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은 ‘지휘자’ 프란스 브뤼헌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1981년 18세기 오케스트라를 조직한 브뤼헌은 한동안 바로크 레퍼토리에 머물다가 1985년 베토벤 1번 교향곡과 모차르트 40번 교향곡을 함께 묶은 음반(Philips)으로 첫 고전주의 교향악에 도전한다. 신고식은 출세작이 됐다. 2년 먼저 나온 호그우드와 고음악 아카데미(L’Oiseau-Lyre) 연주가 만들어놓은 시대악기 연주의 큰 물줄기를 다른 방향으로 갈라놓았다. 성마른 템포에 작고 투명한 합주가 아닌 묵직한 리듬과 큰 스케일은 예상을 깬 재미가 있었다. 이 음반은 프랑스 음악지 ‘디아파종’이 그해 선정한 ‘역사를 바꾼 100대 음반’에 포함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브뤼헌을 명지휘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브뤼헌이 곧이어 녹음한 다른 후기 교향곡들은 40번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 가려진 면이 있지만 브뤼헌의 특성을 잘 반영한 수작이었다.
올해로 80세를 맞는 브뤼헌이 20년 만에 다시 내놓은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세 편은 2010년 로테르담 실황을 담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40번을 이전 녹음과 비교하면 녹음 특성과 템포, 다이내믹이 조금씩 변했다. 하지만 시대악기의 음향과 현대악단의 해석을 절충한 기본 아이디어는 같다. 1악장 질풍노도엔 76세의 노장 지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재기와 활력이 넘친다. 2주제의 이완과 발전부에서 긴장을 쌓아올리는 솜씨는 탄성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2악장에서 2대의 호른이 빚어내는 선율은 넓게 펴바른 현의 질감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부드러운 현에 거친 관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브뤼헌 식 밸런스의 강점이 잘 살아있다. 4악장에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을 때도 결코 성급해지지 않은 스피드 역시 호감을 준다.
구 녹음과 차별화되는 신보의 매력은 단기간에 작곡된 세 편의 서로 다른 성격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도 그것을 진부하지 않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39번의 우아함과 위트, 40번의 질풍노도, 41번의 호방한 기개 등 각각을 상징하는 고전적인 느낌이 신선하게 와 닿는 것은 독특한 수사가 아니라 그저 정공법으로 밀어붙인 덕분이다.
39번 1악장 서주와 3악장 미뉴에트는 카를 뵘(DG)에 비견할 만큼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41번 ‘주피터’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표제성에 충실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템포를 빠르게 잡은 효과다. 특히 4악장에서 절도 있는 앙상블 속에 생기가 돋는 푸가 피날레는 럭셔리한 건축물을 보듯 귀를 즐겁게 한다. 지난해 필리프 헤레베헤의 연주(PHI)와 다르게 플루트 두 대를 배치해 곳곳에 찍은 멜로디의 방점도 모차르트가 이 악기를 위해 특별한 장치를 해두었음을 깨닫게 한다. 브뤼헌의 해석 가운데 유일한 파격은 39번의 피날레다. 그는 마지막 두 번 반복되는 음형 중 옥타브가 높은 두 번째를 아주 여리고 빠르게 처리함으로써 유머를 더했고 결과는 나쁘지 않다.
브뤼헌의 신보는 최근 10년간 발매된 시대악기 연주 중 가드너의 두 번째 레코딩(SDG, 39~41번만 수록)과 함께 가장 흥미진진하게 들을 만하다. 잔향이 과다하고 앙상블이 건조하게 들리는 글로사의 ‘그랜드 투어’ 녹음은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지만, 앞서 발매된 브뤼헌의 베토벤 교향곡이나 모차르트 ‘레퀴엠’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