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영조 선생이 사는 곳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있는 전원주택입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밖에 안 걸리는 이곳은 정말 한적한 시골 마을이더군요. 언덕 위에 집들이 뜨문뜨문 서 있을 뿐 주위는 온통 초록빛 논과 밭입니다.
이 동네에서 그의 정체(?)를 아는 이웃은 없습니다. 창작 오페라 ‘처용’과 ‘황진이’를 비롯해 수많은 곡을 쓴 작곡가라는 것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이란 그의 현재 직함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장을 지내며 숱한 음악 인재를 키워낸 그가 이곳에서는 그저 동네 ‘이 씨’로 통할 뿐이지요.
사실 평소의 그는 영락없는 시골 농부입니다.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고추를 따고, 옥수수밭에 물을 줍니다. 운전기사는커녕 예술의전당에 일이 있을 때도 탈탈거리는 시골 버스를 타고 가는 게 편하다는 그에게선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거리감이나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할 때만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열심히 곡을 쓰고, 한국 음악계의 현실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을 서슴지 않습니다. 독일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양악과 국악을 접목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객석’이 주최하는 올해 첫 번째 음악회는 바로 이분의 곡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참, 저희 ‘객석’이 곧 음악회를 연다는 사실을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8월 16일 저녁,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객석’ 창간 30주년 기념음악회가 열린답니다. ‘객석이 마련한 아주 특별한 여름밤 콘서트’라는 부제를 붙인 이번 음악회에는
현재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의 젊은 성악가도 여럿 출연할 예정입니다(자세한 내용은 180쪽 참고).
사실 우리나라 성악인들은 한국에서 설 무대가 거의 없습니다. 상설 오페라 공연이 아직 없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해외에서 세계 콩쿠르 무대를 휩쓴 재원들이 외국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적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조 작곡가와 함께하는 ‘객석’ 30주년 기념음악회는 실력파 성악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보기 드문 무대가 될 것입니다.
이영조 작곡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16마디로 된 아버지(작곡가 이흥렬)의 동요 ‘섬집 아기’가 두 시간이 넘는 내 오페라 ‘처용’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쉽고 단순하면서도 싫증 나지 않을 작품을 쓰려면 더 솔직해지고, 더 발가벗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객석’도 책이나 음악회를 만드는 데 있어 늘 솔직한 모습으로 여러분 곁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음악회 개최가 처음이니만큼 좀 모자란 점이 있더라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격려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