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5일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인 파보 예르비가 자신의 SNS를 통해 2015/2016 시즌을 마친 뒤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직을 떠날 것을 발표했다. 이날은 새로 부임한 국무총리 마뉘엘 발스 정부 내각이 쏟아지는 비판에 총사퇴한 날이기도 했다. 그다음 날인 26일에는 새로운 내각 발표가 있었다. 오렐리 필리페티 문화부 장관이 플뢰르 펠르랭으로 교체되었다. 두 사람은 거의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기에 간헐적인 제도를 포함한 여러 사안에 대해 문화인의 걱정을 야기시키고 있다. 예르비가 SNS에 글을 올린 이후, ‘르 피가로’지를 비롯한 프랑스의 언론들은 추측과 아쉬움을 담은 기사들을 써내고 있다.
2010년부터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해온 파보 예르비는 단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음악감독직을 해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이 소식은 파리의 음악 애호가들과 관계자들을 매우 놀라게 하고 있다. 더구나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통하지 않고, 당사자의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다. 그러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고, 또 파보 예르비의 사임을 둘러싼 파리 음악계의 상황은 간단치가 않다.
먼저 2015년 1월부터 정식으로 시즌을 시작하게 될 필하모니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잡음이다. 파리 시내 북동쪽 19구에서 공사가 한창인 필하모니는 초기 예산을 여러 차례 초과하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지속적으로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파리의 현대음악과 미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시테 드 라 뮈지크 바로 옆에 위치하게 될 필하모니는 시테 드 라 뮈지크와 살 플레옐의 총책임자인 로랑 바일에 의해 운영될 예정인데, 파리 오케스트라의 심장이며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장 가운데 하나인 살 플레옐은 이후 로랑 바일의 손을 떠나 전혀 다른 공연장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로랑 바일은 2015년 이후로 수년간 살 플레옐이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에 대해 수많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공개적인 서한으로 로랑 바일의 정책을 비판했다. 필하모니가 앞으로 어떤 정책으로 운영될지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지는 과연 필하모니가 파리에 정말로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이 되지 않은 경제적 비용이다. 참고로 라디오 프랑스 내에 과거 메시앙홀로 불렸던 공연장이 리노베이션 공사를 거쳐 재개장될 것이고, 파리 서쪽 근교인 불론뉴에 새로운 공연장 건축이 발표되었다. 과연 이렇게 많은 공연장이 파리에 필요한 것일까 하는 질문을 많은 이들이 하고 있다. 필하모니의 건축과 운영 비용은 프랑스 정부와 파리 시가 반씩 부담할 예정이었는데, 새로 파리 시장에 부임한 안 이달고는 필하모니 건축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것이며 첫해에만 필하모니의 운영 비용을 부담하고, 두 번째 해부터는 전혀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파보 예르비는 이에 대한 관련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링크해놓기도 했다. 필하모니의 연간 운영 예산은 최소 3억 유로(약 4,000억 원)에서 최고 5억 유로(약 6,600억 원)로 예측되고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주 프로그램으로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어떤 클래식 음악 공연이 살 플레옐의 두 배에 해당하는 필하모니의 2,400석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기우는 지금으로서는 당연하다. 파보 예르비가 ‘무거운 마음’이라고 표현한 그의 사임 발표는 이러한 상황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당면한 문제는 과연 2016/2017 시즌부터 파리 오케스트라가 적합한 지휘자를 찾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객원 지휘자들로 몇 년의 시즌을 이끌어가는 불안정한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필자는 2002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거의 매주 열리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대부분 들었다. 예르비가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되기 전, 파리 오케스트라를 모가도르 극장과 살 플레옐에서 지휘하는 것도 들었다. 주관적인 관점이겠지만, 아직까지는 예르비가 소위 위대한 지휘자의 반열에 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히 오늘날 최고의 오케스트라 조련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에서 감동을 받은 적은 드물다. 분명히 그는 저마다 개성이 도드라지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합심하도록 하고, 오케스트라로서 통일성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분명히 높이 평가해야 하는 일이다.
바렌보임이 파리 오케스트라를 떠날 즈음에 단원들을 향해 “당신들 개개인은 모두 일류이지만, 불행하게도 파리 오케스트라는 일류가 아니다”라고 했던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예르비는 종종 지나치게 빠른 템포를 선택하고, 섬세함과 색채를 자주 간과한다. 대단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고 자신의 대기실의 문을 열어놓는 지휘자로도 알려져 있지만, 음악적으로 그가 정말로 위대한 지휘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능력 있는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시스템이 낳은 비극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세계적인 지휘자들은 비행기 안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어쨌든 파보 예르비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집을 녹음할 계획을 2016년 전에 실현할 것이며, 파리 오케스트라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집을 처음으로 녹음하는 프랑스 오케스트라가 될 것이다. 2015년 1월 14일로 잡혀 있는 필하모니의 첫 연주회는 필하모니의 상주 오케스트라인 파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시작된다. 파리의 애호가들에게 파보 예르비의 지휘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2년이 남아 있지만, 파리와 필하모니의 재정적인 갈등 관계를 포함한 프랑스 정치·경제의 불안의 씨앗은 언제 어떻게 싹을 틔워 또 다른 소식을 안겨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글 김동준(음악평론가·피아니스트·르 센 음악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