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개관한 복합 문화 공간, 킹스 플레이스는 런던의 대표적인 재개발지역 킹스 크로스에서 허파와 다름없다. 킹스 플레이스 건물엔 ‘가디언’지의 본사 편집국과 카페, 두 개의 콘서트홀이 함께 있다. 특히 420석 규모의 ‘홀 원(Hall One)’은 고음악에 적합한 어쿠스틱을 갖춰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기획 공연이 자주 열린다. 같은 아티스트의 연주회라도 런던 도심 공연물과 비교해 젊고 신선하다.
소프라노 에마 커크비와 1991년 창단해 영국을 대표하는 고음악 앙상블로 성장한 플로릴레기움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하게 런던 실내악의 메카 위그모어홀에서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2014년 12월 4일은 그들이 킹스 플레이스에서 처음으로 무대를 함께한 날이다. 주제는 프랑스 바로크였다. 커크비의 성악곡은 21세기 들어 비스(BIS) 레이블에서 내놓은 앨범에서 추렸다. 몽테클레르의 칸타타 ‘판과 시링크스’와 ‘루크레티아의 죽음’은 2011년 런던 바로크와 녹음한 곡이고, 랄랑드의 ‘성 3일의 전례독송’은 동명의 쿠프랭 작을 아네 멜롱이 커플링했던 2007년 앨범에서 발췌했다. 플로릴레기움은 리더 애슐리 솔로몬(플루트)의 리드 아래, 채널 클래식스에서 출반한 2013년 앨범 ‘쿠프랭과 르벨’의 주요곡을 공연에 내놓았다.
플로릴레기움은 르클레르의 ‘음악의 두 번째 재현’으로 막을 열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식의 수준 높은 결합을 궁극하는 작곡가의 고민이 플루트와 바이올린 사이를 오갔다. 2013년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의 내한 공연에서처럼 바이올리니스트 보얀 치치치는 쇼맨십 대신 절정의 테크닉으로 관객과 조응했다. 플로릴레기움이 쿠프랭의 ‘여러 나라 사람들’과 르벨의 ‘춤의 성격’에서 초점을 맞춘 건 프랑스 발레를 처음 영국에 진출시킨 무용수 마리 살레였다. 특히 르벨의 ‘춤의 성격’은 작품이 영국에 초연된 1725년부터 살레가 발레 ‘피그말리온’의 영국 프리미어에서 코르셋이나 페티코트 없이 천 하나만 걸치고 산발(散發)한 채 춤을 추던 1734년까지의 런던을 프랑스의 시각으로 파노라마처럼 비쳤다. 잔동작 없이 주변 악기들과 작품을 윤독하는 일본인 비올라 다 감바 주자 이치세 레이코의 차분함이 창단 후 사반세기 동안 성실함을 유지한 플로릴레기움의 컬러를 상징했다.
새해 예순여섯에 접어드는 커크비의 육성은 지난 두 차례 내한 공연 때처럼 노쇠했다. ‘판과 시링크스’에선 고음의 전아함은 여전했지만 짧은 호흡으로 작품의 흐름이 거듭 끊겼다. 그러나 커크비에게 연륜은 곧 또 다른 지혜의 습득을 뜻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15년 전에 비해 판단력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던 커크비의 현명함은 ‘성 3일의 전례독송’과 ‘루크레티아의 죽음’에서 빛났다. 시어와 악상에 놓인 강인함을 풍부한 흉성으로 표출하기보다 가녀린 서정으로 일관했다. 가지런한 테오르보 반주 속으로 녹아드는 담백한 가창, 여전히 멜랑콜리한 두성은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탐구하는 데 인생을 함께한 빛나는 현재였다. 든든한 후원자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없는 세상에서도 커크비의 음악은 진보한다는 것을 런던 실내악의 메디나, 킹스 플레이스가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