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원스’

무대 위 ‘슈퍼맨’들의 캐스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 ⓒJoan Marcus

잔잔한 감동의 뮤지컬 ‘원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가 직접 연주하는 악기의 선율 하나하나는 관객에게 수백 가지 감상과 감동을 전해준다

뮤지컬은 무대예술의 십자로에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르를 넘나들거나 충돌시키며 인기를 누리는 콘텐츠가 많다는 말이다. 소설 속 활자가 무대화되고, 영상 속 이미지가 음악으로 변환되기도 한다.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잘 알면서도 신선한 풍미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매력이다.

특히 영화가 무대화된 경우를 흔히 무비컬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영화를 의미하는 무비(movie)와 무대용 뮤지컬(musical)의 합성어다. 아무리 큰 스크린을 통해 보인다고 해도 영화는 기본적으로 평면예술이다. 최근 들어 안경을 쓰고 보는 입체영화나 바람이나 물기·향기 따위를 뿜어내며 입체적인 감각을 동원하는 첨단 기술의 상영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착시나 착각에 불과할 뿐 역시 기본적인 이미지의 구현 방식은 평면의 스크린이다. 덕분에 이 같은 콘텐츠들이 실존하는 공간인 무대에서 재현될 때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별스러운 체험을 할 수밖에 없다. 국가나 문화권을 불문하고 무비컬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물론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큰 인기를 끌었거나, 음악이 주를 이루는 영상물이었다면 무대화의 재미는 더욱 커진다. 라이브로 즐기는 무대용 뮤지컬의 생동감은 기계적인 재생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뮤지컬 ‘원스(Once)’는 바로 이런 매력으로 세계 공연시장을 매혹시킨 작품이다.


▲ ⓒJoan Marcus

감각적인 음악이 담긴 영화

원작은 2007년 발표됐던 동명 타이틀의 영화다.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이 배경으로, 30대 남성 길거리 연주가가 길에서 우연히 체코 이민자 여성을 만나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거명되기보다는 ‘남자(guy)’와 ‘그녀(girl)’라는 다소 애매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련함과 애잔함의 장치로 활용된다. 이어질 듯 그러나 이어지지 않고 좀체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두 사람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는 행복한 결말 대신 마음 한구석을 잔잔하게 울리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된다.

음악이 아름다운 영화답게 감각적인 선율에 담긴 노래들은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남자 주인공을 맡은 글렌 핸사드는 배우뿐 아니라 ‘프레임스’의 기타 겸 보컬 그리고 포크록 듀오 ‘스웰 시즌’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인데, ‘연기하는 가수, 노래하는 배우’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십분 살려 실감나는 이미지를 스크린에 선보였다. 여자 주인공으로 나왔던 마르케타 이르글로바 역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현역 가수다. 특히 실제 체코 출신이라는 자신의 개인적 배경을 잘 살려 어색하게 구사하는 어눌한 영어 솜씨의 동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제작비 15만 달러의 인디영화였던 이 작품은 그러나 글로벌한 흥행으로 2,000만 달러를 상회하는 매출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연출을 맡았던 사람은 앞서 언급한 그룹 ‘프레임스’의 베이스 주자였던 존 카니. 아일랜드 텔레비전의 프로듀서이자 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특히 저예산 독립영화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예술가다. 지난 2013년에는 올해 국내에서 개봉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비긴 어게인’의 메가폰을 잡기도 했는데, 음악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본인의 장점을 잘 살려 특히 젊은 계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사실 일각에서는 ‘비긴 어게인’을 두고 ‘제2의 원스’라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원스’에서의 흥행과 성공이 더 큰 규모의 대형 영화 작품인 ‘비긴 어게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차원에서의 평가라 이해할 만하다.

영화 ‘원스’는 평단으로부터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이끌어냈고, 결국 큰 사랑을 받았던 핸사드와 이르글로바의 노래 ‘Falling Slowly’가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누렸다.


▲ ⓒJoan Marcus

넘실대는 선율로 가득한 뮤지컬 무대

의외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뮤지컬이 제작된 것은 영국이 아닌 미국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였다. 영화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던 일련의 미국 제작진이 실험적인 성격의 무대를 구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뮤지컬 ‘원스’는 비교적 짧은 개발 기간을 거쳐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특별한 사례로 손꼽히기도 한다. 처음 워크숍 무대가 꾸며진 것이 2011년 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 소재한 아메리칸 레퍼토리 극장에서였고, 곧 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이듬해 바로 브로드웨이 버나드 제이콥스 극장에서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영화, 특히 주제가들의 인기가 뮤지컬로의 변화에 무척 용이하고 적합한 환경적 요인으로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할 만하다.

‘원스’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다. 연주자나 연주석이 따로 없이 등장인물들이 직접 악기를 다루며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무대는 단출한 원 세트에 뉴욕 공연가의 그 흔한 비주얼 효과 하나 없이 전개된다. 흥미로운 무대의 이미지는 막을 올리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다. 공연 개시 30분 전 극장을 들어서면 이미 극장은 넘실대는 선율로 가득하다. 등장인물들이 이미 무대로 나와 한바탕 신나게 연주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대 위로 올라가 감상할 수도 있다. 길게 줄을 늘어선 관객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지척 거리의 연주자들을 보며 박수 치고 미소도 건넨다. 한바탕 신명나는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이 객석으로 돌아오면 이윽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음악이 주역인 이 작품의 주제를 공연 전부터 확실히 심어주게 된다.

‘원스’가 최초의 액터 뮤지션 뮤지컬은 아니다. 이미 1980년대 말 등장했던 영국 뮤지컬 ‘금단의 별로의 귀환(Return TThe Forbidden Planet)’이나 존 도일이 각색한 ‘스위니 토드(Sweeney Todd)’ ‘컴퍼니(Company)’ 등은 액터 뮤지션 형식을 활용해 이목을 집중시켰던 흥행 뮤지컬 작품들이다. 몇 해 전 창작 뮤지컬로 선보인 바 있는 ‘모비딕’도 같은 계열이다. 일각에서는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연주자를 따로 두지 않는 형식을 구상하게 된 것이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하지만 색다른 형식이 주는 재미는 제법 감동적이다. 여러 마디의 대사나 연기보다 배우가 연주하는 악기의 선율 하나가 수백 가지 감상과 감동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이미 알고 있고 노래들도 익숙하지만 무대에서 배우들이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는 모습이 새삼 관객들을 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Falling Slowly’ ‘If You Want Me’ 등 영화를 통해 유명해진 노래들은 무대에서도 어김없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지난 2012년 미국 공연예술 분야의 권위적인 상인 토니상에서는 11개 부문 후보로 올라 베스트뮤지컬상을 포함해 모두 8개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연말에 로커 윤도현이 출연하는 우리말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라이브 연주가 지닌 음악적 감동

음악이 좋은 작품답게 음반 듣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우선 제일 좋은 음원은 역시 영화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앨범이다. 2007년 5월에 발매된 것으로 영화의 두 주인공의 실감나는 연주와 노래를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의 애호가들을 위한 특별 음반도 따로 있다는 점이다. OST가 만들어진 지 불과 7개월가량 후인 2007년 12월에 제작됐는데, 새롭게 추가된 두 곡의 노래와 라이브 퍼포먼스 영상, 그리고 인터뷰를 담은 보너스 트랙이 담겨 있다. 영화 OST는 그래미상 최우수 영화음악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수상까지는 이루지 못하고, LA 지역의 영화비평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뮤지컬이 제작되면서 뮤지컬 음반도 다시 등장하게 됐다. 영화음악으로 쓰였던 대부분의 음악이 다시 불리지만, 무대용 음원답게 풍부한 사운드를 덧붙인 것이 차이점이자 특징이라 할 만하다.

뮤지컬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스티브 케이지와 크리스틴 밀리올티인데, 특히 여주인공인 밀리올티는 어눌한 영어를 구사하는 매력적인 동유럽 여인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해내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토니상 주연상을 받은 것은 남자 주인공이었고, 밀리올티는 후보에 올랐으나 ‘포기와 베스’의 오드라 맥도널드에 밀려 수상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는 브로드웨이에 가서 ‘원스’를 찾더라도 만날 수 없는 오리지널 캐스트들인지라 음반으로 듣는 재미는 비할 데 없는 즐거움이 된다. 한편, 아쉽게도 아직 우리말 음반의 제작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콘셉트 앨범을 통해 음악적 인지도를 높이고 이를 다시 작품의 흥행에 활용하는 영미권의 마케팅 콘셉트는 아직 우리에겐 낯선 일에 불과하다.

사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역시 ‘음악’ 듣는 재미를 제대로 구현해낸 브로드웨이 공연 관계자들의 안목이다. 시종일관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보다 화려하지도 않고, 온갖 동식물 인형이 등장하는 ‘라이언 킹’보다 볼 것도 신통치 않지만 ‘원스’는 날것 그대로의 라이브 연주가 지닌 음악적 감동 하나만으로 전석 매진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돌 스타 한두 명은 반드시 캐스팅해야 티켓이 팔린다는 선입견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국내 뮤지컬 공연 관계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질 만하다. 우리 뮤지컬 관계자들이 재빠른 브로드웨이 흥행작의 판권 확보나 아이돌 스타의 출연 못지않게 과감한 형식미와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내는 브로드웨이 공연가의 혜안과 지혜를 꿰뚫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종원은 1980년대부터 활동해온 뮤지컬 칼럼니스트이다. ‘오페라의 유령’ ‘뷰티풀 게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한국 라이선스 공연 번역 작업에 참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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