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식스틴

바로크와 현대, 시간 여행으로의 초대 영국의 고음악 보컬 그룹 더 식스틴이 들려줄 고음악의 매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더 식스틴

바로크와 현대, 시간 여행으로의 초대   
영국의 고음악 보컬 그룹 더 식스틴이 들려줄 고음악의 매력


2014년 12월 20일. 영국의 르네상스 전문 보컬 그룹 힐리어드 앙상블이 위그모어홀에서 은퇴 공연을 마쳤다. 그래도 힐리어드 앙상블은 2002년과 2011년 내한해 교감할 기회가 있었다. 여성 보컬 앙상블 어나니머스4는 2015년 은퇴 투어를 하고 있지만 지난해 10월 마카오 공연 이후에는 아시아 연주가 보이지 않는다. 고음악 보컬 앙상블의 내한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요즘 힐리어드 앙상블, 어나니머스4와 함께 30년 넘게 고음악 성악 붐을 주도한 영국의 보컬 그룹 더 식스틴이 첫 내한 공연을 한다(3월 13일 LG아트센터).

영국은 중창과 합창에 이르는 보컬 음악의 전통이 유구하다. 이 같은 전통은 13세기 중세부터 청교도 혁명(1642~1660) 당시 잠시 중단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지금도 지역의 큰 성당이나 케임브리지 소재 여러 대학 회당을 중심으로 영국 합창은 면면히 맥을 잇고 있다. 20세기 후반 교회와 성당에 가는 인구가 줄어듦에도 영국은 여전히 제럴드 핀지·마이클 헤드·에드먼드 러브러·프리올 레이니어·마차시 셰이베르·마이클 티펫·험프리 설 등이 꾸준히 성당용 합창 음악을 작곡하고 여러 단체가 이를 재생하면서 보컬 강국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더 식스틴(The Sixteen)은 1953년 켄트 태생의 지휘자 해리 크리스토퍼스가 1979년 정식으로 창단한 혼성 보컬 앙상블과 이후 부속된 시대 악기 오케스트라의 조직을 통칭한다. 4성부를 네 명씩 나눈 단원 숫자와 16세기 음악에 충실하겠다는 신념을 이름에 담았지만, 지금은 16명을 넘겨서 공연하기도 한다. 현재 르네상스와 바로크·전기 고전· 20세기 음악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정상 보컬 앙상블이 되었다.

초기에는 영국과 이베리아 반도의 대위 음악에 주력했지만, 독립 악단을 갖춤에 따라 헨델의 합창 음악에 본격적인 탐구가 가능해졌다. 2000년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1년간 한시적으로 운용하기로 한 필그리미지 프로젝트(영국 내 주요 성당을 커버하는 기획 공연)가 성공을 거두면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앙상블이 되었다. 100여 장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피터 필립스의 더 탤리스 스칼러스(The Tallis Scholars)에 비하면 전통적으로 여성 보컬에서 더 가벼운 소리가 나지만 전체적으로 단순한 투명함을 넘어선 파워풀한 연주가 특징이다.

2014년 11월 21일, 해리 크리스토퍼스가 더 식스틴의 윔블던 뮤직 페스티벌 공연을 위해 윔블던 천주교 성심성당에 나타났다. 어린 시절 캔터베리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 그는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제스로 툴과 롤링 스톤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힐 만큼 일찍부터 동시대성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더 식스틴 창단 전까지 그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과 BBC 싱어스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윔블던 공연을 앞두고 성당 근처 펍에서 그를 만났다. 이하 해리 크리스토퍼스와의 일문일답.

윔블던 공연도 필그리미지 프로젝트의 일환인데, 이러한 성당 순회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2000년을 앞두고 후원자들과 밀레니엄인데 뭔가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다 누군가 당시 노동당 정부가 기울이는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공연으로 바꿔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영국 내 산재한 아름다운 성당에서 연주한다면 커뮤니티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일 거란 생각이었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런던 밖에서 어떻게 공연이 흥행하느냐며 웃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 런던에서 공연을 해도 적자였다. 계속 돈을 잃으며 음악을 할 순 없다며, 1년만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하자고 했는데 얻은 게 무한했다. 음악과 건축이 어떻게 만나는지 시각이 넓어졌고, 현지 공연마다 흥행을 거둬 재정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운영과 지속 가능한 모델을 찾았다는 점이 중요했다. ‘필그리미지’ 덕분에 다른 단체에 비하면 영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받는 보조금의 비중도 운영 예산 대비 비율이 작은 편이다.

2001년 자체 레이블 코로(Coro)를 만든 것도 당시로선 모험적이었다.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에 대한 답변은 명확했다. 공연에 오지 못한 관객에게 우수한 품질의 음반을 제공한다면 우리 소임은 다하는 게 아니냐고 설득했다. 셰필드와 블랙번에서 CD를 들은 사람들이 공연장에 와서 오늘 연주가 어땠다고 말해주면 그렇게 기분 좋은 피드백이 없다.

더 식스틴을 운영하면서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는가.

1990년대 우리 앨범을 마흔 장 가깝게 녹음하던 레이블 콜린스(Collins)와의 작업이 중단된 시기가 가장 어려웠다. 과감한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그때 생각난 건 롤링 스톤스였다. 팝에서는 신보를 발매하면 투어를 함께 한다. 우린 고음악에서 해보자고 했다. 한 프로그램을 녹음하면 보통 13개의 투어가 가능했다. 아직까지 어디도 우리 모델을 따라 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음반 발매가 콘서트를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콘서트가 콘서트를 만든다. 연평균 2만5000명의 유료 관객이 더 식스틴 공연을 보러 온다. 영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젊은 층이 더 식스틴의 공연 관객으로 많이 잡힌다.

한국 공연에 가면 젊은 층이 얼마나 많은지 더 놀랄 것이다.

영국의 동료들에게 많이 들었다. 성당이 아닌 LG아트센터의 어쿠스틱도 궁금하다. 4년 전부터 제네시스 재단의 도움으로 고음악 지망 학생들을 훈련하는 ‘제네시스 식스틴’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클래식의 ‘더 엑스팩터’(The X Factor,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라고 보면 된다. 매년 고음악 지망자를 선발하는데 교육이 무료다. 교육이 끝나면 이들이 우리뿐 아니라 몬테베르디 합창단·더 탤리스 스칼러스·가브리엘리 콘서트에도 간다. 관객 증진만큼 신진 양성이 중요하고, 이를 학교에만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솔로이스트를 캐스팅하는 감독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가올 10~15년을 함께할 수 있을지 먼저 본다. 이미 함께한 가수들은 언제 다시 해도 가족 같은 유대감이 존재한다. 마크 패드모어·캐럴린 샘프슨·세라 코널리·로빈 블레이즈가 그렇다. 솔직히 젊은 성악가 층에서는 이들을 따라잡는 싱어를 찾지 못했다.

16세기와 20세기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

창단 당시 지금처럼 20세기 작품도 연주할 거라고 생각했는가.

16세기에 대한 사랑이 간절했을 때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때는 이것만 파더라도 평생 갈 거라 생각했다. 스트라빈스키·리스트·말러를 좋아하던 시절 학교 선생님이 열어준 르네상스 시대가 그렇게 넓어 보였다. 오래전 더 탤리스 스칼러스에서 잠깐 노래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든 생각이 내 조직을 만들어 좀 더 라이브답게 연주했으면 하는 거였다. 고음악이란 것이 그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과 하는 비슷비슷한 음악이 아니라 거기에서 빠져나와 참신한 무언가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악보에 있는 걸 그대로 옮기는 고음악이 아닌 가수의 개성과 인생이 담긴 노래를 고음악에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스트라빈스키, 말러야 지금도 사랑하는 작곡가들이지만 여기서 연주를 안 하는 건 고음악에 헌신하는 연주가에 대한 존경 때문이다. 풀랑크를 참 좋아하는데, 제임스 맥밀런처럼 자주 연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더 식스틴의 핵심은 르네상스와 바로크다.

내한 프로그램을 보면 16세기의 팔레스트리나와 20세기 작곡가 맥밀런의 곡이 대화를 주고받듯 이어간다. 이들의 알레고리는 무엇인가.

팔레스트리나가 중심축이다. 16세기에는 누구나 그의 음악을 참고했다. 맥밀런 작품을 연이어 붙인 건 작품이 16세기에 어떻게 쓰여서 관객과 어떻게 소통했고 그것이 현대 작곡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현장의 관객이 시간 여행을 해보라는 권유다. 모차르트 ‘레퀴엠’과 그것에 영향을 받은 현대작을 병렬로 놓았을 때 관객이 느끼는 심상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모차르트 ‘레퀴엠’도 오랜 연구 끝에 초판본과 개정판본 사이의 간극을 음악가들과 관객이 알게 되었듯, 16세기 작품이 항구성을 갖으려면 현대작품과의 비교가 불가피하다. 르네상스작 가운데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Miserere)는 오랜 연구를 통해 신화가 벗겨진 대표작이다. 가수들과 이 곡을 공부하면 역사를 놓고 나누는 대화가 언제나 흥미롭다.

내한 공연에서 한국 청중이 주목했으면 하는 작곡가는 맥밀런이다. 같은 구성으로 다른 곳에서 연주를 마쳤을 때 언제나 맥밀런이 화제에 올랐다. 그는 성서 해석에 능할 뿐 아니라 자신의 곡에 켈틱과 스코틀랜드의 문화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그로 인해 더 식스틴의 비르투오시티도 빛난다. 투명하다, 청아하다의 반응이 아닌, 18명의 가수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 반응이 여러 목소리의 폴리포니라는 점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예전 음반을 들으면 당시의 기억이 다 나는가.

특정한 시간 속에 서로 다른 가수들이 모여 만들어낸 지성의 총체가 녹음이다. 그것이 언제든 같게 들린다면 그건 단체의 획일화이지 전통의 고수가 아니다. 가수들의 개성과 자율로 작품이 탄력을 받는 게 우선이다. 더 식스틴은 회화의 밑그림이다. 그 위에 끊임없이 덧칠이 가해져서 서로 다른 그림이 되어야 한다. 합창 지휘자가 그저 소리를 블렌딩만 하면 그건 합창도, 음악도 아니다.

고음악의 비밀을 캐내는 비법은 무엇인가.

대학생 때처럼 라틴어도 공부하고 그랬으면 좋겠지만, 최근 음악학자들의 보고서를 많이 참조하게 된다. 영국과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르네상스 음악에 관한 학자들의 담론이 풍부하다. 영국의 르네상스 음악을 이해하려고 모두가 신실한 종교인이 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관객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고음악에 능한 성악가들이 오페라 극장에 자주 서는 문제를 놓고 금전 때문에 고음악을 등졌다거나 교회가 무너진다는 식으로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티스트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사진 Molinavis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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