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9월 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변화와 실험이 일궈낸 울림
한층 빨라진 극의 전개가 인상적이다. 급박하고 묵직하게 몰아치는 2막에서는 숨조차 쉬기 힘겹다. 새롭게 단장한 ‘명성황후’의 감상이다. 조금만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는 영상과 달리, 매번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듭하며 발전할 수 있는 공연의 매력이 유감없이 담겨 있다. 무대가 지닌 생명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명성황후’의 원작은 이문열 소설 ‘여우사냥’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궁에 난입한 일본 낭인들이 우리의 국모를 살해하기 위해 붙인 작전명이다. 원작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울분을 느끼게 한다. 뮤지컬의 제목 ‘명성황후’는 원작보다 상당히 표현이 순화된 감마저 든다.
20주년을 맞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배우다. 훨씬 젊어지고 친근해졌다. 특히, 메인 롤의 변화가 흥미롭다. 요즘 안방극장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탁월한 가창력의 신영숙이 가세했다. 젊고 매력적인 여배우들의 참여가 20년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고종 역의 박완·민영기, 홍계훈 역의 테이와 보여주는 호흡과 조화가 매력적이다.
몇 해 전, 더 이상 내용을 수정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마스터 버전’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적도 있지만, 올해도 역시 변화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어 흥미롭다. 한층 스피드를 더한 극 전개와 음악의 템포, 임오군란 장면의 추가적인 보완 등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특히 초연부터 인기를 누리던 홍계훈 장군에 대한 이야기의 보강과 무대 이미지의 추가가 눈을 끈다. 다소 계몽적이고 보수적인 주제 의식 탓에 묵직하게 극이 진행되는 이 무대에서, 뮤지컬적인 재미나 극적 이완을 주는 역은 오로지 홍계훈 장군뿐이다. 이번 무대에서 한층 정겹고 안타까운 그의 사연은 객석으로부터 큰 박수를 이끌어낸다.
이중으로 돌아가는 턴테이블 무대는 여전히 기발하다. 초연 때 사용하다가 고장이 나 쓰지 못해왔다는 2단 구조로 상승하는 무대는 이번 공연의 백미. 1990년대 초반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누린 바 있는 ‘선셋대로’를 떠올리게 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박동우의 무대 중에서도 손꼽히는, 매력 넘치는 이미지중 하나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이번 공연을 놓치면 안 될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오페레타적 선율과 발성에 쏟아내듯 대사를 담아 여전히 가사 전달이 쉽지 않다. 그러나 공연 마지막의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듣다 보면 제작진이 전달하고자 했던 민족주의적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까지 더해져 짙은 향기를 남긴다. ‘2천만 조선 백성들’에게 ‘흥왕하라’며 노래하는 명성황후의 외침은,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고 정치적 말장난으로 역사를 농락하는 아베 정권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과 맞물려 큰 울림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커튼콜에서 ‘조선’이 아닌 ‘한국’으로 개사해 불러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다. ‘내일’을 살아야 할 젊은 세대와 공감하고 싶기 때문이다. 늦여름 가족 나들이를 생각한다면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사진 에이콤인터내셔날