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유린타운’
5월 17일~8월 2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유쾌하고 적나라한 ‘풍자 뮤지컬’
오줌 마을. 낯 뜨겁게 느껴지는 적나라한 제목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앙코르의 막을 올렸다. 온통 획일화되고 천편일률적인 ‘영웅’과 서구 ‘왕가’의 비화에 지쳐 있던 뮤지컬 애호가들에게 무척 반가운 무대다.
먼저 호화 캐스팅이 돋보인다. 대사도 많고, 묵직한 주제의 대중적이지도 않은 작품에 이 정도 인지도의 실력파 배우들을 끌어모으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실험적 무대에 대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용기와 결단에 먼저 박수를 보낸다. 최정원과 성기윤의 호흡이야 원래 좋기로 유명하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물 만난’ 아이비의 노래 못지않게 성장한 연기, 무한 긍정의 시그널이라도 담고 있는 듯한 김승대의 미소, 탄탄하게 극을 받쳐주는 이경미의 연기 등이 버무려져 간만에 누리는 호화로운 성찬 같은 무대를 완성한다. 여기에 록스탁 경감 김대종의 내레이션은 브레히트적 소격 효과의 재미를 안겨주며, 리틀 샐리 최서연의 속사포 같은 대사와 연기, 이미지는 탄산음료의 톡 쏘는 듯한 묘미를 더한다. ‘신나게 잘 노는’ 배우들의 모습과 그런 무대를 만들어낸 제작진의 안목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2막 끝 부분의 리틀 샐리의 대사처럼, 사실 이 작품은 대중적이거나 흥행을 목표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브로드웨이에서도 토니상이 없었다면 주목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다. ‘풍자 뮤지컬’이라는 별칭도 있다. 실제로 작품은 현실 사회의 법체계나 자본주의, 대중 영합,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현대사회의 태생적 모순, 관료주의 그리고 기업의 부당 경영 등을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삐딱하게 바라보면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의 정경과도 엇비슷해 왠지 허탈해지며 공감하게 된다. 혁명은 결국 현실의 어려움 앞에 좌절하게 된다는 뒷맛 씁쓸한 페이소스가 등장하지만, 뮤지컬답게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는 긍정의 끈은 온갖 고난과 재앙 속에도 그나마 남은 희망을 붙들게 되는 판도라처럼, 고된 세상에 남겨진 이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 역할을 한다.
작품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1막을 잘 견뎌야 한다. 극적 전개가 한층 스피드를 더하는 2막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하지만, 상황 설정과 이야기의 배경을 알려주는 1막은 다소 느리고 장황하기 때문이다. 쏟아지듯 넘쳐나는 대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작품에 비해 예습이 절실한 작품이다. 줄거리나 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율 정도는 미리 알아두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리말 음반이 있으면 좋으련만, 뮤지컬 음반 제작이 왕성하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는 관객이 좀 더 정성을 기울이는 방법밖에 없다.
‘유린타운’은 젊은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그레그 코티스의 경험이 모티프가 됐다. 극본과 노랫말을 쓴 그는, 돈을 내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던 유럽의 유료 화장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관을 해주는 극장이 없어 고생도 심했는데, ‘유린타운’을 ‘유어 인 타운(You’re in Town)’으로 잘못 알아들은 관계자 덕에 공연이 시작됐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작품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지 방증하는,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뒷이야기다. 무대를 통해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
사진 신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