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뒤티외 사태

파리 시민과 음악계 인사들의 분노를 야기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 ©AFP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곡가 앙리 뒤티외(1916~2013)는 파리 센 강 주변에 위치한 생루이 섬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파리 4구, 생루이 앙 릴 12번지가 바로 그가 살던 집 주소다.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아파트 곳곳에 예술인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흔적을 알리는 현판을 볼 수 있다. 대체로 현판의 크기가 작아 관심을 갖고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지만, 이 현판들은 한 인물에 대한 흔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최근 뒤티외의 현판을 두고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3월 중순경, 뒤티외가 살던 파리 4구의 해당 구청장인 크리스토프 지라르가 뒤티외가 과거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현판 설치를 금지한 것. 그의 이러한 결정은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음악계 전체에 분란을 야기했다. 뒤티외는 평생 작곡 활동과 음악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했으며, 수많은 음악가로부터 크게 존경받는 작곡가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이 꾸준히 연주하고 있다. 또 그는 나치 치하에서 프랑스 독립운동을 한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역사학자와 음악학자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가 나치에 협력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프랑스가 비시 정권 아래 있을 때 뒤티외는 비시 정권을 옹호하는 영화 ‘경기장의 힘’의 음악을 작곡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거주했던 집의 현판 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무리이다.

당시 뒤티외는 파리 오페라 합창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는데, 단지 앞선 사실 하나만으로 뒤티외를 나치에 협력한 작곡가로 치부하고 그의 명예를 깎아내리려 한 파리시의 입장에 음악가들은 분노했고, 서명운동에 나섰다. 일부 음악가는 임시로나마 현판을 만들어 뒤티외의 집에 달았고, 그의 악보를 가슴에 안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릴레이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행사에 앞장선 음악가 중에는 현재 파리 오페라 합창단 지휘자 파트리크 마리 오베르, 프랑스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파스칼 로제, 필리프 카사르 등이 있다. 서로 정치적 입장이 다른 ‘르 피가로’지와 ‘르 몽드’지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정치인의 각성을 요구하는 기사를 계속 토해냈다. 결국 서명운동과 여론의 압박에 파리시는 입장을 바꿔, 지난 4월 초 뒤티외의 현판을 달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크리스토프 지라르 역시 입장을 바꿨다. 뒤티외가 프랑스의 대표적 작곡가라는 사실은 그의 작품이 프랑스적 색채를 바탕으로 장인적으로 쓰였으며,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많이 연주된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또 그는 살아생전 모든 사람에게 인간적 존엄과 품격을 갖추고 대했기에, 이번 사건은 생전의 뒤티외를 알았던 문화계의 많은 사람을 격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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