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만난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외모·연기·목소리의 삼위일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로 런던 밤을 달군 카우프만. 오는 6월,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2015년 코번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캐스팅만으로 매진시키는 스타는 둘이다. 발레에선 나탈리야 오시포바, 오페라에선 단연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다. 1월 20일부터 2월 6일까지 데이비드 맥비커 연출의 조르다노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의 7회 공연이 전석 매진됐다. 티켓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연인 마달레나와 함께 형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카우프만의 걸음에 눈물을 왈칵 쏟는 관객이 한둘이 아니었다.

카우프만은 뉴욕에서처럼 런던에서도 선망의 대상이다. 영국·미국의 정론지들이 ‘현존하는 최고의 테너’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기사에 올리는 수퍼스타. 6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 카우프만은 요헨 리더가 지휘하는 유라시안 필과 함께 연주한다.

어둡고 로맨틱하면서 강인한 목소리로 세계적 스타덤에 오른 성악가라면 도밍고가 떠오른다. ‘포스트 스리 테너’로 여러 가수를 거론하며 그들을 서열화했다. 누가 도밍고와 유사한 소리를 내는지 도토리 키 재기를 한 세월이 20년이 지나간다. 특별한 성악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라디오에 흐르는 소리만으로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처럼 한 번에 구분되는 성악가가 우리 곁에 있는가. 카우프만의 현 음반 소속사 소니는 ‘21세기 킹 오브 테너’로 그를 홍보 중이다. 카우프만은 누구인가. 그는 소리만으로 자신을 대중에게 알릴 저력이 있는가.

1969년 뮌헨에서 태어난 그는 한스 호터와 제임스 킹을 사사했다. 1994년 자르브뤼켄 주립극장 전속 가수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베를린 코미셰·함부르크·프랑크푸르트를 오가며 내공을 쌓았다. 한동안 발성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성악 트레이너 마이클 로즈의 도움으로 이를 고쳐냈다. 199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데뷔할 때도 독일어권 외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잘생긴 외모와 연기력 뒤에 빛나는 소리의 힘이 서서히 위력을 발휘했다. 오페라 평론가 이용숙은 카우프만이 메이저 오페라극장으로 진출한 계기를 2001년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피델리오’의 플로레스탄으로 지적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 2006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충격적인 데뷔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고, 2007년 로열 오페라에서 ‘카르멘’을 시작으로 ‘토스카’ ‘돈 카를로’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마농 레스코’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연전연승하면서 위그모어홀에서의 리트 공연이나 로열페스티벌홀·로열앨버트홀의 오케스트라 협연 모두 그의 이름으로 매진된다. 바그너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제패하고 리트 무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드는 그를 1월 27일 코번트 가든에서 만났다.


▲ 카우프만의 출연으로 7회 공연이 전석 매진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Bill Cooper

활동하면서 만난 한국의 성악가들은 누구인가.

이용훈처럼 소리가 좋은 테너는 어디에서든 환영받는다. 슈투트가르트 오퍼의 전승현은 들으면 금방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가수다. 센세이셔널한 목소리의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능력은 바이로이트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정명훈의 오페라 지휘도 환상적이다. 나의 리트 반주자 헬무트 도이치와 한국 성악가들의 놀라운 활약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있다.

거의 모든 리트 반주를 헬무트 도이치에게 맡기고 있다. 일종의 루틴인가.

항상 헬무트 도이치와 리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지만, 그와 연주하면 다른 어떤 피아니스트와 함께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새로운 파트너를 찾을 이유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헬무트 도이치(1945년생)가 곧 은퇴를 고려하는 시점이 올 수 있기에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긴 한다. 미국 피아니스트 캐리 앤 매더슨과 요즘 몇 차례 리트를 함께했는데,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했다.

내한 공연 직전 일본에서 열릴 세 차례(도쿄 산토리홀·오사카 심포니 홀·뮤자 가와사키홀) 리트 공연은 모두 2000석 규모다.

런던 코번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리트를 불렀지만, 독창에 심각하게 큰 공연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 역시 큰 규모인데, 무대와 발코니까지 거리가 80m 정도다. 그런데 알테 오퍼 뒷좌석 관객도 내 리트가 어떻게 들리는지 구별할 수 있다. 3000석 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2년 전 성공적으로 공연했는데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물리적 환경보다 음악적으로 관객을 몰입시키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위그모어홀 같은 작은 공간에선 관객의 호흡에 맞춰 나를 조절할 수 있는 게 좋지만, 관객의 보디랭귀지나 소음으로 방해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리트 공연에서 중요한 건 시작 때 얼마나 잠잠하고 고요할 수 있는가다. 관객들이 부드럽게 시작을 기다리는 게 절실하다.

당신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은 ‘카우프만의 진정한 매력은 겸손’이라고 내게 말했다. 어떤 뜻으로 이해하는가.

‘내 능력으로 오페라 비즈니스의 모든 관련자와 이슈들을 꺾을 수 있다’는 자만심은 음악 세계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스포츠계에선 다반사다. 그러나 아무리 대가적인 기량의 가수도 언젠가 저무는 날이 온다는 걸 안다. 완벽함이 무력해지는 그날이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게 성악이다. 어느 한 공연에서 실수를 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관객이 내 등 뒤에서 칼을 들고 있진 않겠지만, 대중의 반응에 최대한 초연하려고 한다. 지금의 나를 잘 파악한다는 걸 포펜이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오페라 무대 뒤에선 갑자기 미친 듯 돌변하는 성공한 가수도 많다.

성공에 대한 압박과 그를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 사이의 갈등을 그렇게 분출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학생일 때, 테너 우베 하일만(1960년생)의 인터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전성기는 너무 빨리 지나간다. 가수로 올라가야 할 계단은 너무 높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상상력과 인성은 노래만큼 빨리 성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일만은 노래를 그만뒀다. 가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벽함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낄 때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운 좋게도 나의 지금 위치는 그런 걱정을 아직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완벽성을 잃어가는 걸 늦추기 위해 분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완벽함을 이룰 수 없는 순간 가수로서 제2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는다.

음역에 맞지 않는 역할이 매력적일 때도 흔들리지 않는가.

음역에 맞는 역할만 하려고 레퍼토리를 매우 보수적으로 관리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오페라 전막에 캐스팅되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7년 전에도 다시 그 작품에 캐스팅됐고, 얼마 전에도 다시 그 작품에 캐스팅됐다. 그런데 최근 프로덕션을 완수하고는 ‘더 이상 당신이 필요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 이제야 완벽을 보여줄 수 있는 나이가 됐는데, 제작사에선 다른 사람을 알아본다. 15년 전, 내 친구가 충분하지 않았을 때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었다면 지금 같은 일은 없었을 거다. 포펜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포펜과 그의 아내 소프라노 율리아네 반제, 그들의 아이에게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기다리며 순리를 따른다는 점을 배운다.


▲ 요나스 카우프만 ⓒGregor Hohenberg

지금 자신하는 완벽한 목소리 컨트롤은 성악 교육 전문가 마이클 로즈의 가르침 덕인가.

물론이다. 가르침은 기교가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걱정하는 순간 풀어질 수 없다고 했다. 이완이 돼야 커진다는 걸 알았다. 고음을 걱정하면 긴장하고 채근하는 게 일반적이다. 로즈가 ‘스스로 가진 목소리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했을 때, 처음엔 그 뜻을 몰랐다. 난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를 위해 내 얇은 소리를 두껍게 주조하려는 욕망이 내면에 있었다. 그래서 노래를 하면 일찍 피곤해졌고, 저음역대도 흔들렸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이다. 로즈는 높은 B♭을 피아노 옆에서 아주 편하게 부르는 것을 보여줬다. 일흔의 바리톤이 힘들이지 않고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내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마치 버튼을 눌러 불을 켜듯이 문제가 해결됐다. 최적화된 소리는 호흡을 어떻게 가져갈지, 공기를 어떻게 유지할지 생각해서 내뱉는 게 아니었다. 악기라는 목소리에 자신감을 가지면 믿을 만한, 지속 가능한 소리를 만들 수 있다.

바그너와 이탈리아 오페라, 리트 공연 사이에 균형은 어떻게 가져가는가.

오페라 전막을 하면 공연이 끝나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데 힘이 든다. 인터뷰를 하는 오늘처럼 공연 사이에 쉬는 날에도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한다. 감기 기운이 들면 바로 운동을 해서 컨디션을 찾아가는 식이다. 목소리를 최적의 컨디션으로 유지했다가 공연 때 꺼내는 게 우리 일이다. 아무것도 안 하거나 매일 연습하지 않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나는 바그너 테너·베리스모 가수·리트 전문가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 연습한다. 스타일을 대중의 취향에 맞추지 않으려는 게 관건이다. 지금 공연하는 ‘안드레아 셰니에’를 보면 어떻게 스모르찬도(음을 서서히 여리게)를 가져갈지, 포르타멘토(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미끄러져가듯이)를 어떻게 이어갈지 작품 안에 아름다운 기교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작품에 몰두하면 앞의 카테고리들은 머리에서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바그너가 끝난 다음 마스네와 베르디 오페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 리트를 부르고 바그너를 부르는 건 괜찮다. 그런데 바그너를 부르고 리트를 부르는 건 아주 어렵다. 리트를 불러놓으면 바그너를 위한 준비운동이 충분히 된다. 반대의 경우엔 목소리의 유연성을 기르는 시간이 꽤 걸린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때였다.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연일정 사이에 ‘라 보엠’을 대타로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그런 건 가능하다.

바리톤 성향의 헬덴테너라는 표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그너는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볼륨을 중시하는 그런 분류법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바그너가 작곡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작곡가는 선율과 가락을 사랑한다. 바그너를 단순히 아름답게만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은 악마와 같은 캐릭터, 부르짖음 같은 일면을 보고 전체를 이해한 데서 오는 오해다. 예를 들어 젤코 루치치가 부른 ‘안드레아 셰니에’의 제라르를 보자. 비열한 캐릭터다. 애인을 두고 벌이는 결투 끝에 갑자기 부드러운 아리아를 부른다. 더 이상 그는 악마가 아니다. 바그너 성악이 거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파를란도(악보에서 말하듯이 연주하라)에 집중하면 될 뿐이지 인상을 찌푸리고 입에 가득 힘을 주어 발음을 구기는 캐릭터를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칭한다면 곤란하다.

6월 내한 공연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했는가.

일곱 개의 연주 작품과 아직 공개하지 않은 앙코르가 있다. 한국은 내가 처음 방문하는 곳이고, 내가 가진 것을 한 번에 여러 개 보이고 싶은 도시다. 내가 어떤 오페라에서 하이라이트를 맡고 있는지 보이고 싶다. 이탈리아 오페라(푸치니·폰키엘리·베르디), 프랑스 오페라(마스카니·비제·마스네)로 메인을 짰고, 앙코르는 독일 작품을 하고 싶은데 아직 확정하진 않았다.

후반부에 부를 마스네의 ‘르 시드’의 경우는 아직 전막을 하지 않은 작품이다.

아리아만으로 충분히 기쁨을 줄 수 있는 작품이어서 골랐다. 커리어 초기에는 내가 전막에서 부르지 않은 작품을 연주회에서 부르는 게 옳은 일인가 고민한 적이 있다. 전막을 소화한 오페라 아리아를 콘서트에서 부를 때만이 납득이 갈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전막 분위기 그대로를 전하는 게 연주회의 목적이 아니란 걸 알았다.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를 연주회에서 자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관객이 오페라의 스토리를 모두 알고 그것을 증명하러 연주회에 오는 게 아니었다.

올해 46세다. 지금이 당신의 전성기라고 보는가.

역사적으로 볼 때 명가수들의 전성기가 다 내 나이 즈음인 40세와 50세 사이였다. 나 역시 그 법칙을 받아들인다. 10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55세의 목소리가 혹시 더 좋으냐고 말이다. 어릴 때는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 많았다.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언제 도전할 것으로 보는가.

지금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아마도 콘서트 버전으로 시작해보는 게 나를 위한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드라마틱한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어려운 부분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막 중간에 있다. ‘파르지팔’ ‘탄호이저’를 소화할 때랑은 다른 느낌이다. 단순히 바그너를 크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다. 긴 휴지를 지나 한 시간을 경과하고 3막에 가서 계속 불러야 하는 것도 그렇다. 전막으로 부르려면 몇 년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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