 역임한 바츨라프 하벨의 작품이다. 이 연극은 얼마 전까지 최고 권력자였던 총리가 관저를 나가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겪는 여러 가지 상실의 순간들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솔직하게도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인 지도자의 삶과 욕망하는 개인의 삶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동시에 희극과 비극의 터치가 절묘하게 느껴진다. ‘리빙’의 무대를 통해 관객은 ‘떠남’의 다양한 의미들을 발견하게 된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과거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고,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 도시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1968년, 바르샤바 조약군이 체코의 민주 자유화를 저지하기 위해 탱크를 몰고 왔을 때 용감한 시민들이 비폭력으로 맞섰던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 시대를 살았던 바츨라프 하벨은 프라하의 극장과 광장에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면서 예술적 신념과 정치적 이상이 하나임을 증명했다. 체코의 벨벳 혁명과 ‘프라하의 봄’을 증언하는 공간인 바츨라프 광장은 이제 체코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변모했다.

music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play 정진세(작가·연극평론가)
novel 한송희(북칼럼니스트)
dance 김태희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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