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보이첵’

창작 뮤지컬의 힘찬 발걸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10월 9일~11월 8일 LG아트센터

올해는 세월호 여파로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한국 뮤지컬의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다. 연간 18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이 각축을 벌이고, 매해 20퍼센트에 육박하는 엄청난 매출 성장을 기록해왔다. 창작 뮤지컬의 경우, 전체의 70퍼센트를 기록할 정도로 많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을 가히 창작 뮤지컬의 나라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소위 돈벌이가 되는 대형 공연장들은 수입 뮤지컬이 대부분일 뿐, 창작은 소극장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경쟁력을 갖춘 대형 창작 뮤지컬의 등장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뮤지컬 ‘보이첵’은 개막 전부터 관계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작품이다. 무엇보다 ‘명성황후’ ‘영웅’ 등을 통해 대형 창작극의 도전과 실험을 펼쳐온 에이콤과 윤호진 대표가 오랫동안 정성을 들였다는 후문은 기대치를 상승시킬 수밖에 없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바란 것은 비단 뮤지컬 애호가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막이 올랐다.

잘 알려진 소재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연초 인기를 누렸던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과 일맥상통한다. 작품의 지향점이나 완성된 형태는 차이가 있지만, 익숙한 소재를 재가공해 창작의 아킬레스건인 취약한 브랜드 인지도를 상쇄했다는 마케팅 전략이 그렇다. 창작물이 제대로 된 완성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노력과 담금질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무대 환경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어야 두세 달 공연만 확보할 수 있는 시장 여건에서 해외 유명 작품들과 당당히 경쟁을 벌일 것을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나 다름 아닐 것이다. 국내 창작 뮤지컬들의 마케팅적 진화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국 관건은 얼마만큼 완성도나 예술성을 확보하는가이다. 원 소스 역할을 한 소재의 명성·인지도를 충실히 구현해내거나 월등한 수준의 성숙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아쉽게도 작품은 긴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아류’나 ‘카피’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이종교배가 아닌 동종교배라면 더욱 그렇다. 연극이 뮤지컬의 소재로 흔히 선택되지 않는 배경이자 이유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 ‘보이첵’은 분명 연구 대상이 될 만하다. 게오르크 뷔히너가 1879년 발표했던 미완의 원작은 사실 그 자체로 이미 실험성과 파격의 상징 같은 작품이다. 무대 공연 사상 최초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실험성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요절한 원작자가 미완의 형태로 남긴 작품을 후대 예술가들이 갖가지 열린 결말의 창의력을 더해 다시 구현해온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상업성과 대중성을 근간으로 하는 뮤지컬로의 변화가 오히려 색다른 도전임은 재론할 필요 없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가진 자들로부터의 핍박과 억압으로 궁지에 몰린 주인공이 불편했다는 일부의 하소연이 오히려 반갑다. 적어도 아이돌 스타나 드레스 입은 무도회, 서양 사극이 뮤지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보여준다.

김수용과 김다현의 연기 변신도 좋지만, 가진 자들의 비겁함을 효과적으로 풍자한 중대장 역의 정의욱, 닥터 역의 박성환은 극적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1막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2막은 아쉽지만, 초연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의 변화가 더욱 궁금해진다. 치밀한 완성도의 창작 뮤지컬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사진 LG아트센터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