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①

PART ① R. 슈트라우스 음악의 특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2월 1일 12:00 오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우리 얼마나 어떻게 봤을까?

PART ① R. 슈트라우스 음악의 특징

그는 과연 난해한 작곡가인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요란하기를 원했던 건 아니다.
생각보다 잠잠했던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의 카멜레온’이라 불리곤 한다. 다양한 양식의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인데, 그는 림스키 코르사코프로부터 배우던 시절의 낭만 작품과 ‘봄의 제전’을 비롯한 혁신적인 발레곡을 거쳐 신고전으로 회귀해 가벼운 음악을 만들었다가 생의 마지막 몇 년을 음렬음악이라는 현대적 음악으로 마무리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음악의 변화라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브람스풍의 낭만음악에서 시작해 리스트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교향시로 확대되었으며, 오페라 ‘엘렉트라’에서 무조음악 근처까지 갔다가 오페라 ‘장미의 기사’를 필두로 모차르트를 지향하는 신고전으로 전향하고 최후 몇 년은 초기 시절에 썼던 절대음악을 다시 작곡하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4년은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이하 슈트라우스)의 탄생 150주년을 맞는 해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기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나마 국내에서 연주되었던 작품들이 이전에도 종종 연주되었던 몇몇 교향시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렇게 의미 있는 해이기에 거의 들을 수 없었던 초기 관현악 작품이나 유명한 작품들에 가려진 교향시들, 그리고 기념비적인 교향곡들과 오페라 등을 기대했건만, 별다른 성과 없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여기에는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연주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우선 음악에 텍스트를 직접 담은 노래라면, 텍스트에 담긴 극적 내용이 음악을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연주자로서는 오히려 곤혹스러운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극적 효과를 위한 범상치 않은 변화와 고도의 테크닉이란! 이 요소들도 텍스트의 내용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텍스트에 대한 이해는 더욱 중요해진다. 하지만 국내에서 슈트라우스의 노래를 자주 들어볼 수 없었던 이유는 이보다는 슈트라우스가 성악가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 데 있지 않을까 싶다.

오페라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대관현악을 뚫는 성량이 필요하다. 게다가 무대를 성사시키기 위한 비용 부담이 그 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연출을 감내할 문화적 기반의 미흡함이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2008년 10월에 있었던 국립오페라단의 ‘살로메’ 한국 초연에서 관현악단만 100명 정도가 필요한 규모를 엘렉톤을 사용하여 40명으로 줄이는 파격적인 조치를 감내했음에도, 헤로데 안티파스 역의 테너가 리허설 직전에 바뀐 것은 연출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방증한다.

관현악곡도 마찬가지로 여러 어려운 점이 있다. 복잡한 서사적 구조와 두터운 텍스처를 투명하고 가볍게 표현해내야 한다는 해석의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고전음악 전통을 토대로 형성된 슈트라우스 음악의 특징으로, 해석을 넘어 연주력에 대한 요구 사항으로 연결된다. 즉, 관현악단이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등 빈악파의 음악으로 탄탄하게 다져지고 이러한 바탕에서 응용이 가능해야 비로소 올바른 슈트라우스 사운드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에 자주 들어보지 못한 악기가 많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슈트라우스의 곡을 프로그램에 넣지 않는 좋은 핑계거리이다.

수많은 타악기도 그렇지만, 자주 사용되지 않는 D조 클라리넷, 연주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바로크 시대의 악기인 오보에 다모레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헤켈폰(오보에보다 한 옥타브 낮은 음역의 오보에 계열의 겹리드 목관악기. 빌헬름 헤켈이 만들었으며,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엘렉트라’ ‘알프스 교향곡’에도 등장한다)은 무슨 악기인지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감상자의 입장도 그리 만만찮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에 구체적인 스토리가 있다는 특징은 감상자가 음악을 빠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순수 기악곡의 경우 음악 형식이 복잡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고전음악은 하나의 주제가 제시되고 그 변형이 뒤따르는 진행이 일반적인 것과 달리,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는 등장인물마다 서로 다른 주제가 제시되고 이들이 뒤얽히며 변형되기 때문에 극의 본래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매우 복잡한 음악으로 들릴 수 있다.

시기에 따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

청년 시절의 슈트라우스는 뮌헨 궁정 오케스트라의 제1호른 연주자였던 아버지가 바그너를 싫어한 까닭에 고전적인 작품을 주로 썼다. 오늘날에도 독주회에서 자주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나타와 첼로 소나타가 바로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그러던 그에게 리스트와 바그너에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알렉산더 리터였다. 그는 슈트라우스가 지휘자로 있던 마이닝겐 궁정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다. 슈트라우스는 그가 소개한 리스트의 교향시 양식과 바그너의 텍스처를 빠르게 흡수했다. 그 이후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이 함축된 특유의 서사적 교향시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돈 후안’과 ‘맥베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돈키호테’는 기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죽음의 변용’ ‘영웅의 생애’와 ‘가정 교향곡’ ‘알프스 교향곡’(이 두 교향곡은 문학과 회화의 이미지에 관현악을 덧입힌 교향시 형식을 가족간의 대화, 산의 이미지 등으로 확대시켰다) 시나리오까지 슈트라우스가 직접 만들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초인 사상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음악화한 특이한 경우이다.

그의 교향시들이 가진 스토리는 모두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음악은 배역을 상징하는 특정 주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슈트라우스를 실제 배역이 있는 오페라로 자연스럽게 인도했다. ‘군트람’과 ‘화재’의 실패를 초석 삼아 1905년에 ‘살로메’를 성공시키며 단숨에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다. 그리고 4년 후에 ‘엘렉트라’를 선보이며 미래지향적인 음악의 선두 주자로 각광받았다. 이 두 오페라의 관현악은 두텁고 음악적으로 탄탄하며 극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가사가 있는 교향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트라우스는 스트라빈스키와 닮은꼴이었던가? 이렇게 앞만 보고 나아갔던 그가 1910년에 모차르트풍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를 내놓았다. 이 곡은 스트라빈스키가 신고전을 선언하며 내놓은 발레곡 ‘풀치넬라’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이를 선동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엘렉트라’의 대본을 쓴 후고 폰 호프만슈탈이었다. 모차르트를 좋아하던 그의 제안에 따라 작곡한 ‘장미의 기사’는 이 공연을 위해 드레스덴으로 특별열차가 마련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슈트라우스는 이에 크게 고무되어 고전적인 구성을 가진 가벼운 희극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로 또 한 번의 히트를 친다.

교향시와 오페라의 스토리에서 한 가지 눈여겨볼 만한 점은 슈트라우스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영웅의 생애’와 ‘가정 교향곡’, 그리고 오페라 ‘인테르메조’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슈트라우스는 ‘영웅의 생애’와 ‘가정 교향곡’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영웅의 생애’의 영웅은 칼과 방패를 든 기사이며, ‘가정 교향곡’은 일반적인 가정의 행복을 표현한 것이라고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영웅의 생애’의 다섯 번째 부분 ‘영웅의 업적’에서 자신의 과거 작품이 인용되어 영웅이 자신임을 암시하고, ‘가정 교향곡’은 작곡 당시 슈트라우스의 가족 구성원과 동일한, 부부와 어린 아들이 묘사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와 최후의 오페라 ‘카프리치오’에 슈트라우스의 직업인 ‘작곡가’가 등장한다는 점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중 ‘카프리치오’는 작곡가와 시인이 백작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음악과 시의 우위를 대결하는 내용으로, 백작부인이 최종 선택을 하지 못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극의 흐름은 작곡가에 기울어져 있어, 이 오페라는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영웅의 생애’의 완곡한 표현으로 보인다.

지난 2013년이 벤저민 브리튼 탄생 100주년이었음에도 그의 관현악곡이나 오페라·노래 등이 국내에서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슈트라우스는 그나마 나은 상황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시지 않는 허전한 마음이 서거 70주년을 맞는 2019년에는 채워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