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바렌보임의 새로운 시도
파리 필하모니에서의 피아노 독주회 후 그의 이름을 단 새로운 피아노 발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난 5월 18~24일 네 차례에 걸쳐 파리 필하모니에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는 아니었고, 후기 3대 소나타를 포함한 열한 곡의 소나타 연주였다. 2400석의 파리 필하모니에서 독주회를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바렌보임은 이 소수의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일 뿐 아니라,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바렌보임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 이번 공연은 매우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기획 연주는 애호가들이 특정한 작곡가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바렌보임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연주가 파리 필하모니를 가득 채웠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인간 영혼의 가장 순수한 상태를 드러내는 음악이다. 어쩌면 인간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원시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바렌보임은 슈베르트 연주회 기간 동안 프랑스의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바렌보임은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과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한 녹음 스튜디오에서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 슈나벨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녹음하기 위해, 라흐마니노프는 쇼팽과 자신의 곡을 녹음하기 위해 온 상태였다. 라흐마니노프는 슈나벨을 통해 슈베르트가 즉흥곡과 ‘악흥의 순간’ 외에도 다수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라흐마니노프조차 슈베르트가 수많은 아름다운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가 1940년대니, 과연 그의 표현대로 최근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에 경도된 애호가라면, 빌헬름 켐프·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언드라시 시프·알프레트 브렌델 등의 피아니스트들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숲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여주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바렌보임이 언론에서 앞 세대 혹은 동시대의 피아니스트들을 언급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가 파리 필하모니에서 보여준 슈베르트 소나타 연주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차별화된 그만의 새로운 세계나 경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파리 필하모니의 다소 지나친 잔향과 그에 적응하지 못한 페달 사용, 때로 섬세함이나 투명함이 결여된 터치가 바렌보임의 내면적인 준비에 미흡함이 있음을 드러냈다.
연주회가 끝나고 며칠 뒤, 바렌보임은 언론에 ‘바렌보임’ 피아노를 발표했다. 벨기에의 피아노 제작자인 크리스 멘느가 바렌보임을 위해 1년 반 동안 제작한 이 피아노의 특징은 모든 현이 일렬로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 제작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19세기 이전 대부분의 그랜드피아노와 피아노포르테의 현이 일렬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기에 ‘바렌보임’ 피아노가 현대 그랜드피아노로부터의 근본적 발전이나 변화라는 바렌보임의 주장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있다. 이 피아노는 약 15만 유로(약 1억8800만 원)에 판매될 예정이다.
역사적으로 하이든·베토벤·리스트·쇼팽 등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음악가들은 동시대의 악기 제작자와 협력 관계를 이루면서 악기를 발전시켰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피아노의 명칭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 관점에서 바렌보임은 새로운 역사적 전례를 마련한 셈이다. 바렌보임은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서 많은 경력을 쌓았다. 그가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가로서 정치적 결단력과 용기 있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슈베르트 소나타 해석과 자신의 이름을 단 피아노의 발표는 다소 실망스럽다.
슈베르트는 살아생전 자신의 피아노를 소유하지 못했고, 작곡한 곡 대부분이 출판조차 되지 못했다. 슈베르트의 시대와 바렌보임이 살고 있는 오늘날은 분명 다른 시대다. 하지만 위대한 인물들은, 자신을 먼저 내세우기 보다 신념을 갖고 음악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