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박규희

세계 유수의 클래식 기타 콩쿠르를 휩쓸며 믿음직한 경력을 쌓은 그녀. 이제 모국인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린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기타리스트 박규희

세계 유수의 클래식 기타 콩쿠르를 휩쓸며 믿음직한 경력을 쌓은 그녀. 이제 모국인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린다

음악사를 살펴보면 기타의 역사는 참 오래됐다. 기타를 현악기의 할아버지라고 하지만, 한국의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길지 않다. 국내에서 클래식 기타는 197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발현악기가 대중 악기로 발돋움한 세월이 고작 40년이다. 클래식 기타 연주자도 많지 않은 터에 새로운 유망주가 나타났다. 1985년생 기타리스트 박규희다.
3월 12일, LG아트센터에서 첫 공식 내한 공연을 준비 중인 박규희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수화기를 통해 만난 그녀는 클래식 기타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세 살 때 기타를 잡은 박규희는 예원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 도쿄 음악대학에 입학, 현재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 활동 중이다. 그녀는 2007 하인스베르크 기타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2008 벨기에 프랭탕 기타 콩쿠르 1위, 2009 미켈레 피타루가 클래식 기타 콩쿠르 3위, 2010 빈 포럼 기타 콩쿠르 1위, 2010 스페인 루이스 밀란 기타 콩쿠르 1위, 2012 스페인 알함브라 기타 콩쿠르 1위, 2014 폴란드 얀 에드문트 유르코프스키 기타 콩쿠르 1위를 하며 믿음직한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 10월에는 브라질풍 레퍼토리로 채운 음반 ‘사우디지’를 발매했다. 현재 박규희는 프랑스의 기타 장인 다니엘 프레드리가 2009년에 선물한 기타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 활동을 차근차근 늘려갈 예정인 그녀는 한국도 유럽처럼 클래식 기타의 입지가 단단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피겨스케이팅 하면 김연아가 생각나는 것처럼, 우리 음악계의 클래식 기타 선구자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번 공연에서 그녀는 바흐부터 빌라 로부스까지, 바로크 시대와 현대의 간극을 조절하며 클래식 기타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다음은 박규희와 나눈 일문일답.

세 살 때부터 악기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기타와 함께한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두 살 때 취미로 기타를 배우는 어머니를 따라 기타 학원에 갔습니다. 어머니 말로는 제가 세 살 때부터 악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섯 살 때부터 곡을 연주했습니다. 그때까지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 왔어요. 기타 학원을 갔는데, 선생님이 어리다는 이유로 레슨을 거절했습니다. 3개월 뒤 다시 찾아가니 그제야 받아주셨어요. 리여석 선생님한테 11년 동안 기타를 배웠습니다. 예원학교에서도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는 것은 독특한 경우였습니다. 함께 기타를 배우던 학우가 전교에 두 명이었거든요. 하교하면 바로 리여석 선생님의 인천 집으로 갔습니다. 중학생에게 서울 중구에서 인천까지의 거리는 굉장히 멀었죠. 선생님 집에서 항상 밥을 먹고, 늦게까지 기타를 쳤어요. 기타가 ‘친구’였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무척 빠른 나이에 시작했네요. 제가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건 다섯 살이었거든요. 당시에 사용한 악기를 지금 보면 조그맣고 앙증맞아 놀라곤 해요. 기타는 바이올린보다 덩치가 큰 편인데, 어린아이를 위한 기타가 있나요.
당시 한국에는 작은 사이즈의 클래식 기타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악기를 가져왔어요. 세 살 때 사용하던 악기는 우쿨렐레보다 약간 컸습니다. 그래도 여섯 줄의 ‘진짜’ 클래식 기타였어요. 그 악기는 지금도 리여석 선생님 집에 진열돼 있어요. 고유의 색깔과 악기에 생긴 작은 흠 하나까지 다 기억납니다.
열다섯 살에 다시 일본에 갔습니다. 사춘기라 예민할 시기인데요. 이 시기에 기타와의 밀착도에 영향이 있었나요.
예원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일본으로 다시 이민을 갔어요. 사춘기 소녀들은 보통 부모님보다 친구들에게 더 의존하는데, 갑자기 혼자가 되어 힘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녀서 함께 음악을 공유할 또래 친구들이 없었죠. 그래서 오히려 기타에 더 매달린 것 같네요.
일본은 한국보다 클래식 기타 애호가가 많다던데요.
일본에는 무라지 가오리라는 기타리스트가 있습니다. 방송과 광고에 자주 나오는 인기 있는 연주자입니다. 클래식 기타를 모르는 사람들도 가오리가 하는 연주에는 호감을 가져요. 가오리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입니다. 한국에서는 제가 선구자가 되어 클래식 기타의 기반을 다지고 싶습니다.
보통 클래식 기타라고 하면 라틴 국가를 떠올리는데, 왜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로 유학을 결정한 건가요.
알바로 피에리에게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의 음반을 처음 들었어요. 충격적이었죠. 단번에 반해버렸습니다. 도쿄 음대 1학년 때 피에리의 연주를 직접 들었어요. 바로 학교를 자퇴하고 빈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한국·일본·유럽, 각 국가마다 음악 교육에 독특한 특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양에서는 보통 테크닉을 강조합니다. 음악을 가르치는 시스템 안에서 학생들은 ‘체계적으로’ 음악을 배웁니다. 반대로 유럽은 일단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는 입장이죠. 음악을 ‘가르치기’보다 ‘도와주는’ 느낌이 강해요. 개인적으로 조기 유학을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어린 나이에는 테크닉 중심으로 음악을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본기가 단단해야 나중에 음악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세 나라의 음악을 경험했는데요. ‘기타리스트’로서 마음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와! 처음 듣는 질문이네요. 음… 마음의 고향은 한국입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첫 번째 장소니까요. 리여석 선생님께 음악부터 인성 교육까지 모두 배웠습니다. 저를 손녀딸이라고 생각하시죠. 음악 인생의 따뜻한 원동력입니다. 나중에 누군가를 가르친다면, 이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일본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드는 나라죠. 오스트리아 빈은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도록 도와준 곳입니다. 그곳에서 악기에 대한 실력과 연륜이 가장 많이 쌓였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클래식 기타를 선택할 건가요.
물론이죠! 무조건 클래식 기타를 선택할 겁니다. 클래식 기타는 소리가 작아요. 저는 이 작은 소리가 정말 좋습니다. 기타는 사람의 목소리와 음량이 거의 비슷합니다. 계속 들어도 마음에 부담이 없고 오히려 편해져요.
브라질 월드컵에서 영감을 받은 ‘사우다지’ 음반을 지난해에 발매했습니다. 음반을 녹음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여태까지 총 일곱 개의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그중 가장 고생해서 녹음한 음반입니다. 작은 홀에서 녹음했는데, 바로 옆 홀에서 일본 고등학교 축제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관악단 연주 때문에 생긴 잡음과 진동이 녹음하는 곳까지 전달됐어요. 시간이 계속 지연돼 장시간 녹음했습니다. 고생한 만큼 애착이 깊은 음반이에요.
다음 음반에 넣고 싶은 곡이 있다면.
기타의 고전을 파헤치고 싶습니다. 기타의 역사가 담긴 곡을 연주하고 싶어요. 편곡된 바흐 작품도 연주해보고 싶고…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아요!(웃음)
이번 3월 12일에 하는 공연명을 ‘수에뇨(Sue?o)’라고 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스페인어로 ‘꿈’이라는 뜻인데, 2010년 데뷔 음반명과도 똑같네요.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하는 첫 번째 공식 공연입니다. 꿈을 꾸는 기분이에요. 이번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아하는 곡도 아구스틴 바리오스 망고레의 ‘숲 속의 꿈’입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페이스북에 앙케트를 해서 팬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선곡했어요. 이번 연주회에서 클래식 기타 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도 있겠죠. 관객 모두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적으로 한국 활동을 늘릴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저보다는 클래식 기타를 먼저 알리고 싶어요. ‘기타는 역시 클래식 기타’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가 끝나고, 그녀와 나눈 ‘음악적’ 대화를 잊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곱씹어 생각하다, 책상 위에 있던 박규희 ‘스페인 여행’ 음반을 틀었다. 소리의 결이 차분하다. 곱다.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기타 선율을 음미했다. 그리고 펜을 들어 박규희에 대한 생각을 한 줄씩 메모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
클래식 기타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
그녀는 분명 우리나라 클래식 기타의 별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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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희 클래식 기타 독주회
3월 12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루이지 리날도 레냐니 카프리스 7번, 바흐 샤콘, 페르디난도 소르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미겔 요베트 ‘소르 주제에 의한 변주곡’, 파울루 벨리나티 ‘종고’, 빌라 로부스 ‘쇼로’ 1번, 아구스틴 바리오스 망고레 ‘숲 속의 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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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혜선 기자(hyesun@gaeksuk.com) 사진 뮤직앤아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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