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킹키부츠’

가식과 편견을 벗겨내는 통쾌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2월 1일 12:00 오전

뮤지컬 ‘킹키부츠’

가식과 편견을 벗겨내는 통쾌함

왕년의 가수 신디 로퍼가 작사·작곡한 ‘킹키부츠ʼ는 성적 소수자의 고뇌를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 ⓒMatthew Murphy

2013년 토니상 시상식은 뮤지컬 ‘킹키부츠(Kinky Boots)’의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 시상식에서 ‘킹키부츠’는 13개 부문의 후보로 선정돼 최우수 뮤지컬상과 작곡상을 포함해 모두 6개의 주요 상을 싹쓸이하면서 그해 최고의 뮤지컬로 등극했다. 토니상 시상식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건너온 신작 뮤지컬 ‘마틸다(Matilda The Musical)’와 힘겨루기를 벌이며 평단으로부터 엇갈린 리뷰를 받기도 했지만, 토니상에서의 쾌거 후 ‘킹키부츠’는 순풍에 돛을 단 듯 흥행 돌풍을 선보이며 롱런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뉴욕 극장가에서 티켓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되었으며, 조만간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투어 공연도 시작될 예정이다. 새로운 스타의 ‘극적인’ 탄생이 된 셈이다.

 

스크린에서 무대로

뮤지컬 ‘킹키부츠’의 시작은 무대가 아닌 스크린이다. 요즘 세계 공연가를 강타하고 있는 무비컬이기 때문이다. 왕년의 흥행 영화 속 2차원의 영상을 가져다 무대라는 열린 공간에 맞춰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묘미다. 물론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음악과 춤으로 버무려진 새로운 맛과 재미가 다시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이자 감상의 주요 포인트다.

여타 무비컬과 차이점이 있다면 ‘킹키부츠’의 원작은 오래된 추억 속 명화가 아닌 비교적 근작이었다는 점이다. 뮤지컬 ‘킹키부츠’의 원작인 동명의 영화가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은 2005년의 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또 하나 있다. 영화 속 이야기가 가상의 스토리가 아닌 영국에서 실제 있었던 진짜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국의 한 지방에서 벌어졌던 남성용 신발 공장의 극적인 변신 스토리인데, BBC 텔레비전에서 1999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전파를 탔고, 영화는 바로 그 다큐멘터리를 모티프로 삼아 만든 것이다. 뮤지컬 속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허구가 아닌 진정성을 지니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사와 작곡을 맡았던 신디 로퍼도 화제의 중심이다. ‘Girls Just Wanna Have Fun’ ‘She Bop’ ‘Time After Time’ 등으로 1980~1990년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빅 히트를 기록했던 그녀가 노년의 나이에 무대용 뮤지컬 음악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그런데 첫 타석에서 만루 홈런이 나오고 말았다. 사실 그녀는 이제 예순 살의 나이로 왕년의 장난기는 색이 많이 바랬지만, 여전히 콘서트와 신작 발표 등을 통해 왕성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전매특허인 다이내믹한 매력과 통통 튀는 음악 스타일로 무대 위 이야기를 보는 재미 못지않은 뮤지컬만의 개성을 완성해냈다. 결국 신디 로퍼는 ‘킹키부츠’의 업적으로 토니상 작곡상을 거머쥐게 됐는데, 이는 뮤지션 개인으로서도 대단한 기록이지만 토니상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단독으로 작곡상을 수상한 진기록으로도 남게 됐다.


▲ ⓒMatthew Murphy

코믹함 속의 휴머니즘

‘킹키부츠’는 요즘 우리나라 뮤지컬 공연가에서 유행하는, 성적 소수자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 뮤지컬이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물려받은 남성용 신발 공장이 불황에 허덕이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찰리는 잠시 시골 고향에 들러 공장을 처분하고 자신의 삶이 있는 도시로 돌아가려 마음먹는다. 하지만 공장을 찾은 찰리는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고 이들이 실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역발상으로 드래그 퀸(화려하게 여장을 하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남자)을 위한 반짝이 부츠를 생산하게 된다는 코믹한 줄거리다(일반적으로 여성용 부츠는 화려함만 지니면 괜찮지만 남성용 부츠는 남자들의 무거운 몸무게를 견뎌냄과 동시에 화려함도 지녀야 하는 별난 제품이어야 한다는 데 그 특별함이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톡톡 튀는 개성의 성적 소수자인 롤라(원래 이름은 사이먼)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무대 속 이야기는 찰리가 롤라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꾸게 되는 과정이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전개된다. 결국 이기적인 도시민이었던 찰스가 인간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고 옛 애인 대신 공장에서 일하던 로렌과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양념처럼 추가된다. 드래그 퀸 퍼포먼스의 이질적이고 색다르며 아슬아슬한 무대 위 모습은 다양한 볼거리를 창출해내지만, 무대 속 줄거리에 담겨 있는 교훈은 인간성에 관한 본질적인 묘사가 주를 이룬다. 즉, 성적 이질감으로 인한 차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불과하며, 결국 세상만사는 모두 인간이 경험하며 느끼는 일이라는 휴머니즘의 감동이 숨겨 있는 셈이다.

사실 뮤지컬에서 이런 주제의 이야기가 ‘킹키부츠’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린 바 있는 여러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들, 예를 들어 ‘헤드윅(Hedwig)’이나 지난여름 국내 무대에 선보인 바 있는 ‘프리실라(Priscilla)’, 그리고 연말 공연가에서 각축을 벌일 대형 뮤지컬 중 하나인 ‘라카지(La Cage aux Folles)’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형적인 성적 소수자 소재의 인기 뮤지컬이다. 엇비슷한 코드와 시각이 다수의 뮤지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들 이야기 속에 담긴 진정성과 감동이 요즘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소구된다는 배경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성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에 관대해진 요즘 우리나라 대중의 열린 시선과 시각이 오히려 흥미롭기조차 하다.

뮤지컬의 극본은 하비 피어스타인이 맡았다. 극작가 겸 배우인 그는 앞서 설명한 ‘라카지’의 극본을 집필했고, 국내에서도 막을 올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 ‘헤어스프레이(Hairspray)’에서 파자마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는 목소리 걸걸한 엄마 역으로 등장해 박장대소를 이끌어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스스로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그는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는 성적 소수자의 여러 이야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훗날 ‘헤어스프레이’가 뮤지컬 영화로 제작됐을 때, 엄마 배역을 존 트래볼타가 연기한 것을 두고 평단과 업계에서는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물론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 배우가 어떻게 이 역을 효과적으로 완성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속 깊은 지적 때문이었다. 흥행에서는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타마케팅은 작품 주제의 색을 바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였다. 물론 이런 개인적 배경을 가진 하비 피어스타인이 극본을 맡은 최신작이 바로 뮤지컬 ‘킹키부츠’이기에 극이 지닐 수 있는 진정성은 더욱 배가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연출과 안무로 제리 미첼이 참여한 것도 세간에는 화제가 됐다.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로 유명한 그는 1990년 ‘지킬 앤 하이드(Jekyll&Hyde)’를 비롯해 ‘풀 몬티(Full Monty)’ ‘헤어스프레이’ ‘더럽고 치사한 사기꾼들(Dirty Rotten Scoundrels)’ ‘리걸리 블론드(Legally Blonde)’,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등의 뮤지컬에서 안무를 맡아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던 경력의 베테랑 안무가 겸 연출가다. ‘킹키부츠’로 그는 다시 토니상 안무상을 수상하고 연출상 후보로 선정되는 등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를 누렸다. 이 밖에도 세트 디자이너로는 건축가 겸 디자이너로 유명한 록웰 그룹의 설립자 데이비드 록웰, 의상 디자이너로는 수많은 영화와 공연에서 활약한 바 있는 그레그 반스, 조명 역시 다양한 뮤지컬에서 이미 검증된 바 있는 유명 스태프인 케네스 포스너가 함께해 시선을 모았다. 스태프 대부분이 ‘헤어스프레이’나 ‘더럽고 치사한 사기꾼들’ ‘리걸리 블론드’ 등에서 호흡을 맞춰본 브로드웨이 흥행 뮤지컬들의 ‘드림 팀’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그런 면에서 ‘킹키부츠’는 뮤지컬 최고 흥행사들이 총집결한 작품이라 인정할 만하다.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과 비교하는 재미

공연의 흥행은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의 성공으로도 이어졌다. 2013년 봄에 발매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은 단박에 빌보드 캐스트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공연 음악으로서 정체성뿐만 아니라 신디 로퍼의 음악적 스타일이 대중적 인기에도 한몫한 셈인데, 예를 들어 ‘Sex Is In The Heel’과 같은 뮤지컬 넘버는 빌보드 클럽 차트의 25년 역사상 최초로 톱 10 안에 진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이라는 진기록을 낳기도 했다.

음반을 듣는 재미를 더해준 것은 극 중 드래그 퀸인 롤라 역으로 등장하는 빌리 포터의 목소리다. 오랜 배우 활동에도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이 작품을 만나 그동안 갈고닦았던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결국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이뤄냈다. 음반을 듣다 보면 ‘롤라의 세상(Land of Lola)’과 같은 뮤지컬 넘버에서는 중성적인 매력의 보이스 컬러가 묘한 매력을 자아내는가 하면, ‘아빠가 원했던 아들이 되지 못했지(Not My Father′s Son)’에서는 반대로 성적 소수자여서 겪을 수밖에 없는 내면의 아픔을 절절히 담아낸다. 무대를 연상하며 감상하면 그야말로 절묘한 그의 창법이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지금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는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은데, 직접 볼 수 없는 국내 관객으로서는 다소 아쉽기도 하지만 오리지널 캐스트 음반은 그 나름대로 대리만족의 위로를 준다. 연말에 막을 올리는 우리말 초연 무대에서는 오만석과 강홍석이 롤라 역으로 등장하는데, 원작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며 그만의 캐릭터를 창조해낼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신나는 박자가 인상적인 노래들은 신디 로퍼 특유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지만, 음반을 듣다 보면 정작 입가를 맴도는 노래 대부분이 발라드 넘버들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신디 로퍼는 다양한 캐릭터와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팝에서 펑크, 뉴에이지, 탱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극의 두 축을 이루는 롤라와 젊은 사장 찰리의 노래들은 풍부하고 울림 있는 서정적인 깊이를 담아내 많은 사랑을 받게 됐다.

우리나라 기업인 CJ E&M이 제작 투자를 통해 프로듀서로 참여해 올 연말에는 국내 무대의 막을 올린다. 우리말로 제작되는 라이선스 뮤지컬에는 김무열·지현우·오만석·정선아 등 인기 뮤지컬 배우들과 영화배우 고창석이 등장한다. 물론 우리말 개막도 초미의 관심사지만, 애호가 입장에서는 먼저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을 만나 비교하며 즐겨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는 묘미가 될 것 같다. 특히 신디 로퍼의 음악적 실험이 무대와 결합하는 절묘한 만남의 감동을 떠올리며 감상해본다면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뮤지컬 작품은 음악을 통해 만나면 더욱 진한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뮤지컬 플러스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즐거운 감상법이다. 해외의 뮤지컬 애호가들 중에 음반 수집을 즐기는 사람이 유독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의 뮤지컬 음반은 제작되는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창작 뮤지컬의 경우 대부분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음악이 없는 뮤지컬 감상은 절반의 이해에 불과하다. 뮤지컬의 인기가 음악을 감상하고 수집하는 다양한 영역의 확산으로까지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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