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원스’

무대 위 ‘슈퍼맨’들의 캐스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월 1일 12:00 오전

2014년 12월 3일~2015년 3월 29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뮤지컬은 음악극이다. 아무리 연기가 뛰어나고 기가 막힌 스토리가 전개된다 하더라도 가장 근간을 이루는 요소는 역시 음악이다. 국내에서는 연극인들에 의해 주도되어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보니 대사 중간에 적당히 노래가 등장한 세속적인 장르쯤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도 있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앞뒤가 맞지 않는 시각이다. 뮤지컬의 할아버지는 연극이 아닌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한 현대의 음악적 요소들로 꾸며진 ‘현대식 오페라’라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 무궁무진하게 변화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뮤지컬이 지닌 매력이자 장점이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뮤지컬 ‘원스(Once)’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는 음악의 형식적 실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다. 뮤지컬 출연자가 노래하며 춤추고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까지 모두 전개하는 ‘슈퍼맨’이 필요한 형식적 시도다.

처음 등장할 때는 말도 많았다. 연주자나 연주석을 따로 마련하지 않다 보니 “저렴한 제작비를 노리는 꼼수”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색적인 형식이 주는 매력에 빠르게 반응했고, 흥행과 함께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도 이어졌다. 예술에서 사고나 인식의 전환은 한 걸음 나아가는 진보를 낳는다는 명제를 재확인시켰다.

이러한 형식의 뮤지컬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것은 아니다. 창작 뮤지컬 ‘모비딕’도 유사한 실험성을 담고 있었다. 연주석을 무대로 끌어올려 ‘보이는 음악’을 표방했던 ‘광화문연가2’나 라이선스 뮤지컬인 ‘시카고’도 엇비슷한 매력의 무대들이다.

하지만 액터 뮤지션 뮤지컬에는 사실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다. 바로 연주에 능숙하면서도 연기와 노래까지 섭렵해야 하는 장르의 특성 때문이다. 연주자가 노래를 하면 연기가 어설프고, 연기자가 연주를 하면 음악이 아마추어 무대처럼 보이는 난관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뮤지컬 ‘원스’의 국내 무대는 이 부분을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우선 박수 받을 만하다. 특히 윤도현의 가세는 그야말로 절묘한 ‘한 수’로 평가할 만하다. 이미 몇몇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자질(?)도 검증받은 바 있는 그의 연주와 노래, 그리고 연기는 안정적인 극적 완성도를 만족스레 보여준다. 사실 윤도현의 뮤지컬 진출은 꽤나 오래전에 이뤄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김민기의 뮤지컬 ‘개똥이’에서 ‘날개만 있다면’을 목 놓아 불렀던 적도 있다.

매력적인 선율, 익숙한 가락, 풍부한 감성의 음악적 요소들, 그리고 이뤄질 듯 이어지지 않는 애틋한 러브 스토리는 이 작품이 주는 재미다. ‘Falling Slowly’나 ‘If You Want Me’의 우리말 가사 역시 큰 무리 없이 귀에 꽂힌다. 하지만 화룡점정은 단연 여배우들의 존재다. 영화와 비교해보면 무대에서 그녀들의 존재는 한층 강렬하게 부각된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감성이 남다른 매력으로 작용하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련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자 극적 갈등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서 읊조린 체코어 한마디가 사랑의 고백이었다는 설정은 무대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재연된다. 짧지만 강렬한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고 재잘대듯 이야기하다가 결국 눈물 흘리게 만드는 모습은 우리나라 여배우들도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영어권 캐스트 못지않게 인상적인 무대를 구현해낸다. 전미도와 박지연의 캐스팅은 이 작품 최고의 성과 중 하나다.

뮤지컬 ‘원스’는 마음까지 녹여주는 따뜻한 차 한잔 같아서 더욱 뒷맛이 길게 남는 무대다. 모처럼 만나는, 귀가 즐거운 작품이라 또한 반갑다.

사진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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