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러시아 음악 기행 (2)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3월 9일 9:00 오전

PART2_CONSERVATORY

©강태욱(Workroom K)

러시아 음악교육의 산실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

세르게이 크라브첸코

 

 

1947년에 태어난 세르게이 크라브첸코.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레오니트 코간 문하에 있었다. 1972년부터는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부임해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지금도 해외 곳곳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차이콥스키 콩쿠르·영 차이콥스키 콩쿠르·브람스 콩쿠르·크라이슬러 콩쿠르·에네스쿠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후속세대를 위해 힘 쏟고 있다. 지난 2월, 잠시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한국·러시아 수교 30주년을 맞아 2년간 다채로운 문화 교류가 이뤄질 예정이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나? 지난해 10월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공연이 열렸다. 올해도 음악원에서 30주년을 기리는 연주들이 예정돼있다. 원래 러시아는 기념할 일이 있으면 오랜 기간 동안 그 테마를 두고 연주회를 연다.

1989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고. 30년 동안 한국 음악계가 어떻게 변한 것 같은가? 유감스럽지만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아직’ 30년 밖에 안 됐다. 1989년 한국을 방문해 서울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한 기억이 난다. 1990년대에도 여러 번 한국을 왔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학생뿐 아니라, 한국의 교수진 레벨도 높아졌다. 당시 한국 사람들은 음악 교육이라고 하면 미국을 먼저 떠올린 것 같다. 미국 유학파가 많아서 그런지 한국은 미국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반갑게도 지금은 러시아 문화를 접한 연주자들이 늘었다.

한국에서도 꾸준히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 학생들의 연주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테크닉이 뛰어나다. 아쉬운 점은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이 테크닉에 비해서 부족하다. 이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동양인의 성향인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서정적으로 음악을 접근하는 방식을 익히면 더 좋을 듯하다.

다양한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당신 역시 1969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됐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콩쿠르 경력, 정말 필요할까?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연주자들의 99퍼센트가 콩쿠르로 자신을 알렸다. 그런 점에서 콩쿠르는 자신을 알리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콩쿠르에 입상했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커리어를 쌓을 순 없다. 우승자들의 테크닉은 매우 훌륭하지만 테크닉만 뛰어나다고 하여 청중을 사로잡을 순 없다. 피겨 스케이팅을 보면 예술적으로 아무리 완벽해도 넘어지면 우승을 못한다. 하지만 그 예술적인 감각 때문에 청중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콩쿠르 최종에 오르지 못해도 예술적인 완벽함 때문에 지켜보던 공연 관계자들이 연주 기회를 주기도 한다. 수상에 연연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유독 ‘러시아 피아니스트’와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에 관한 계보가 잘 정리돼 있다. 한국에서 연세가 있는 주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이반 갈라미언(1903~1981)에게 배웠더라. 갈라미언 밑에서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많이 배출됐다. 그런데 갈라미언은 유대인이 아니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모스크바에 있다. 그는 콘스탄틴 모스트라스(1886~1965)의 첫 제자이고, 나는 코간 뿐 아니라 모스트라스의 마지막 제자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은 유대인이 자주 연주한 악기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 때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실력이 유능한 유대인 연주자들은 군인들도 건들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지닌 특유의 특징도 있다고 보는가? 물론! 러시아 음악은 유럽의 모든 학풍을 다 모아놓았다. 특히 프랑스·벨기에·폴란드·헝가리·체코 이 다섯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러시아에서 활동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일 것이다. 이전 러시아 황제들은 음악에 관심이 깊어서, 유럽의 유명한 음악가들에게 많은 봉급을 주며 러시아에서 활동하도록 했다. 대표적으로 비에니아프스키나 비외탕이 러시아에서 오래 있었다.

 

모스크바 음악원 그랜드홀

음악의 형성에 집중하는, 모스크바 음악원

러시아는 자국의 음악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커리큘럼에도 이러한 특성이 반영되나 궁금하다.

러시아 음악사와 유럽 음악사를 따로 가르친다. 아울러 철학과 화성학에 관한 공부도 철저히 시킨다. ‘음악의 형성과 과정’, 즉 역사를 이해하는 건 ‘음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모스크바 음악원, 혹은 러시아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러시아어를 배운다면 편리할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달리 실기 시험 먼저 진행되고, 합격하면 1년 과정의 예비 학부에서 러시아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이러한 점에선 미국 대학보다 진학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겠다. 하지만 러시아에 올 계획이 있다면 미리 초급 정도의 언어 준비를 하면 첫 생활하는데 편리할 것이다.

러시아에는 동양인 차별이 심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러시아 지도를 보면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펼쳐져 있다. 여러 인종이 살고 있는 국가다. 특히 모스크바에는 동양인이 굉장히 많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심지어 고려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다. 사할린의 한 음악학교 교장이 한국인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동양인이 많다. 북한 학생도 가르친 경험이 있다.

북한에서도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두 번 방문했다. 마스터클래스도 하고 연주도 했다. 김일성도 직접 만났다.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재능이 많았다. 유대인이 바이올린으로 자신들의 세계에서 자리를 잡았던 게 생각나더라. 북한 학생들은 열심히 연습해 음악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보여주려는 느낌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첫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4등한 연주자가 북한 사람이었다. 오이스트라흐의 제자였을 것이다.

(*크라브첸코가 말한 이는 백고산(1930~1997)으로, 1957년 제1회 콩쿠르에서 입상 후 197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종신 심사의원을 지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등에 재직하며 중국·몽골 등의 유학생을 양성하기도 했다.)

현재에도 모스크바 음악원에 북한 학생들이 많나? 관악기를 배우는 학생들이 있다. 아쉽게도 북한 학생들은 러시아에 오면 오래 공부하진 못하고, 1~2년 공부하다가 다시 다른 학생이 오는 편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북한의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 것 같다.

10대 음악학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조금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그리도 열심히 연습을 한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중요한 건 맞다. 그런데 대학과 콩쿠르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너무 한 곡만 집중해 연습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레퍼토리가 넓혀지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오페라와 연극, 미술 등 모든 예술에 관심을 가지면 음악성도 넓어진다. 어떤 작곡가에 관심이 생긴다면, 그 작곡가가 자란 국가, 환경, 그곳의 기후까지 파악하려고 노력하길.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어야 이러한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장혜선

그 겨울, 그 시간을 회고하며

피아니스트 김태형

모스크바 유학기

©심규태

뮌헨에서의 3년 공부를 마칠 즈음이었다. 나의 스승 엘리소 비르살라제(1942~)가 “모스크바는 굉장한 도시인데, 와서 공부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피아니스트로서 접하는 러시아 레퍼토리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어릴 때부터 러시아 음악가들이 지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늘 궁금했다. 그 정수를 느껴보고 싶어 모스크바 음악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유학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키릴문자도 읽지 못하는 상태로 향했다.

 

러시아에서 마주한 장면들은 음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러시아의 겨울은 조금 힘든 편이다. 기압이 너무 낮아 몽롱한 기분이 든다. 모스크바에서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을 늘 즐겨서 갔다. 그림들이 그려질 당시, 이 지역 화가들이 즐겨 쓰던 색채, 묵직한 느낌의 초상화, 러시아 전통 의복 등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도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면 매번 찾는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인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도 자주 갔다. 가로등 불빛이 빛나는 밤에 성당을 보고 있으면 참 좋았다. 성당 앞에 있는 다리에 서면 저 멀리 크렘린 궁전이 보였다. 모스크바 강 위의 유람선들을 응시하다가 눈까지 온다면 아마 분위기에 취할 것이다.

음악원 생활에서의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다행히 비르살라제 교수의 제자라고 하면 모두가 부러워하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똑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이야기하듯 들리는 피아노 소리’가 있는 반면, ‘잘 훈련받은 피아노 소리’가 있다. 후자의 경우 ‘음악’은 안 들리고, ‘음’만 들린다. 비르살라제 클래스에 있던 피아니스트들의 특징은 ‘사람이 말하듯이’ 연주하는 것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뮌헨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간 터라, 러시아에서 이론 교육을 따로 받진 않았다. 다만 당시 함께 학교를 다닌 학부생들을 보면 공부할 양이 많아 보였다. 음악사와 이론 공부를 철저히 가르치더라. 특히 러시아는 오페라를 중요시 여긴다. 러시아 오페라에 관한 책이 매우 두꺼워서 인상 깊었다. 피아노 전공생도 오페라의 중요한 구절을 노래로 시험 보게 한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음악은 삶의 일부다. 전쟁 중일 때도 음악회는 늘 열렸으며, 음악가와 연주자에 대한 존경심도 크다. 음악적으로 풀리지 않던 해석이, 작곡가가 살았던 도시를 거닐면 절로 해결될 때가 있다. 러시아에는 차이콥스키·프로코피예프·쇼스타코비치·라흐마니노프 등, 그들이 눈으로 본 것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특이하게도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흙탕물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갈은 가라앉고 맑은 물이 위에 올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 음악가들은 다른 나라로 망명하고도 자신의 조국을 끝없이 그리워했다. 만약 러시아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특별함을 꼭 느껴보기 바란다.

(*엘리소 비르살라제가 내한 독주회(3.19/금호아트홀 연세)를 갖는다. 58쪽으로)

 

모스크바 음악원

1866년 피아니스트 안톤 루빈시테인(1829~1894)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시테인(1835~1881)에 의해 설립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과 함께 러시아의 양대 음악 교육기관으로 불린다. 설립 당시 루빈시테인과 친분이 있던 차이콥스키가 강사로 초빙됐다. 이러한 인연으로 1940년대 국립음악원으로 승격되며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실기 시험에 합격하면 음악원에서 러시아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졸업생으로는 라흐마니노프과 스크랴빈을 비롯하여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 아슈케나지, 플레트뇨프, 비르살라제, 바슈메트 등이 있다. 현재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고요한이 부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다. www.mosconsv.ru

 

 

PART3_VENUE

더 큰 미래로!

러시아 한국문화원

원러시아 한국문화원장 위명재

모스크바 중심지에서 북동 방향으로 가면 작은 연못이 나온다. 이름조차 정갈한 ‘깨끗한 연못(Clean Ponds)’. 주요 관광지에서 빗겨선 이 거리에는 담백한 기운이 감돈다. 연못 옆 연분홍 건물. 바람이 불 때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이곳은 러시아 한국문화원이다.

 

러시아를 이해하기 위한 발자취

러시아 한국문화원은 2006년 9월에 설립됐다. 재외한국문화원은 경제 발전에 걸맞은 문화 홍보를 통해 한국을 알리고자 한다. 현지에 적합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지난해 러시아 한국문화원에 위명재 원장이 부임했다. 그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통일부 통일정책실과 정보분석실에서 근무했다. 이후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원장을 거쳐 러시아 한국문화원에 오게 됐다.

“통일부는 대 한반도 정책을 세우는 부서입니다. 국제정세에 관련된 지식이 있어야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남북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정무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죠.”

이러한 감각은 러시아 한국문화원을 이끄는 좋은 밑바탕이 됐다. 사회주의 국가를 거친 러시아이기에 문화원을 운영할 때도 전반적인 지역 정세를 감안해야 한다. 꽤 오랫동안 한국과 러시아는 폐쇄적으로 지내왔다. 이 기간을 두고 위 원장은 “서로가 서로를 잘 몰랐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에게 러시아는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가 있었어요. 러시아가 국가 통제가 강한 나라라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다르게 보자면, 문화 인프라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잘 갖춰진 측면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영토가 크지만 지방마다 기본적인 문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구 소련 시절에는 각 도시마다 공연장을 세웠고, 문화인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저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문학은 한 시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매개체이잖아요. 문화원장은 현지 러시아인들과의 소통이 주요 업무입니다. 인문학을 전공한 게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네요.”

 

시대를 반영한 콘텐츠를 모색

문화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단연 한국어 강좌. 올해는 6분 만에 2천 명이 넘는 수강 등록이 이뤄졌다. 위 원장은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할 때부터 한국어 교육에 힘을 쏟았다.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의 젊은 층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특정 가수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지더라고요. 한국문화 마니아층이 형성돼있습니다. 다만 두 나라에는 교민이 많지 않아서 한국어 교육 기관이 적어요.”

최근 ‘BTS’와 ‘기생충’의 열풍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젊은 층을 사로잡기 위해 러시아 한국문화원은 2015년부터 ‘케이팝 커버 댄스 페스티벌’ ‘케이팝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영화 백주년을 기리며 ‘봉준호 영화제’를 모스크바 시내에서 개최한 바 있다.

“대중예술은 이미 상업적 베이스로 민간 차원에서 많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사업 성격상 국가 주도적으로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행사가 많지요. 그래서 문화원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사업을 7대3 정도의 비중으로 진행하면서, 문화산업 진출 기반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서로를 잘 몰랐던’ 시절을 지나

최근 몇 년 사이, 러시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위 원장이 처음 러시아에 온 1992년, 당시는 체제 전환기여서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한국과 러시아는 단절 시기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러시아 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많은 분들이 북한을 더 가까이 생각하거나, 남북한을 구분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했는데, 긍정적인 답변이 러시아가 제일 높았어요. 눈이 띄는 변화입니다.”

2020년, 위 원장의 꿈은 문화원 이전이다. 현재 공간은 협소하여 문화 강좌를 더 이상 늘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올해 말에는 모스크바 중심지로 공간을 옮길 예정이다. 새로운 문화원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 되리라. 그는 힘주어 말했다.

“올해는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30년간 여러 가능성을 열었죠. 2014년 한·러 국민 상호국가 방문 시 60일간 무사증(비자 면제) 제도가 도입된 이후 관광객도 크게 늘었고, 문화 분야를 포함한 다방면에서 교류협력이 진행되었습니다. 러시아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정책의 중심 국가이고, 앞으로 유라시아 시대를 열어가는 데 중요한 파트너 국가입니다. 올해는 지난 30년간의 성과를 토대로 더 큰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장혜선

russia.korean-culture.org/ko

 

모스크바 예술 공간

러시아 예술 집합체

모스크바의 사계절은 언제나 아름답다. 시가 중심에는 모스크바 강이 흐르고, 대로변 곳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전 러시아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였고, 1918년부터 모스크바가 제1의 도시가 됐다. 도시의 심장 크렘린을 중심으로 펼쳐진 넓은 광장과 견고한 건축물, 지하궁전이라 불리는 메트로까지. 모스크바는 러시아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맞아 모스크바는 우리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지난 2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문화와 예술의 기념비적 장소를 찾았다. 러시아의 겨울답게 설국의 추위는 실로 대단했다. 북풍의 기세에 얼어붙은 거리를 잰걸음으로 걷다가, 세월을 간직한 극장들을 마주했다. 장혜선

 

❶ 볼쇼이 극장

볼쇼이 극장은 단연 러시아 오페라와 발레의 요람이다. 처음에는 황태자의 개인 극장이었으나, 1776년 정식 공연장으로 개관했다. 큰 화재를 입어 1856년에 재건했으며, 2011년에 현재 모습을 갖췄다. 모스크바 필수 코스이기 때문에 보통 2~3개월 전에 티켓이 매진된다. 공연을 볼 수 없다면 영어로 진행되는 극장 투어 프로그램을 참여해도 좋을 것이다.

bolshoi.ru

 

❷ 모스크바 필하모닉 차이콥스키 콘서트홀

시작은 연극인 메이어 홀드의 이름을 딴 극장이었다. 1930년 메이어 홀드가 문을 닫고, 건물이 콘서트홀로 변모했다.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이름을 딴 공연장으로 1940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개관 첫 공연부터 큰 성공을 거뒀으며, 그간 루빈스타인·버르토크·오이스트라흐·쿠세비츠키·므라빈스키 등이 이 홀에서 데뷔했다.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개최했다.

meloman.ru

 

➌ 자랴지에 공원

모스크바의 현대식 극장이 궁금하다면 자랴지에 공원으로 향하면 된다. 2017년 가을, 모스크바 붉은광장 인근에 새롭게 문을 연 자랴지에. 기존에 호텔이 있던 곳으로 호텔 철거 후 꽤 오랫동안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삭막했던 땅에 푸틴 대통령은 공원을 짓기로 결심, 긴 공사를 거쳐 마침내 개장했다. 콘서트홀·뮤지엄·미디어 센터·카페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이 있으며, 구름다리에서는 모스크바 시내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zaryadyepark.ru

 

➍ 푸시킨 미술관

모스크바 강 건너편 기슭에 위치한 푸시킨 미술관. 아름다운 위엄을 자랑하는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맞은편에 있다. 미술관 설립 초기에는 모조품이 많았지만, 모스크바로 수도가 이전하며 서양 명작이 대거 들어왔다. 1937년 푸시킨 사후 백주년을 기리며 현재 명칭이 붙여졌다. 실제로는 푸시킨과는 연관이 없는 다채로운 작품이 전시돼 있다. 2006년, 본관 옆에 3층으로 이뤄진 전시실이 새롭게 개관했다.

pushkinmuseum.art

 

➎ 모스크바 예술극장

화려한 건축물에 취해서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모스크바 예술극장. 까미르게르스끼 3번지에 위치한 낮은 건물이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러시아 문화의 황금기를 이끈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다.

19세기 말, 연극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와 네미로비치 단첸코에 의해 창립됐다. 이 극장의 설립으로 러시아 연극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모스크바 다른 공연장에 비하면 소박한 느낌이지만, 20세기 초 체호프·입센·하우프트만 등이 작품을 올린 곳이다.

mxat.ru

 

 

 

 

 

PART4_PERFORMANCE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올해의 추천작

 

무용

에이프만 발레

©Louis Lammerbuber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5월 13~17일 LG아트센터

러시아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로 한국을 찾는다. 1977년 자신의 발레단을 창단한 에이프만은 그동안 셰익스피어·체호프 등 고전 문학을 발레로 재해석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995년 초연된 작품을 2013년에 새롭게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2006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작이다. 고도로 훈련된 에이프만 발레는 러시아 문학에 담긴 수

많은 감정을 되살린다.

 

마린스키 발레

10월 29일~11월 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발레 애호가들은 올가을 마린스키 발레 내한 소식에 벌써 설레고 있다. 이번 내한에서 마린스키 발레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나 쉽게 접하지 못했던 세 개의 작품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소개한다. ‘카르멘’과 ‘젊은이와 죽음’, 클래식 발레의 정수라 불리는 ‘파키타’까지 선보일 인다. 세종문화회관은 “수석무용수 김기민을 비롯해 빅토리아 테레쉬키나·예카테리나 콘다로우바·올레샤 노비코바 등 마린스키 간판스타들이 대거 내한한다”고 전했다.

 

 

클래식 음악

진윤일/아카데미 열정과나눔

(협연 세르게이 크라브첸코)

10월 1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영원한 질문: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무대에 올리는 쇼스타코비치 ‘현을 위한 교향곡’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허망함을 철학적인 바탕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아울러 한국전쟁 70년과 5·18 민주화운동 40년을 애도하며 위촉된 작곡가 정현수(1968~)의 ‘햇살이 분다’를 선보인다. 차이콥스키 탄생 180주년을 기리며 모스크바 음악원의 세르게이 크라브첸코는 ‘왈츠 스케르초’를 협연한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빈 필하모닉

11월 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난해 빈 필은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연주했다. 당시 관객의 호평을 얻은 빈 필. 올해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펼친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리며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선보인다. 제1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연극

경기도립극단

‘오네긴’

9월 10~20일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

모스크바의 말라야 브론나야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활약 중인 콘스탄틴 보고몰로프. 그는 고전을 파격적으로 재조명하고,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하는 등 실험적인 무대미학으로 러시아 연극계의 앙팡테리블로 불린다. 작년 12월 연출가 한태숙이 단장으로 부임한 경기도립극단이 오는 9월, 콘스탄틴 보고몰로프와 협업 작품을 선보인다. 엉뚱하고도 참신한 시도로 주목을 받아온 연출가 보고몰로프가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신작이라 더욱 기대를 모은다.

 

레드 토치 ‘오네긴’

11월 6~8일 LG아트센터

노보시비르스크 국립극단 레드 토치를 이끌고 있는 연출가 티모페이 쿨리아빈. 그는 연극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현재 러시아 연극계의 전면에 떠오르고 있는 스타 연출가다. 엄격한 잣대로 연출가를 평가하는 러시아에서 30대 초반에 벌써 골든마스크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 관객에게 ‘오네긴’으로 강렬한 첫인상을 안겨줄 예정이다. 교과서적인 원작의 해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쿨리아빈은 독창적인 손길을 가해 우리 시대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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