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내 이름은 강’
2월 26일~3월 8일
대학로 선돌극장
개발 논리를 휘감아 도는 생명의 이야기
전업 작가거나 연출을 하는 경우, 개인의 취향과 지향점을 공유하며 합이 잘 맞는 조합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것이 일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차례의 지속성을 갖는다면 이들은 연극적으로 ‘단짝’이 되거나 ‘콤비’가 된다. 가깝게는 김숙종 작가와 최용훈 연출, 한아름 작가와 서재형 연출 등이 그렇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현화 작가와 채윤일 연출이 그러하다. 2001년 ‘인류 최초의 키스’ 이후로 열편 가까운 작품을 함께한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 역시 연극계 대표적인 단짝이다. 최근 공연한 연극 ‘내 이름은 강’.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다시 만난 이들은 한층 탄탄하고 편안하며 농익은 호흡을 선보였다. 이 작품이 처음 선보인 것은 2012년으로, 극단 청우의 젊은 배우들을 중심으로 낭독 공연 형태로 진행했는데 이번 공연은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한 결과물이다.
제주도 신화 ‘원천강 본풀이’를 근간으로 하는 ‘내 이름은 강’은 오늘이라는 여자아이가 원천강을 찾아 떠나는 여정과 그 여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신화의 기본 모티브를 그대로 끌어왔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체 작품을 열고 닫으며, 적극적으로 극의 진행을 이끌어간 이야기꾼이다. 봉산탈춤 전수자인 변민지의 특기가 돋보인 여러 장단의 창으로 오늘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중간중간 오늘이의 위치를 정리해주는 이야기꾼은 이 작품을 객관화할 뿐 아니라 효율적인 작품의 리듬과 정서를 주조해냈다.
신화에서 오늘이는 학을 타고 혼자 원천강을 찾아가는데, 이 작품에서는 오늘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한다. 작가가 강조한 ‘먼 길을 함께 가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따뜻한 그림은 분열되고 파편화된 현재의 우리를 반추하게 한다. 열매가 열리지 않는 이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이유, 기차도 오지 않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이유, 스무 살 청년이 쉰 살이 넘어 보이는 이유, 과학에 모든 정답이 있다고 믿었으나 현실의 결과는 모순투성이인 이유. 오늘이를 따라나선 각자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어린 소녀 오늘이 혼자 가는 그 길에 걸음을 보태면서 그녀를 외롭지 않게 한 그들은 이미 그 길에 나서는 순간 스스로 해답을 찾을 준비가 된 것이다. 따라서 시커멓게 오염된 원천강을 대면했을 때 그들의 각성은 자연스러웠고, 그 각성의 내용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 작품은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또 여정을 그리고 있기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김광보 연출은 선돌극장의 작은 무대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무대 중앙에 둥그렇고 편편한 단을 하나 배치해 그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동선으로 긴 여정을 표현했고, 단 밑에 반사되도록 설치한 조명은 죽음의 강, 생명의 강을 다양한 색으로 강조하고 있어 공간의 상상력을 확장해냈다. 이야기꾼 옆에서 국악기, 서양악기를 가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효과음과 장단을 연주한 윤현종은 이 작품의 원시성과 생명력을 소리로 가득 채웠다.
오염된 원천강을 만나 자신이 바로 ‘강’이었다는 것을 자각한 오늘이는 부모님을 만나면 주려고 품고 온 모래언덕의 모래를 강에 뿌리고, 그 모래가 빛을 내어 강은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결말은 과학과 개발의 논리 속에 처절하게 파괴된 생명의 자연이 회복되는 것을 보여준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이 큰 소리 내지 않고 산과 들을 품고, 사람들을 품고, 역사를 품고 있듯이, 여럿이 함께 먼 길을 나선 이 작품은 현실과 자본의 논리를 굽이굽이 휘감으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밝고 명랑한 장단에 실어 우리에게 들려준다.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사진 코르코르디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