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빙 ‘피-避-P project’

새로운 판소리는 어떻게 가능한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공연장에 들어서면 양쪽 무대에 조명을 받아 하늘거리는 검은 천들이 길게 늘어져 있고 중간에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물길이 있다. 물길 앞의 한 남자, 눈이 가려진 그는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면서 심청의 아비임을 알려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심청은 아비의 곡을 받아 흐느낌으로 토해낸다.

“허영, 불멸하는 광기, 내 무덤 풀을 아무도 뜯지 마요. 내 무덤 오는 길을 아무도 내지 마요(심청).”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부조리한 현실이다. 용서를 구해야 할 아비는 의자 위에서 딸을 배웅하고, 아비를 위해 죽어야 하는 딸은 역설적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듯이 노래한다. 그 노래는 가난과 뻔뻔함 사이에서 오늘날에도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속절없이 희생되는 제물 된 자들의 울부짖음에 차라리 가깝다. 비빙은 ‘동시대에 유효한 정서’를 심청전이라는 전통 판소리에 녹여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피-避-P project’는 그동안 비빙의 어떤 무대보다도 난해하고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관객은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 앞에서 ‘멘붕’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 난해함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판소리는 본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낸 음악극이다. 즐기는 방식도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비빙이 ‘새로운 판소리’를 제기하는 순간, 관객은 ‘서사구조’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비빙은 기실 서사와 내러티브에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이야기의 한 지점을 포착한 뒤 이를 상징적으로, 서정적으로,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오늘의 정서를 노래하는 데 주력했다. ‘대중소설’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초현실주의 시’를 읽어주는 격이니 사람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사실 기존의 창작 판소리에서 새로움이란 서사적 구조를 그대로 두고 여기에 새로운 이야기 소재를 얹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빙이 생각하는 새로움은 판소리의 서사구조 자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대중소설을 초현실주의 시로 바꾸는 새로움, 즉 장르를 파괴하고 탈(脫)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비빙의 프로젝트에 주목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비빙이 전통음악을 공연의 재료로 다루는 일관된 태도와 방식에 있다. 먼저 비빙은 공연의 소재가 정해지면 그 음악을 듣고 익히는 학습과 실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진지한 태도와 천착, 그리고 학습이 일단락되면 연주자들을 통해 연주되는 전통음악은 음악감독 장영규 손안에 들어온 생재료(raw material), 즉 샘플이 된다. 그는 이 샘플을 자르고 순서를 바꾸고 속도를 달리해 배치와 재배치를 거듭한 후 다시 연주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해낸다. 혹자는 현대음악계에서 이미 진부해진 구체음악의 하나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비빙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가면서 가장 전통적이면서 가장 전위적인 공연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는 거의 유일한 그룹이다. 그들은 국악, 퓨전, 현대화, 월드뮤직 등의 거대 담론을 이슈화하지 않지만 공연 그 자체로 ‘전통에 천착하면서도 그것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통음악을 동시대의 미적, 예술적 욕망을 담아내는 예술로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매우 진지하게 던지고 있다. 내가 비빙의 프로젝트를 빠짐없이 찾아다니는 이유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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