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트 쇼송의 오페라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5월 16일부터 6월 14일까지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초연한 쇼송의 작품은 ‘아서왕(Le Roi Arthus)’. 그레이엄 빅 연출, 필리프 조르당 지휘의 ‘아서왕’은 공연 전부터 황금 배역진으로 화제를 모았다. 아서왕 역에는 세계적인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 랜슬롯 역에는 ‘제2의 파바로티’라 불리는 로베르토 알라냐, 기네비어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소피 코슈가 열연했다.
막이 올라가면 아서왕과 원탁 기사들의 라이트모티프가 등장한다. 원형으로 꽂힌 칼 앞에 랜슬롯과 아서왕이 등장하고, 그 뒤로 기사들이 나타나 칼 위에 두 손을 얹은 채 합창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기사들은 조끼에 안전모와 안전화를 신은 노동자 차림이고, 뒤로는 건축 공사 현장이 보인다. 그들은 기사가 아니라 집 짓는 인부였던 것. 그레이엄 빅은 아서왕의 전설을 구축한 기사를 인부라는 상징적 인물로 변모시켰다.
이어서 기네비어가 붉은 소파에 들려 등장한다. 빌리 데커 연출의 ‘라 트라비아타’로 착각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음악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을 섞어놓은 듯 드뷔시·생상스·비제·포레의 성향을 감칠맛 나게 믹스했다. 그 순간 연출은 아서왕의 신화를 완전히 깨부쉈다. 기사들이 건축하는 아서왕의 성은 작은 조립형 키트 집. 마치 스위스의 오두막집 샬레나 가상의 모바일 홈 같다. 절묘한 것은, 이 조립형 집 조각을 펼쳐진 책처럼 보이게 조명 처리했다는 점이다. 이때 합창단은 아서왕의 전설이 담긴 책을 읽으며 돌아다닌다. 아서왕의 전설은 신화일 뿐 현실이 아님을 상징하는 장면. 즉 전설의 인물은 모두 전설 밖으로 나와 전혀 다른 시대와 방식으로 존재한다. 랜슬롯에게 남편 아서를 죽이라고 사주하는 요부로 기네비어를 설정한 것 또한 같은 의미다. 그녀는 전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이 아닌 사랑을 위해 전설을 파괴하는 인물이다. 여기까지는 분명 설득력이 있지만, 문제는 랜슬롯의 성이 파괴되는 장면이다. 을씨년스러운 화재 장면은 승화감이 없다 못해 추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랜슬롯과 기네비어가 풀밭에서 사랑을 나누는 1막 2장은 아름다웠다. 알라냐와 코슈의 듀오는 환상적이었고, 토머스 햄프슨의 아서왕은 품위가 넘쳤다. 특히 죽기 직전 사랑의 승리를 노래하는 코슈는 바그네리안적인 힘과 표현으로 청중을 압도했다. 그레이엄 빅이 창조한 기네비어는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이졸데의 희망과, 복수에 불타는 브륀힐데의 절망,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섞여 있다. 랜슬롯과 기네비어 두 연인은 사랑을 맹세하며 숨을 거두고, 복수를 완성한 아서는 허탈감에 빠진 채 생을 마감한다. 몇 년 전 ‘파르지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레이엄 빅. 이번에는 너무 파격적이었던 걸까. 공연 후 박수갈채를 받은 출연진과 대조적으로 그레이엄 빅의 연출은 야유의 대상이었다. ‘그레이엄 빅, 아서왕의 전설을 무너뜨리다’(스위스 일간지 ‘르 탕’), ‘전설 입성 불발된 아서왕’(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 등 언론의 타이틀도 살벌했다. 빅의 연출은 전설적인 아서왕의 이야기를 원했던 청중의 요구도, 새롭지만 설득력 있는 비전이 담긴 신화를 원했던 언론의 요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사진 Andrea Mess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