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예술감독 김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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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11월 1일 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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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예술감독 김광보

죽어 있던 연극 세포를 깨우다

3년 만의 연출작 ‘세인트 조앤’으로 다시 무대로!

믿음에서 오는 용기는 그것이 비록 잘못된 믿음에서 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분노에서 오는 용기보다 오래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 ‘세인트 조앤’ 중

서울 서계동에 위치한 국립극단에서 만난 김광보는 지금 한창 준비 중인 ‘세인트 조앤’의 대본을 꺼내 줄 쳐놓은 문장을 읽어주었다. 1994년 데뷔 이후 한 번도 연출을 쉰 적이 없던 김광보는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으며 3년간 무대 공백기를 가졌다. 자신의 무대를 줄여서라도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국립극단을 이끌게 된 김광보는 “후배 연극인들에게 무대를 더 많이 제공하겠다”고 여러 차례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국립극단이 연극인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 되게 하기 위한 믿음에서 오는 용기였다.

오는 10월, 김광보 예술감독이 3년 만에 연극 연출작을 선보인다. 그가 선택한 ‘세인트 조앤’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희곡으로,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립극단이 연극 ‘세인트 조앤’을 공연하는 건 1963년 한국 초연(이진순 연출) 이후 59년 만이다.

김광보(1964~) 연출 동인 ‘혜화동 1번지’ 2기 출신.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2009~2011), 서울시극단 단장(2015~2020년)을 역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 서울연극제 대상·연출상, 히서연극상, 동아연극상 작품상·연출상, 이해랑연극상 등을 받았다. 2020년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임기는 2023년까지).

‘연출가 김광보’로 활동하다가 부산시립극단장, 서울시극단장, 국립극단장을 연이어 맡게 되면서 ‘연극’보다는 ‘연극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을 것 같습니다. 연극이 처한 환경이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국립극단은 이를 수용하며 배리어프리 공연, 영상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요즈음 고민하고 있는 연극계 환경은 무엇인가요.

연극인으로서 저는 그동안 혜택을 많이 받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어요. 내가 받은 걸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서울시극단에서 일할 때부터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는데요. 그 흐름이 국립극단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로 연극을 보면 거의 동종업계 사람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더라고요. 연극이 자생력을 회복하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후배들에게 더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창작공감’ 프로그램을 연출·극작·희곡 분야로 나눠서 새롭게 진행했습니다.

이전까지 국립극단은 현장 연극계와 단절된 듯하여 ‘그들만의 섬’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국립극단이 2009년 단원제를 폐지하고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재창단 됐는데, 국립극단에 관한 적절한 성찰의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고요.

누구라도 국립극단에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차세대 후배들에게 기회를 많이 제공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중견 연극인들이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2024년부터는 그분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장이 마련될 것 같습니다.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후배들 경우에는 국립극단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실감한다는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연극인 전부를 만족시킬 순 없으니까 세세하게 신경을 써야겠지요.

부산시립극단과 서울시극단에서는 “예술적 업무에 비중”을 두었다면, 국립극단은 “행정 업무가 너무 많아서 처음 몇 개월 동안은 혼란스러웠다”고 밝혔습니다.

아직도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행정 업무가 많다는 건 조직이 크다는 겁니다. 서울시극단 경험도 있으니까 처음엔 만만하게 생각했는데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힘든 것 같아요.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까 지금은 받아들이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립극단에서 이루고 싶은 ‘예술적 성과’도 분명 있을 텐데요. 예술감독으로서 예술적 방향성은 어떻게 기준을 잡았나요.

기본적인 기조는 ‘지금 이곳’입니다. 우리의 프로그램들 자체가 동시대성 화두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창작공감: 연출’ 프로그램은 ‘장애와 예술’(2021) ‘기후위기와 예술’(2022) ‘과학기술과 예술’(2023)을 연간 주제로 삼아 창작극을 개발한 거예요.

국립극단이 1950년 창단 이후 70년이 넘었습니다. 전통으로서 ‘유지해야 할 것’과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요구하는 목소리가 너무 많아서 다 수용할 수 없을뿐더러, 임기가 정해져 있기에 뭐라고 말씀드리기 애매해요.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시대성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성과로 온라인 극장을 시작한 것도 있는데요. 국립극장의 명동예술극장, 장민호백성희극장, 소극장판에 이은 ‘네 번째 극장’이라고 홍보할 만큼 자신감이 엿보였습니다.

이 작업이 코로나 영향으로 시작됐지만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고도화된 작업들을 해나가야 한다고 봐요. 현재 영상화 작업에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거든요. 현장 느낌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 연극과 절대 같을 수 없기에 다른 장르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진실이 충돌할 때, ‘세인트 조앤’

드디어 3년 만에 연극 연출작이자 국립극단 예술감독 부임 후 첫 연출작인 ‘세인트 조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작업을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은 2015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결국 오르지 못했는데요. 긴 기간 동안 이 작품을 마음속에 품어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지금 이곳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봐요. 백 년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 이곳에서 유효한 주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고, 그 가치관이 기존 사회적 규범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잖아요. 그걸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세인트 조앤’은 백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가 동시대성을 획득하려면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영웅적인’ 잔 다르크보다는 ‘인간적인’ 측면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확신의 오류라는 것이 있잖아요. 믿음이 너무 강하다 보면 상대방 입장에선 오만해 보일 수도 있고요. 그 충돌의 시점이 이 작품에 담겼습니다.

이 작품은 버나드 쇼가 1925년 노벨상을 받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대사가 많은 작품이어서 연출적인 면에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무대도 높이 설치된다고 들었는데요.

높이 올라간 무대가 하나의 판이라고 보면 돼요. 인간 세상의 판. 다르게 말하면 단두대에 올라가는 건데요. 이 작품이 리얼리즘 연극이어서 대화가 정말 많고, 문장이 어려워요. 배우가 온갖 걸 다 해야 해서 힘들죠. 조앤 역을 맡은 백은혜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잘해 나가고 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은요.

3년 동안 작업을 쉬었더니 연출을 하기 위한 일종의 루틴이 무너졌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초반에는 아마추어처럼 헤맸던 것 같아요. 5월에 사전 리딩을 했는데요. 죽어있던 연극적 감각이 막 살아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연출가가 맞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연습 시작하니까 무너졌어요. 3년 만에 작품이니 부담감도 크고요. 그래서 기대감보다는 이 과정을 새롭게 겪으면서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남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요.

애초에 기획했던 걸 고도화시키고 안정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게 마지막 임무인 것 같습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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