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7월 26일
충무아트홀 대극장
판타지 지운 현실적 미스터리, 반감된 아름다움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보는 재미는 요즘 문화 산업의 흥미로운 트렌트다. 새롭게 막을 연 뮤지컬 ‘팬텀’을 보면 더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팬텀’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끈 ‘오페라의 유령’의 또 다른 각색을 시도한 작품이다.
시발점은 문학작품으로,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 완결한 동명 소설이다. 으스스한 괴기물은 많은 인기를 모았고, 다양한 파생 상품의 등장을 가져왔다. 특히 1920년대에 등장한 흑백 무성영화는 꽤 유명했다. 괴물 역으로 자주 나오는 론 채니의 특수 분장은 한참이나 회자될 만큼 인기였다. 뮤지컬 속 특수 분장이나 괴물 같은 얼굴에 대한 호기심은 영화에 대한 추억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뮤지컬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도 세 편이나 된다. 가장 오래된 것은 영국의 극작가 겸 연출가 켄 힐이 만들었다. 유명 오페라 아리아의 선율을 그대로 쓰되 노랫말은 영어로 다시 바꿔 부른,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형식의 무대다.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순 없지만, 하얀 가면을 쓰고 소프라노에게 음악적 영감을 전수하는 섬뜩한 인물의 이미지는 훗날 다른 작품에서도 적극 활용하며 인기를 누렸다.
뮤지컬 ‘팬텀’은 작곡가 모리 예스턴의 작품이다. 그는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을 무대용 콘텐츠로 각색한 뮤지컬 ‘나인’으로 토니상을 수상했다(뮤지컬 제목이 ‘9’가 된 것은 영화보다 1/2의 뮤지컬화 작업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모리 예스턴의 무대가 다소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해럴드 프린스가 순수하고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로 각색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식 문법과 비교하면 훨씬 은은하게 느껴지는 품격이 있기 때문이다. 에릭의 탄생 비화나 음악 레슨을 통한 유령과 크리스틴의 교감은 모리 예스턴의 해석이 더 흥미롭지만, 몽환적 판타지를 지운 현실적 미스터리로 접근한 뮤지컬 ‘팬텀’은 유령에 대한 환상을 기대하는 관객에겐 ‘악몽’일지 모른다. 말하자면, 유럽식 감수성과 미국식 엔터테인먼트의 시각 차이나 접근 방식의 상이함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팬텀’은 그래서 ‘오페라의 유령’과 엮어 감상하는 편이 더 낫다. 작품의 외전 같은 성격으로 무대를 즐기는 것이 보다 흥미롭다.
우리말 무대가 꾸며지며 다양한 시도가 더해졌다. 류정한·박효신·카이의 트리플 캐스트도 매력 있지만, 특히 소프라노 임선혜나 발레리나 김주원의 등장은 신선하다. 자칫 통속극처럼 보일 수 있는 무대를 적절히 포장하고 상쇄한다. 몸동작 하나, 노래 한 소절이 전율을 안겨준다. 무대예술에서 퍼포머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증명해준다.
평단이나 언론은 비판적이어도 흥행은 호조다. 논란이 돼도 시청률은 높은 ‘막장 드라마’에 비할 수 있다. 그래도 뒷이야기까지 궁금한 ‘오페라의 유령’ 애호가에겐 나름대로 매력 있는 무대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즐겼고, 이미 소설까지 탐독했다면 눈물 찔끔 날 만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관극이 망설여진다면 참고하기 바란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